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고 또 수첩을 샀다
집정리를 했는데 잊고 있던 수첩이 무더기로 적발된다 앞에만 몇 장 쓰고 잊힌 나의 수첩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마흔을 지척에 둔 나는 또 새해를 맞아 수첩을 샀다. 이번에는 끝까지 써보리라 다짐하는 것도 한결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기도 넘기지 못하고 서랍 깊은 곳에 처박아 두는 것도 여전하다. 작심삼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압축한다면 남는 단어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늘 작심을 하지만 삼일정도밖에 가지 않는다.
작년 새해엔 자격증을 따보겠노라 책부터 잔뜩 사놓고는 몇 개월 끄적이다가 그만두었다. 역시 외국에서 학원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시험은 아니었다. 일 년에 책 100권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땐 1,2월엔 하루에 한 권씩 씹어먹을 요량으로 달려들다가 12월 한 달 동안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반려식물을 키워보겠다며 유행에 맞춰 산 화분은 3개월 후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돈도 꽤 들었다? 홈카페 만들려고 산 커피머신과 와플기계는 선반 깊숙한 곳에 자리했다. 맘먹고 지른 피부관리 기기는 먼지만 쌓이며 방치되고 홈트를 위해 산 운동기구는 어디에 뒀더라? 바디프로필 찍는 날 상상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진다.
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열정부자다. 그 열정은 쉽게 꺼지지 않고 해가 바뀔 때마다 자꾸만 불씨가 이곳저곳 옮겨간다. 남들 하는 건 나도 하고 싶고 남들 안 하는 건 그러니까 하고 싶다. 그래서 얻은 건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얕은 지식과 약간의 지괴감뿐. 자괴감은 그만 둘 당시엔 엄청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희석된다. 사실 금방 다른 것에 열정을 쏟고 있기 때문에 자괴감을 느낄 시간이 길지 않다. 게다가 난 합리화의 천재라 그때그때 그만두어야 할 이유를 기가 막히게 찾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수첩 부자가 되는 까닭은 빠르게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한 가지를 끝내려면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다. 장래희망은 아직도 많고 버킷리스트 목록은 늘어나니까 하던 것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 새로운 목록으로 눈을 돌리는 것. 조금 해보다가 완벽하게 끝내지 못할 것 같으면 금세 그만두는 일도 있다. 그래서 나는 3월을 마지막 날 괜한 결심을 다시 해본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오래오래 해보기로.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