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신은 회사 안 다녀요
처음 사무실에 들어갔던 날을 기억한다. 3주의 연수와 이틀의 이론 교육을 받은 후 긴장감을 참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문 앞을 서성였던 날. 손을 가지런히 포개어 사무실 구조를 설명해주는 상사를 따라다니던 열아홉.
특성화 고등학교, 대학이 아닌 취업을 목적으로 진학한 대부분 재학생이라면 졸업 전- 가능하다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좋은 회사에 합격해 학교를 떠나기를 소망했다. 그 많은 이들 중 나는 운이 좋게도 두 번째로 자기소개서를 낸 회사에 단번에 합격했고, 동급생 중 가장 먼저 공기업 합격자가 되었다.
졸업여행에서 돌아와 여름 방학 직전, 학교와 반대 방향인 버스를 탔을 때 기분이 어땠더라. 최소한 죽고 싶지는 않았다. 텅 빈 버스, 길거리에 심어진 짙은 녹색 나무, 고요하고 서늘한 아침 공기. 낯선 풍경이 교차했다.
대중교통으로 30분밖에 되지 않은 거리였으나 처음 본 동네에 회사가 있었고, 나는 괜찮은 회사에 일찍이 들어왔다는 자부심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 지금. 나는 한 번의 부서 이동과 세 번의 업무조정을 견뎌 네 번째 인수인계를 받은 2.5년 차 직장인이었다. ‘우리’ 회사라는 어감을 혐오했기에 ‘여기’ 회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이제 3년 차’라는 팻말을 얼떨떨하게 들고 있던 평범한 사람.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3년 차라니, 입사일로부터 3년을 못 채웠는데 왜 3년 차라 하는 거지? 들어온 연도부터 바로 ‘1년’으로 헤아리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부조리한 업무 배치와 불합리한 월급을 받았을 때 화가 나서 그렇지. 신입이 할 수 없는 업무량이나 진지하게 투잡을 고민하게 하는-물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불가능하지만- 액수 같은 것들에.
화.
고졸과 대졸은 처음부터 직급도 직책도 급여도 다르다. 그럼 업무도 다르지 않냐고? 불행히도, ‘아닌’ 확률이 더 높았다. 자금을 운용하거나 전산을 다루는 부서는 전공자를 배치하는 게 당연했지만, 내가 맡은 업무들은 놀랍게도- 학력과 전공이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똑같은 업무를 줄 거면 왜 차등을 두었는지-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와 생각은 다음 이야기에 다루도록 하겠다. 그놈의 ‘화’가 진정되면 말이다.
회사의 질서와 분위기를 습득하기에는 미숙했고, 기존에 잡힌 관행을 이해하기엔 합리적이지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처음 몇 달은 나름 행복했다. 정제되지 않은 천진함(아주 좋게 말해서)과 그 황당함에 면박을 주지 않는 상냥한 직속 선배가 있었기에.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슬퍼진다. 아무것도 몰랐고, 그 무지함을 관대히 여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당연하지만 경험하기 힘든 환경이니까. 유일하게 내가 ‘퇴사’를 상상조차 안 했던 시기였지만 단꿈은 쉽게 박살 났다. 윗분들의 독단적인 사정으로 다급하고 대대적인 인사발령이 강타했고, 나는 퇴사와 열 걸음 가까워졌다.
스물하나, 3년 차 회사원. 신의 직장이라고 오해받는 공기업에 근무했지만 신은 직장 따위를 다니지 않는다며 설파하며, 회사의 온갖 부조리와 차별에 불만을 품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겠다는 의지만 차오른 아마추어 불편러.
스스로 둔감하다 생각했지만 회사에선 ‘예민’한 사람이 되어 혼자 속을 뒤집기만 골백번. 달달한 디저트와 심리 상담으로도 풀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이 이야기는 입사를 꿈꾸던 시절부터 퇴사를 염원하기까지의, 불만이 가득했던 스스로를 소진하며 끝없는 고민을 한 야기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