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이를, 서울 나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는게 힘들어서 사람들과 연락을 다 끊었었다고 한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서로 한껏 웃었다.
□□이는 20년전 처음 학교밖청소년을 만나기 시작하던 시기의 제자이고 이제 청년 나이도 지났다. 1년전 보다 생활은 더 버거워졌다고 한다.
어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애가 있는 어머니를 혼자 힘으로 모셔왔다. 친척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요즘은 가족돌봄청년 지원제도가 생겨나고 있지만, □□이는 이제 청년이 아니어서 지원받을 수 없고 여전히 벌판위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
10대 때부터 몸으로 하는 일들을 계속 했다. □□이는 약속을 잘 지켰고 매일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했다. 아파도 약해지지 않겠다고 바보같이 참고 일했다.
무리하게 일하면서 여기저기가 아프고, 아파서 일을 쉬게되면 생활비와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못해 빚이 생기고 빚이 빚을 낳았다.
□□이가 말했다. 늘 쪼달리며 사니까 생각이 좁아지고 합리적인 결정을 못했다고. 그래서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일보다 당장 돈많이 주는 고된 일들을 많이 했고 이제 후유증들이 나타나고 있다.
쉼 없이 일하는 삶이 10대 때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스스로 외로운 삶을 만들어갔다. 고된 삶을 살아오면서 연애도 친구도 사치처럼 느껴져 다 내려놓게 되었다. 한동안 그의 옆에 도우려는 어른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의 삶을 크게 다르게 하지는 못했다.
오랜시간 □□이는 나의 숙제였다. 특수한 환경, 특별한 성격의 □□이와는 쉬운 일이 없었다.
교육과 상담과 지원을 통해서 그의 삶이 달라지고 안전해지기를 꿈꿨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는 이제 중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생존의 경계에 있는 사람에게,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는 교육이니 상담이니 하는 것들은 다 허상같은 일로 느껴졌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버텨온 □□이가, 이제 무너질것처럼 보여 두렵다. 빚을 갚아줘야할까, 일할 곳을 구해야할까.
뭘 해야할까,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