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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쑤 May 28. 2024

인생은 예고 없는 드라마

눈물아 멈춰

난 내가 생각해도 잘 웃는다. 혼자 책을 읽다가도 웃긴 부분이 나오면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빵 터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한바탕 웃는 수밖에..

배꼽 빠지게 웃고 나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기분까지 좋아지니 일석이조다.

여러분도 많이 웃으시길...

대학생 때 미국으로 자비량선교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내 영어이름은 Sue였는데 잘 웃어서 늘 행복해 보인다고 함께 간 팀원들이 부르던 이름이 '해피쑤'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이름도 해피쑤TV다.

지금도 그때 함께했던 팀원들은 "지영아" 보다도 "해피쑤~"하고 부른다.

이렇게 늘 웃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눈물도 많다는 거다.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게...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마치고 오는 날.

내가 수국을 좋아한다고 수국모종을 챙겨주셨던 펜션 사장님 부부와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운동 열심히 해서 얼른 회복해요"

"그동안 편히 있다가요. 건강하세요"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차에 타고 백미러로 두 분이 손 흔드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났다.

앞자리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아들 왈 "어머니, 또 울어요?"


울산에서 청주로 이사 올 때도 이삿짐차는 먼저 떠나고(남편은 청주서 일하고 있던 터라 거기서 짐을 받기로 했다) 의찬이 랑 둘이 청주로 출발을 했는데 자동차 핸들을 잡은 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딸의 짐을 챙겨주고 뒷수습을 해주시던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멀리 가는 손자에게 휴게소에서 맛난 거 사

먹으라고 돈을 쥐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언제든 올 수 있는 거리지만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어디 멀리 이민이라도 가는 줄 알았을 거다.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휴게소에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태어난 건 부산이지만 초. 중. 고를 울산에서 졸업하고 친정 식구들도 여기 있는데 나만 떠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활치료 하다가도 눈물 흘리는 일이 종종 있다. 뇌출혈로 걷지 못하게 된 나는 마치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앉아있는 자세에서 안정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재활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하려고 해도 몸은 따라주질 않고, 처음부터 이러면 걷는 건 어찌하나 싶고,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급기야 자괴감이 몰려오고야 말았다.

'왜 아파가지고 이 고생을 하나..'

'안 아팠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덴데..'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멈추려고 해도 이미 터진 눈물은 그쳐지지 않았다.

이럴 땐 내가 나를 다독거리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눈물이 시작된 이유도 내 마음의 소리니까...

'세상에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이 어디 있나..'

'병이 오는 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어.

그걸 신뢰하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실컷 울고 나면 다시 힘이 나곤 했다. 그러면 다시 재활할 마음이 생겨 치료에 임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는데

병원에 있으면서도 틈틈이 읽었다. 여러 책을 읽다 보면 그 책들에서 위로와 용기도 얻곤 한다.

채영광 저자의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를 읽으며 믿음의 경주의 꽃은 성공이 아니라 인내라는 걸 알고 병원 생활을 좀 더 참을성 있게 하게 됐다. 또한 하나님이 이 길고 긴 고난의 끝에 상

주시는 분임을 다시 깨닫자 좀 더 힘을 내 치료에 임하게 됐다. 더불어 이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내게 주어진 쉼표 같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악보에도 쉼표가 적절히 있어야 멋진 음악이 되는 것처럼 내 삶도 마찬가지라고 여기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한결 평안하다.

물론 눈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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