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소도시 도야마로
여행을 다녀왔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가서도
폰카로만 사진을 찍게됐다.
다 게으름 때문이다.
폰카로 찍으면
아무래도 정성도 덜하게 되고
당시의 느낌을 제대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늘 아쉬웠다.
물론 담을 수 있는 능력도 없기 때문에
제대로 못 담아 온 걸 두고
폰카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정성스럽게 담아보자는 취지로
이번 여행에는 집구석에 처박혀
장식 구실조차 못하고 있던 필카를 챙겨갔다.
필카를 이리저리 작동해보며 갖고 논 적은 있지만
실제로 사진을 찍은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 카메라 안에 있는
필름에 몇 컷이 남아있는진
모를 수밖에 없던 상황.
하지만 거의 다 찍어가는 거 같아
여분으로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필름 하나를 챙겼다. 참 기특하다.
인천을 출발해 날라온 시간이
고작 2시간에 불과하지만
일본 도야마에 펼쳐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같이 간 친구를 열심히 잘 찍어줬다.
그림이 좋다고 온갖 생색을 냈다.
신나게 찍었다.
그러던 중,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필름을 꽤나 많이 썼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제 곧 필름을 다 써버리겠다고
생각한 찰나 엄습한 불안감.
'아 설마... 야... 아니지...?'
빛이 들어가 몇 장 날라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카메라를 열어봤다.
역시나 필름이 없었다.
필름 없이 찍고 있었던 것.
그날 저녁 숙소에서
반성의 의미로 산토리 위스키 한 병을 비웠다.
챙겨온 나머지 필름 한 롤을 넣었다.
챙겨오길 정말 잘했다.
새로 넣은 필름으로
여행 끝날 때까지 신나게 찍었다.
이젠 별 일 없겠지.
한국에 돌아왔다. 현상을 맡겼다.
며칠 뒤 사진관에서 전화가 왔다.
사진관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필름이 혹시 오래됐나요?"
"음... 네 그럴 거예요."
"혹시 10년 정도 됐나요."
또 불길해졌다.
"아... 그럴 수도 있어요."
필름과 카메라는 십수년 전
어머니가 한창 사진 찍으러 다닐 때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어볼 걸 다 물어 본 사진관 아저씨는
알겠다고 한 뒤
잠시 후 보내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필름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알게됐다.
사진이 왔다. 헤헷 :)
필카 감성이 뿜뿜이다 못해 투투머치다.
포토샵을 오랜만에 켤 수밖에 없었고,
모든 색보정 기능을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샤픈은 사용하지 않았다.
투투머치였던 필카 감성이 투머치가 됐다.
실제로는 고즈넉하니 여유로움이 느껴졌던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현상한 사진을 보면
마치 수백년 전 억울하게 죽어나간
한이 깊게 서린 영혼들이
주변을 떠다니고 있는 듯한
폐허가 돼 버린 듯 했다.
어렸을 적 영화 <링>에서 봤던 그 느낌.
그 티비 너머 우물에서 나온
여자 귀신이 있던 마을 있잖아...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이런 건 좀 안 겪으면 안될까?
꼭 이러더라...
그래도 이번에 감질나게 나마 필카 매력을 으니
앞으로는 좀 자주 들고 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