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예의와 존중을 찾습니다. 사례는 넉넉히 하겠습니다.
(지극히 선생님들의 시점으로) ‘유서 깊은’ 학교에는 전설 같은 선배와 괴담 같은 이야기가 공존한다. 굵직한 대기업에서 탄탄한 중견기업까지 연달아 실패를 맛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여 굴지의 공기업에 합격했다는 훈훈한 성공 신화. 그리고 공기업에 들어갔지만 대학을 가겠다며 제 발로 나간 어리석은 선택.
대통령 유세를 하듯 열성적으로 설명하거나 혀를 차며 과장스레 힐난하거나. 졸업생의 자취를 생생하게 읽어주는 것만큼 학생들의 의욕을 고취하는 수단이 없었다. 설령 누군가의 개인적인 판단을 깎아내리는 식이어도.
신입생 땐 전설 같은 선배의 일화를 여러 번 곱씹으면서도 남들이 찬양하는 공기업을 박찼다는 이야기에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라며 안이하게 짐작했다. 시간이 지나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조옿은 직장에서 세상만사의 환멸과 우울을 겪고 나자, 교사들이 심어준 무수한 말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교육자로서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깨달았다.
지금 하는 얘기는 앞으로 꾸준히 섞여들어 갈 것이다. 왜냐하면, 고졸 여성 직원으로 근무한다는 건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일부-또는 나를 바라보는 일정한 시선-이므로.
학교에서 배운 사회는 아주 편협하고 이기적이지만 1년만 견디면 어떻게든 적응하는 신비한 세상이었다. 선생님들에게 졸업하기 전까지 취업하지 못한 학생은 문제아였고, 번번이 떨어지는 아이는 하자 있는 상품이었다. 그들은 진학을 선택한 친구는 세상 물정 모르고 도피하는 거라며 비난했다. 여러 사정에 못 견뎌 회사에서 학교로 돌아온 건 참을성이 없는 탓, 좋은 회사를 그만둔 졸업생은 철없는 별종. 설명이 필요 없는 기업에 입사한 학생은 학교의 명성을 빛내줄 트로피에 불과했다.
누구도 우리에게, 나에게 ‘내’가 중요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세상에 다른 길은 많으며, 충분히 고민하고 달려가도 늦지 않았다고, 설령 늦어도 괜찮다고- 당장 무언가를 선택해서, 뚜렷한 결과물을 보일 필요 없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해 3학년 중 가장 먼저 공기업에 합격한 재학생이 되어 사무실에 발을 디뎠다.
××.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호칭을 생략하거나, 싹싹한 태도와 친근한 웃음 따위를 요구하는 건 내가 고졸이어서, 혹은 여성이어서, 어쩌면 신입이어서겠지만 정확히 어떤 부분 때문인지 짚을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회사에서의 난 열아홉 여자애였으니까.
모르는 사람들은(어쩌면 들을 생각이 없는) 속 편히, 보잘것없는 학력과 스펙으로 그런 회사에 들어간 것 자체가 행운이며, 대졸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쉽게 손가락질한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읽고 있으면 그 편협한 시각과 옹졸한 마음에 한숨도 안 나온다.
유구하게, 무지한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드물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내가 카페에 높은 턱이 있는 걸 신경 쓰지 않았고, 또래 남자애가 원룸 주변의 치안을 따지지 않았던 것처럼.
익명으로 ‘고졸이 다니기에는 좋다’는 글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그들이 학위를 따기 위해, 취업을 위해 쌓아 온 시간과 노력은 솔직히 하자면, 내 알 바 아니다. 그들의 고통과 노력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대학 과정을 수료하지 않은 이들의 처우를 신경 쓰지 않지 않은가. 나의 처지를 이해하지도 공감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의 상황을 알아서 무엇하며, 인정한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우리의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았고, 쉽게 비난받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