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도 더 된 기간 동안 휴직하다 새로운 팀으로 복직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적응했다. 나 대신 업무를 맡고 있던 사람은 내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인수인계해주었다. 복직 첫날에 바로 그동안의 업무 내용에 대한 파일을 잔뜩 모아서 농구공 던지듯 패스했다. '준비'라는 구호도 없이 '빵' 소리와 함께 곧장 업무에 투입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케팅 부서와 협업하여 굵직한 프로젝트도 진행하게 되었다. 나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인 데다 일도 술술 풀리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전 팀과 다르게 팀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으며, 호의적이었다. 부팀장은 나를 높게 봤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예로, 컴퓨터 모델링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이상적인 규격의 범위를 그리는 속도가 매우 빨랐는데, 어쩜 이렇게 손이 빠르냐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주었다.
"벌써 이걸 다 끝냈어? 꼼꼼하게도 했네!"
"아니,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었던 거야? 그동안 난 왜 그렇게 오래 걸렸지? 진짜 기가 막히는군!"
처음 겪어보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어리둥절하고 어색했지만, 칭찬을 들으니 뱃속이 간질간질하며 더 잘하고 싶어 졌다. 나의 가치를 인정받은 기분이어서 더욱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업무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에 매번 본사에 요청해야만 했던 분야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제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작업이었는데, 주어진 매뉴얼을 보고 독학을 하다 막힌 부분이 있으면 미국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직접 프로그램을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했으므로 그들 시간에 맞춰서 회의를 해야 했다. 그렇게 아침이나 혹은 저녁에 습득한 내용을 정리하여서 팀원들에게 전파하였다. 이런 장면, 어디서 많이 봤다. 바로, 내가 입사하자마자 첫 팀에서 했던 일과 거의 비슷한 일이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말은 "고마워", "수고했어"였으며,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면은 전혀 달랐다.
동료들과 상사의 반응에 흥이 나니, 팀에서 더 많은 역할을 맡고 싶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꺼려하는 직무인 총무 역할을 자진해서 맡기까지 했다. 총무 역할에서 단연코 가장 중요한 책임은 회식 계획 세우기가 아닐까 한다. 때마다 돌아오는 회식에 더해, 급작스럽게 정해진 회식까지 열과 성을 다해서 맛집을 수소문했다. 음식이 맛있다며 감탄할 때마다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아, 노력을 알아준다는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그리고 육아 휴직에서 돌아온 그 해에 승진까지 하고 나니 애사심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그러나 한쪽으로 힘을 가하면 반대쪽으로 생겨나는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늘어나는 회식자리와 야근으로 피해를 입는 쪽은 우리 가족이었다. 아직 아이는 어리고, 친정 엄마께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같이 지내고 있는 데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왔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가정적이며, 술을 일절 하지 않는 신랑은 날 이해하지 못해서 둘 사이는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총무가 회식을 빠질 수가 있겠냐며 오히려 큰소리치기도 했다. 사실은 지난 몇 년간, 회사 생활이 너무 외로웠었고, 이제야 사람들과 친하게 어울리게 되었는데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나도 직장 동료들, 상사들과 좋은 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하며 그들과 섞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일순위를 가족이 아닌 회사 사람으로 두게 되었나 보다. 눈에 띄게 가족에게 소원해지고 있던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참고 있던 신랑은 결국 폭발하고 크게 화를 내었다. 이 다툼의 부작용으로 우리 엄마는 짐을 싸서 당신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손주와 눈물의 생이별을 하고, 가슴에 총을 맞은 것 같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 역시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엄마, 다 내 잘못이야. 정말 소중한 걸 소홀히 여기고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한 내 잘못이야.'
후회와 자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엄마와 신랑, 그리고 첫째에게 늘 미안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고과 시즌이 다가왔다. 딱히 신경을 쓰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에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점수에 대한 팀장의 설명을 듣고는 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일을 못 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승진 차례가 다가온 다른 사람에게 최고 점수를 주려면 팀 내에 최소 한 명에게 가장 나쁜 점수를 주어야 했단다. 거기서 내가 희생양이 된 이유는 육아 휴직하고 왔는데도 승진시켜 대리를 달아주었으니 이번엔 네가 밑을 깔아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당하거나 공정한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에 배신감과 억울함이 몰려오며 그 결과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 감정이 너무 거세어서 모든 사고가 중지되었다. 신랑은 이걸 빌미로 다음 해에는 최고 점수를 요구할 수 있을 테니, 전화위복으로 삼고 참고 다니자고 권했다. 그러나 난 내 실력과 성과가 얼만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겠냐는 오만과 입사하면서부터 쭉 맡고 있는 이 업무는 내가 제일 잘하고 나밖에 못 한다는 교만, 거기에 더해 팀장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는 복수심이 한 데 모여서 일을 꾸미게 되었다.
건너편에 있는 다른 팀에 가서 그 팀장과 단둘이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을 했다. 팀을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던 야망찬 팀장이었기에, 내 업무를 가지고 가겠다며 받아달라고 한 것이었다. 고과니 복수니 이런 말은 쏙 빼고 나의 커리어를 쌓고 업무를 발전시키기엔 그쪽 팀이 더 이상적이어서 옮기고 싶다며 좋게 좋게 꾸며서 말을 했다. 물론, 팀장끼리는 고과를 공유한다고 하니, 나의 시커먼 속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팀원도 늘고 담당 업무도 늘어나니, 팀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진행시키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그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정당하지 못하게 평가한 이전 팀장을 무조건 악당이나 괴물로 봤지만, 사실 받아준 팀장만큼 순순히 보내준 팀장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에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비겁했고 악의적이었던 나의 선택은 결국 내 발목을 잡게 되었다. 그런 근시안적인 결정에 대한 대가를 호되게 그리고 뼈아프게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