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를 했을 때 기뻤죠, 퇴사는 행복할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특성화고를 진학하기로 한 이유는 수능을 보기 싫어서였다. 농담조이지만 진지했다. 내가 여태껏 노력한 것이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뜩잖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게 꿈일 만큼 책을 좋아해서 문헌정보학과를 들어가 사서가 되고 싶었지만, 학과의 비전과 4년 등록금을 감수할 정도로 매력적인 조건도 넉넉한 형편도 안 되었다. 그러던 중 취업이 목적인 상업고등학교를 알게 되었고, 나는 ‘유능한 회사원’이라는 이미지를 쫓아 인근 상고로 입학했다.
동급생이 150명도 안 되는 작은 중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정도는 ‘특출나게’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닐 정도는 아니라고 단정해서일 수도 있다. 3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교 1등을 해서였는지, 담임부터 친척까지 만류했지만 나는 완강했다. 최근 상상해 봤다. 우리 집이 나와 동생의 4년제 대학 정도는 어찌어찌 보내줄 만 했으면, 나는 그런 결심을 했을까? 중학생 때라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존재 자체도 몰랐을 가능성이 더 컸지.
어쨌든, 난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그럭저럭 잘 지냈다. 공기업을 목표로 남들이 딴다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과에서 3등 정도는 유지하며. 마음속으로 항상 불분명한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봉사활동, 대외활동, 대회 준비, 자격증 시험과 내신 관리까지 하며 바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죽고 싶다는 말은 안 했었다.
2년 동안 쌓아온 생활기록부를 옆에 두고 첫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할 때의 막막함이란. ‘이런 일을 했어?’ 싶은 내역이 생기부에 나열되어 있었고, 그놈의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자소서는 해당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경험을 물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해당 직무랑 관련 있는 일이 있으면 경력직으로 넣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면서도 수업 시간에 취업실에서 친구들과 자소서를 적으며 울분을 토하는 일을 괴로웠지만 즐거웠다. 함께,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동료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 같은 회사를 노리는 경쟁자인 동시에 바로 옆에 있는 전우기도 했다.
첫 번째로 지원한 회사를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두 번째 자소서가 합격한 후 다른 곳은 넣지도 않은 채 다음 전형에만 매진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온 다른 피면접자와 달리 혼자 온 내가 대견하다는 느낌에 취해 긴장감을 마모시키며 성심껏 봤다. 스스로가 순발력이 좋다고 느꼈다.
같이 면접을 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났던 아이가 ‘너 붙을 것 같다’라며 속삭였고, 난 ‘네가 붙을 것 같아’라며 훈훈하게 헤어졌다. 지금에야 ‘그때 손을 잡고 같이 나갔어야 했는데’라고 씁쓸하게 웃는 사이지만.
합격 발표가 난 날은 동아리 전일제였다. 다른 회사의 당락을 기다리는 친구와 함께 주스를 의무적으로 삼키며 불안함을 토로하고, 일정이 끝난 후 다른 친구와 만나 가장 좋아하는 만화 신간을 사 읽으면서도 초 단위로 움직이는 시계에 혼이 팔렸었다.
손은 떨리고 심장은 제동 장치가 걸리지 않은 마냥 뛰었고, 먹을 것도 없는 위장은 뒤집힐 것 같았다. ‘합격’을 믿을 수 없어 친구에게 확인해 달라 하고,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 결과를 알릴 때의 쾌감은 지금도 선연하다. 그 ‘순간’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성취였으니까. 나에게 회사가 ×같은 것과는 별개였다.
기뻤다. 상고에 들어간 것을 어긋난 선택이라고 초를 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이, 우등생이자 모범생으로서 받아 온 ‘자랑스러운 딸’의 맥락을 이을 수 있어서- 하지만, 그렇기만 했다면…….
나쁜 게 꼭 나쁜 건 아니고, 좋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