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쑤 May 27. 2024

뇌출혈이면 어때

끝을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했던가?

어제까진 친구네서 수다 떨며 밥 먹던 내가

오늘은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니..

도저히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쓰러진 후, 밥을 먹을 수 없어 유동식 섭취를 위한 콧줄이 끼워졌고 (콧줄은 코로 넣어 식도로 바로 연결되어 이곳으로 유동식을 넣어준다)

화장실도 갈 수가 없어 소변을 받아내는 소변줄이 끼워졌다.

엔 주사자국이 가득해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내가 깨어날지 말지 알 수 없던 친정 식구들과 남편은 그런 모습으로라도 살아있는 걸 감사해했다.

뇌부종(뇌 내부에 수분이 축적돼 뇌를 붓게 하여 머리뼈 내부 압력이 상승하는 상태. 뇌종양, 뇌손상으로 생기는 증상)이 심해 뇌의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 가족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뇌부종이 빠져 뇌의 주름이 보여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 면회가 되는데 그 누구보다 내 안부가 궁금한 남편이었지만

다른 멀리서 온 사람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 이상씩 걸려서 왔는데 내 얼굴도 못 보고 가면 섭섭하지 않은가?

그때  많은 사람들이 면회 왔었지만 아들 의찬이가 처음 면회 온 일을 잊을 수 없다.

누워있는 나를 보자마자 두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거였다.

 딴에도 놀랬나 보다.

어제까진 바로 옆에 있던 엄마였는데 오늘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러나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저 살아있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밖에...


중환자실에서 고비를 넘기고 일반병실로 옮겼다.

내가 제일 괴로웠던 건 목이 말라서 목 좀 축이고 싶은데 절대 물을 주지 않는 거였다.

입은 타들어가고 혓바닥은 한여름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데 물은 마실 수 없고..

(물론 그때는 삼키는 기능에 문제가 생겨 물을 줘도 삼킬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족들이 거즈에

물을 적셔주면 그걸로 입술을 조금 적시는

정도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지금 목마를 때 물을 맘껏 마실 수 있는 게 정말 감사하다.

(아프기 전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물도 못 먹을 날이 오리란 건...)

또 하나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석션할 때다.

나 같은 뇌졸중 환자들은 가래를 삼킬 수 없어서 석션으로 뽑아 내줘야 한다(물론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서 석션할 필요가 없지만..)

목구멍으로 일회용 석션기를 집어넣는데 그때 눈물이 마구 난다. 너무 아파서..

간병사님이 석션할라치면 눈치 빠른 나는 벌써 알아차리고 얼굴표정이 굳어진다.

그러면 간병사님은

"많이 안 집어넣고 조금만 할게"

"그래도 아프단 말이에요.

안 하면 안 돼요?"

그때까진 몰랐다. 가래를 뱉어 낼 수 있는 것도 감사라는 것을...

역시 사람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예전엔 모두 당연했던 일상들이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안되고 보니 모든 게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다.

걷는 것, 입으로 음식을 먹는 것, 화장실에 자유로이 다니는 것 등..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몸이 불편한 지금도 감사할 꺼리는 많았다.

비록 걸을 수 없지만 휠체어로 병원 내에 있는 카페도 가고 병원 여기저기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다니니 이것도 감사할 일이다.

처음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거밖에 못하던 내가 지금은 간병사 없이도 일반 병실에서 혼자 지내고..

좋아하는 책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찾아보면 감사할 것은 수없이 많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내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볼 수 있음을.. 난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날마다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해 본다.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윈프리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10대 시절

성폭행으로 아이까지 낳아야 했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삶이 달라졌고 결국 부와 명성을 얻은 유명 MC가 된다.

나도 날마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게 됐다. 여러분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쓰다 보면 스스로 놀랄 것이다.

내게 감사한 일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뇌출혈이면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