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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려니 Jun 11. 2018

치질 수술을 앞둔 이들을 위하여

살면서 어떤 경험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마음이 간절해 궁금해하는 것조차 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불행하게도 내가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꼭 있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렇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난 아주 우연히 치질 수술을 했다.


이왕 겪었으니 기록으로라도 남겨둔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분들께

도움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흑역사가 될 남영동 전장에서의 기록을

공익적인 목적으로 가감 없이 공개한다.


아래 글은 치질 수술 당일 병원에 입원한 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발악 중 하나다.


쾌청하니 좋았던 2017년 가을의 어느 주말,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선

날씨와는 정반대로 천둥번개 온갖 폭풍우가 몰아쳤다.


손끝에서 그 존재를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곳.

얼마나 매끄럽게 그곳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곳.

구조적인 이유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내 몸의 일부.


욱씬찌릿하다가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길 수차례.

고통의 순간이 그리 길지 않기도 했고

일상에선 그리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막연한 통증이 지속되다 보니

어떤 상태인지 진단을 받아보자는 생각에

주말 아침 집 주변을 검색해봤다.


키워드는 ‘항문외과.’

미지의 세상을 개척한다는

용기 있는 발걸음 아니 터치질이었지만,

모험심보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샤이함을 이겨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뭐 약이나 타고 며칠 지나면

가끔씩 찾아오는 이 고통과 이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얼굴에 두꺼운 철판 한 장 깔고 병원을 찾았다.

약만 타고 병원 근처에 있는

쌀국수 맛집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른 살이지만

아재 감수성 가득한 발걸음으로 병원에 들어갔다.

그곳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찾아왔냐고 물었다.

별 건 아니고 최근 피똥을 싸서 좀 아팠다.

약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면서

처방전을 받고 싶다고 아주 드라이한 어투로 말했다.


원장 선생님이 건방진 자식이라고 느꼈던 것일까.

그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줄 알고?’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의 이야기 따윈 들으려 하지 않았고,

얼른 간이침대에 누우라고 하더니 엉덩이를 까보라고 명령했다.


깠다.


누군가의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이런 자세로 누운 것은 내 인생 처음 겪어 본 일이었다.

그는 그곳을 벌렸다. 역시 처음이다.

나도 보지 못한 내 신체의 일부를

타인의 완력으로 보임을 당한 경험은.


창피하다는 느낌도 잠시,

늘 배출하기만 했던 그곳에 인풋이 느껴졌다.

순리를 거스른 것이다.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내시경 화면에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촬영한 내 몸의 일부가 나타났다.

이 역시 처음 보는 이미지.


임무를 마친 그것은 순식간에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픔이 서서히 밀려왔다. 잠시 후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엉덩이가 까진 상태에서 원장 선생님한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아픈 거예요?”

그가 답하길 “원래는 아프지 않은데 치질이라 아픈 거예요.”


뭐라고... 치질?

앞서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나와

평생 관련 없을 줄 알았던 단어다.

설마 했던 그 단어를 듣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글에는

그곳이 돌출이 되는 걸 두고 치질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리는 사람과 나는

그렇게 환우가 됐다.


도대체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왜 찾아온 걸까.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술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치질이 직립보행 동물의 비애라면서 날 위로해줬다.


중력 때문에 항문에 압력이 몰리는 정도가 심해지면

치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여기에 술과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항문의 혈압을 높이는 시너지가 생기는,

그야말로 내 삶의 패턴은 치질을 만나기에

환상의 콜라보였던 것이다. 난 어제도 술을 먹었다.


그건 그렇고. 뭐 그래도 약 타면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하며

안정을 취한 뒤 원장 선생님께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수술을 해야죠.”

거리낌 없는 그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다.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으니

“약으로 치료하기엔 금단의 강을 넘아왔다.

지금 안 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하게 될 거다.

늦게 하면 더 아프다.” 등등의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쭉 늘어놨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그럼 하게 되면 언제 하죠?”

“두 시에 할 겁니다.” 당시는 11시 30분.


‘이렇게나 빨리? 에라 모르겄다.

하지 뭐 까짓 거 해야 한다는데.’


충동적으로 한다고 말을 꺼내니 기다렸다는 듯

나가서 피검사하라고 했다.

아니 두 시에 한다며 왜 지금...


당황한 나머지 선생님께 집에 좀 다녀온다고 말했다.

응 그러던지라는 반응.


집에 와 한 시간 넘게 환우들의 후기를 검색해봤다.

‘아, 이거 할 짓이 안 되겠다.’


다시 약으로 어찌 안되냐는 질문을 갖고

두 시에 다시 원장님과 대화를 시도했다.


선생님 정말 약으로는 방법이 없어요?

“허허허 아 뭐 맘대로 하세요.

하지만 계속 악화할 거예요.”


‘샹. 하자...’ 합시다. 선생님.


수술하겠다는 용단을 내리고 옷을 갈아입고

빈 병실에 앉아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팔에 여러 수액과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팔에 바늘이 꽂히고 있는 틈을 이용해 물었다.


“다들 많이 아파하나요?” “뭐 사람마다 달라요.”

졸라 하나 마나 한 대답. 나는 또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했다.

“아프겠죠?” “칼로 째는데 당연히 아프겠죠?”


문득 이렇게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이상해 또 물었다.

“다들 긴장 많이 하나요? 무서워요.”

“사람마다 다르죠~” 또 하나 마나 한 대답...

그래도 덧붙인 말이 의미가 있었다.

“식은땀 흘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 난 식은땀은 나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아니네.


바늘을 다 꽂을 후 간호사가 돌아누우라고 말했다.

관장이었다.

이제 간호사는 내 고통을 관장하는 존재.

수치스러움 따위는 0인 상태였다.


관장약을 순식간에 넣고 10분을 참으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응. 100분 같은 10분. 10시간 같은 10분.

마침 백기완 선생의 다큐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서 그걸 보면서 참았다.

그거 보면서 참으니 10분이 10시간 같았겠지 이놈아...


10분이 흘러 화장실에 갔다.

천국이 다른 데 있지 않은 것을,

사람 몸이 이렇게 간사하구나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도 잠시.


화장실에서 나오니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선생님께선 하반신 마취를 하고

우유주사를 맞기 때문에 큰 통증은 없을 거라며 안심을 시켜줬다.


수술복으로 환복한 의사는 나보고

허리를 굽히라 더니 척추뼈 사이에 주사를 넣기 시작했다.

정말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주사 몇 방을 넣고 돌아누웠다.

하체에 감각이 사라졌다. 불안은 여전했다.


다급히 물었다. 프로포폴은 안 넣어주시나요?

이제 넣을 거예요~ 우유주사라고 불리는 프로포폴이 들어갔다.

이 역시 처음 맞아봤다.


그런데... 눈이 왜 안 감기지? 엎드린 채로 물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눈이 안 감기는데 정상인가요?"

“눈 감고 있으세요~”라는 기계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도 눈 감은 기억은 없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묵직한 게 들어갔다 나갔다 한 느낌.

걱정했던 수술은 그렇게 큰 고통 없이 끝났다.


이제 진짜가 남았다.

각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환우들에 의하면

진정한 비명은 수술 후에 지르게 된다고 한다.


환우들의 따르면 고통은 크게 세 국면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수술 마취가 풀렸을 때,

두 번째는 무통 주사를 그만 맞을 때,

세 번째는 수술 후 첫 배변을 할 때.


현재 마취는 모두 풀린 상태이다. 다행히 큰 고통은 없다.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좀 아플 뿐...


아직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무통 주사는 내일 끝나고,

내일부터 음식을 먹으면 순리대로

그곳을 통해 무언 가가 나오겠지. 두렵다.


고통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지

아직도 환우들의 후기를 리서치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날 수 있는지,

운동은 언제 할 수 있는지,

술은 언제부터 마실 수 있는지.


야채 위주로 먹고, 대략 3주가 지나면

웬만한 운동은 할 수 있단다.


술은...? 그건 완치하면인데

그 완치라는 거는 꽤 걸린단다.


그 사이에 마시고 싶으면

좀 더 오래 고통스러우면 되는 거란다.

그럴 순 없지. 얼렁 완치되도록 해야지.


하지만 그 결심도 잠시, 전화가 왔다.

날도 좋은데 맛있는 거에

술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 난 또 그 제안을 듣고

왜 못 먹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 순간 안주와 술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일까.

아직 덜 당했어. 간사한 놈 같으니라고.

앞으로 술로 나 유혹하지 않기... 술 안 먹을 거예요.


지금 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수술 후 첫 배변을 기다리고 있다.


Written by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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