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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창우 Feb 21. 2020

사색74.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5월 5일(월)

어린이날, 

아직도 설렌다. 뭔가 신나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어머니를 졸라 해운대 해변으로 간다. 그렇게 어려웠던 침대 밖으로 나서는 실직자의 한걸음, 어린이날은 위력적이다. 펄럭치마, 미니스커트, 스키니진, 봄날을 맞은 해변에는 한껏 치장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예쁘게 차려입었지만 바다 바람과 모래사장, 파도를 즐기는 데는 불편한 옷차림이다. 모처럼 어머니와 해변에 앉았다. 


2년 전 아버지는 환갑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연세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후 어머니는 오늘까지도 인생을 허무하게 느끼신단다. 장례식, 화장터에서 재로 변한 아버지의 흔적을 마주하는 게 충격이었단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가 재로 변한 모습은 자신의 인생관을 변하게, 인생이란 자기가 그동안 알아왔던 것보다 허무한 것이다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씀하신다. 내가 잘 살아왔는가, 아니 현재 잘 살고 있는가,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사춘기 즈음에 한창 했을 법한 질문들이 회갑을 맞는 지금에서 다시 곱씹는단다. 담담하게 말씀을 마치곤, 일어서서 밀려오는 파도 끝에 발을 담근다. 그동안 어머니와 해변에 자주 왔지만 발에 물 묻으면 귀찮아진다고 손을 사래 치던 사람이 성큼성큼 파도에 들어가 찰방찰방 발장구 친다.      


“발에 무좀이 생겼어, 바다 짠물에 무좀균을 다 죽여 버리려고”

물에 들어가는 행동에 놀란 맘, 순식간에 역시 하며 마음을 놓는다.  

“오는 이번 어버이날 선물은 다른 것 필요 없고, 너 취직 하나만”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만큼 친절한 게 어디 있냐만, 취직은 내가 살 수 있는 게 아닌데 실직자는 어버이날 선물도 포기하게 한다.     

    

“창우, 이제 바빠질 텐데 엄마랑 즐거운 시간 보내라”

핸드폰에 메시지가 온다. 김동식 목사님께서 실직자 성도에 대한 예언적인, 아니 소원적인 격려에  

“하나님께서 제가 곧 바빠진데요?”

답신하니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보이지 않되 믿는 자가 돼라”

하며 모처럼 진중한 메시지로 답신하신다. 김 목사님께서 흔치 않은 진지함을 보이셨다. 정말 곧 새 직장이 생기려나 보다. 


어제 교회 주일예배 설교처럼,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게 신과 신앙인의 교제 및 관계 정립 인지, 내가 믿는다 하는 신앙이란 무엇인지, 내 인생에 신적 간섭과 계획을 신뢰한다면 실직자 차원의 걱정이 필요 없는 것인지, 지금 내 신앙을 인수분해해보면 신앙 믿음인지 소득원을 다시 확보하려는 재취업만 바라고 있는지, 어떤 요인이 내 신앙의 핵심으로 남아있을지. 내가 바라는 건 더욱 성장하는 신앙보다는 곧 재취업을 했으면 하는 것 같다. 이게 내 수준이며, 지금은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할 수도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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