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쓰고, 뜨겁고, 차가운
아포가토는 이탈리아어로 잠겼다는 뜻이다. 무엇이 잠겼냐면 아이스크림이고, 무엇에 잠겼냐면 커피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끝인 이 심플한 디저트는 전 세계와 나의 마음을 정복한 지 오래다. 비록 여름이고 겨울이고 배가 차가운 클럽의 오랜 회원으로서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짧지만, 사랑 아니 욕망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니 그러니까 이런 저런 변종 아니 떨거지에는 찬성할 수 없다. 바닐라 대신 초콜릿이나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용하는 것은 뭐, 나는 안 먹을지언정 신경 쓸 일 아니다. 커피 대신 녹차나 하다못해 다시마차를 사용하는 것에는 할 말이 많지만 할 말이 없다. 디저트와인이나 스파클링와인, 맥주, 브랜디 등 술을 붓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그것을 아포가토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묻는다면 딴청을 할 것이다. 질 좋은 올리브유를 뿌리는 것도 맛있을 게 분명하지만 정말이지 아포가토 어디까지 가는가. 하지만 그 어떤 개량주의자도 공감할 것이다. 평생 한 종류의 아포가토만 먹어야 한다면 클래식이라고, 클래식일 수밖에 없다고.
간단한 요리일수록 재료가 전부다. 가능한 좋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를 준비하자. 그러고도 망하는 경우가 딱 하나 있다. 내 손으로 만든 첫 아포가토는 불유쾌한 기름이 둥둥 뜬 커피색 물에 아이스크림의 잔해가 아련히 남아 있었다. 뜨거움과 차가움, 달콤함과 쌉쌀함을 동시에 즐기는 아포가토의 미학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참사를 막으려면 아주 작은 요령으로 충분하다.
재료: 바닐라 아이스크림, 에스프레소
1. 컵을 미리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만든다.
2. 아이스크림을 가능한 똘똘 뭉쳐서 담는다.
3. 갓 뽑은 에스프레소를 살짝 식힌다. 너무 뜨거우면 허무하게 녹아버리지만 너무 식으면 맛도 풍취도 사라지니 주의해야 한다. 속편하게 아이스커피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 또 반대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령은 마치 아포가토처럼 심플하다. 커피를 붓자마자 먹어치운다. 절대 녹을 틈을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