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상담 수업을 듣고
뜨겁던 여름이 지나가는 8월 말, 대학원 2학차가 시작되었다. 대학원을 들어온 목표, 은퇴 후에도 '상담'을 업으로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원 수업이 나를 알아가고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하려는 동력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어제는 '상담이론과 실제' 과목의 '정신분석 상담'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2시간 동안 학우의 탁월한 발표,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교수님으로부터 질문지를 받았다.
'아버지와 관련된 첫 기억은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국민학교 졸업식 때 큰 고모와 찾아오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새어머니 되실 분과 함께 찾아오신 아버지. 눈을 감고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한 장면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첫 기억은 결론적으로 새어머니와 함께 한 장면이었다.
질문을 접하는 순간, 바로 떠오른 단어가 '낯섦'이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여행을 가고, 놀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텐데도 97세인 아버지가 첫 기억을 떠올린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자식을 위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마음에 품은 채 재혼한 아버지, 새어머니 될 분이 아기를 낳을 수 없음을 알고 재혼을 결심한 아버지. 50년 가까운 재혼기간 동안 조강지처를 그리워했을 아버지. 아버지는 대입을 앞둔 나에게 단백질이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새어머니 모르게 학교 앞에서 치킨을 사주시곤 하셨다. 아버지와의 첫 기억이 유치원 졸업식 때 새어머니와 함께 한 장면이라니 당혹스러웠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와의 관계는 줄곧 거리감이 느껴졌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장인어른과 관련된 첫 기억이 뭐야?"
"글쎄..."
정신분석상담의 목적이 무의식을 의식화하고 자아를 강하게 하여 본능의 요구보다는 현실에 바탕을 두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관련된 첫 기억이 지금의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아버지와 거리감을 느끼며 지내왔다. 무의식에 숨겨져 있는 불편한 장면들, 감정들... 이제 그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만나는 과정 중인 것 같다. 아버지와의 낯섦이 후회로 남지 않도록 태평양 건너 계신 아버지께 자주 전화 드리고, 손자들의 사진도 자주 보내드려야겠다. 이제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들을 찾아야겠다.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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