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인데, 그게 뭐요?-새로 들어온 여자 고졸(下)

당연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시선

by 야기

건조하게 말하자면, 난 받은 만큼 일하거나 일한 만큼 받기만 하면 아-무 상관없다. 익명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고졸 채용의 당위성과 형평성을 두고 까든지 말든지.

학력과 능력이 비례하지 않음을 확실히 보아왔다. 물론 시간으로 만들어진 ‘처세’는 다를 수 있지만, 미숙함은 대개 1~2년 내로 사라지고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학력’으로 최소 기십만 원 차이나는 월급을 받으면서 같은 업무를 할 때의 기분이란.


아까도 말했지만 받은 만큼 일하거나 일한 만큼 받는다면 불만도 없다. 전형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른 직급과 직책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도 제한된 부서 배치는 후의 문제라 하더라도, 같은 업무를 헐값에 하는 것도 화나는데, 연차가 쌓이면 ‘오래 해봤으니까~’ 라는 말로 추가적인 업무를 떠넘기는 행태를 보고 있자면 고질적인 저혈압이 나을 것 같다. 아니, 하나만 하자 진짜.




지옥 같은 취업난에 속 편한 어리광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을 쉽게 말하는 건 오만함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회사에 다니며 대학 졸업장을 따내도 여전히 ‘고졸 걔’로 여겨지는 이들을 보며, ‘어린데 일은 잘하더라’는 시혜적인 태도를 떠올리며, 그 ‘4년제 대학’이 이 나라에서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 본다. 고졸 전형으로 들어온 사원을 ‘고등어’라고 지칭하거나 ‘고졸 주제에 선배 대접 받고 싶어 한다’며 뒷말을 하는 치들을 보면 대한민국 고등교육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응당 지녀야 하는 윤리의식을 생각했다. 전공과는 생뚱맞은 업무를 주면서, 대체 어떤 걸 기대하고 부응했던 걸까.

‘고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 정작 학위라도 있어야 들어주니 그러면 난 고졸이 아니게 되는’ 아이러니함. 대학을 안 가면 후회할 거라는 위협적인 조언.


대학을 갔다면 없는 형편에 돈이나 갉아먹었다며 후회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지금, 대학에 가고 싶다는 건 배우고 싶은 게 생겼으며 한국에서는 대학 입학이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어서이다. 그리고 내가 곧장 진학했다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순간순간은 좌절과 후회일지라도 지금은 올곧게 나아갈 수 있음을, 방향을 그려가며 지난 시간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호받지 못하고 일하는 게 당연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에 익숙해지고 나 자신을 마모하고 버티며 살아가야만 어른이라면,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불평등에 수긍하고 비합리적인 처우에 적응하고 싶지 않다.

나이, 성별, 학력, 국적- 그 어떤 거로도 재단 받지 않을 자유가 모두에게 태초부터 있기에. 그리고 ‘고졸’ 역시 회사가 지급하는 급여에 상응하는-대체로 초과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비즈니스의 주체이므로.


나는 감히 회사에 감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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