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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ㅍ Nov 22. 2018

스팸 근대 볶음

햄 말고 깡통햄 

나는 TV를 안 보여주는 집에서 자랐기에 스팸을 안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물론 전혀 안 본 건 아니다. 엄마가 집을 비울 때마다 안방으로 숨어들어가 귀는 현관 쪽으로 쫑긋한 채 눈으로만 보는 TV가 얼마나 재밌었겠는가. 그 중에서도 ‘떠돌이 부머’가 최고였다. 부머라는 방랑의 개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다시 떠난다. 말하자면 ‘셰인’의 동물 버전이었는데, 식중독에 걸린 어린 남매를 돕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오빠는 쓰러졌지만 여동생은 멀쩡했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 간신히 발견한 스팸을 보고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난 깡통에 든 햄은 안 먹어.” 그 때는 몰랐지만 보툴리누스 중독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스팸을 안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꼭 식중독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그 말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먹는다. 따기 전 혹시 찌그러진 곳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볼뿐이다. 부머가 방랑하던 시대의 스팸은 지금과 달랐다. 윗면에 붙은 작은 막대기를 뜯어 옆면의 돌기에 끼우고 돌돌 말아서 땄는데 최소한 어린이들에게는 까다로운 과업이었다. 문명은 계속 발전하여 원터치캔이라는 게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잘 꺼내지질 않아서 혈압을 올린다. 쾌적하게 빠지는 스팸 깡통 하나 못 만드는 문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도 먹는 걸 보면 꽤 좋아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스팸은 결코 싸지 않아서 돈을 아끼려고 다른 깡통햄을 사본 적 있다. 그리고는 다음부터는 다른 데서 아끼기로 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스팸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두툼하게 썰어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것을 갓 지은 쌀밥에 척하니 얹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고 있자면 빵이 주식인 서양인들이 안쓰러울 정도다. 그렇지만 가끔은 숟갈로 뚝뚝 떠서 김치찌개에도 넣기도 하고, 차가운 채 깍둑썰어서 샐러드 아니 사라다도 넣기도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게 스팸 풍미가 더해진 야채는 매우 맛있다는 사실이다. 어지간한 야채는 다 어울리지만 여름이라면 여주, 나머지 철에는 근대가 최고다. 


스팸 100그램 

근대 150그램 

마늘 4쪽  


1. 냄비에 물을 넉넉히 올린다. 스팸을 두툼하게 썰어서 끓는 물에 데친다. 한 명이 한 통을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남은 걸 깡통 째 두자니 식중독이 무섭다. 남은 건 식혀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하면 4-5일은 끄떡없다(그 이상은 냉동한다). 


2. 근대를 씻어서 잎과 줄기 부분으로 나눠 잘게 썬다. 


3. 마늘 껍질을 벗기고 씻는다. 그대로 나박나박 썰거나 아니면 칼날을 눕혀 지그시 누른 후 썬다. 


4. 1의 스팸을 작게 깍둑썬다. 


5. 웍에 기름을 두르고 약불에 마늘을 볶는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면 불을 약간 키우고 스팸을 넣는다. 황금빛이 되도록 충분히 익히는 게 중요하다. 


6. 불을 최대한으로 해 근대 줄기를 넣는다. 보드랍게 익으면 잎을 넣고 빠르게 한 번 휘둘러 숨이 죽으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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