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 in 제주
"나 1년 리프레쉬 휴가 신청했어!"
모든 건 이 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고 나는 프리랜서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월화수목금, 그리고 숨돌리듯 주말을 찍고 나면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았다.
연애시절, 그리고 이렇게 수업이 많지 않았던 신혼시절에는 수시로 콧바람을 쐬곤 했다. 돈 만큼이나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다며 호기롭게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그러다 코로나가 찾아오고 자유분방했던 나의 방랑벽은 강제적으로 중단되었다. 해외길이 막히다 보니 자연히 시선은 좁아졌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일상의 생활들이 전부가 되고 다른 이들의 삶이 기준이자 목표가 되었다.
"그동안 너무 철없이 지냈나봐. OO는 벌써 집이 두채고 OO는 수업이 넘쳐 대기만 몇명이라는데... 난 너무 한량이었어ㅜㅠ"
남편에게 하소연인듯 자책인듯 탄식어린 말들을 내뱉으며 나는 머리끈을 질끈 동여맸다. 남들 일할때 놀았으니 이제라도 열심히 달려야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때까지 모든 에너지를 수업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도 불안해 틈틈이 주식이나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늘어갔고, 두둑해지는 통장을 보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물론 늘어가는 잔고와 맞바꾼 것들도 있었다. 6개월마다 파마하러 가는 미용실 아주머니는 나를 볼때마다 놀라곤 했다. 어디 햇빛 강한 곳에서 바짝 태운게 아니라면 도저히 이럴수 없다며 내 가늘어진 머리를 안타까워 하셨다. 탈모 걱정에 맥주효모를 먹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화장실로 달려가 설사를 하는 일이 계속되자 유산균을 시켜 먹었다. 하루종일 모니터로 수업준비를 하다 보니 창문 밖 하늘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고 눈 영양제가 추가되었다. 경직된 자세로 계속 앉아있으니 허리에도 무리가 갔다. 도무지 수업이 어려워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바로 허리 마사지 기계를 샀다. 무려 60개월 할부였다.
이 모든 일들에도 나는 우직하게 나의 길을 갔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거지, 씁쓸히 되뇌이면서.
그런데 남편이 뜬금없이 일을 저지른 거다. 1년 휴가라는 어마무시한 행태를.
반전같이 찾아온 1년의 휴가. 집떠나 1년 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