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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Jun 20. 2023

그래서 나는 지금

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3년 6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광주에 갔다. 전교조 5.18 청년 교사 역사 기행. 전국에서 모인 65명의 청년 교사가 6월 17일부터 18일까지 1박 2일을 함께했다. 5.18 민중 항쟁에 대한 강의를 듣고, 생각을 나누고, 국립 5.18 민주묘지와 망월동 구묘역을 참배하고, 전일빌딩과 도청 일대를 탐방했다.     


     모든 시간이 의미 있었지만 특히 살레시오고등학교 서부원 선생님의 강의를 잊을 수 없다. 강의 내용 중 이 두 가지 내용이 각별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라는 말은 강자의 언어이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혹여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채 나아갔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향이고 강자에게 유리한 방향일 것이다.     


‘모든 역사는 당대사다.’ - 베네데토 크로체     


     과거를 덮고 눌러 납작하게 만든 채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진상 규명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과거의 뼈아픈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 준다. 나는 5.18 민중 항쟁에 대해, 제주 4.3 항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알려 하며 기억하려 하는가. 또한 더 가까운 역사인 10.29 참사에 대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리고 이 땅 수많은 노동자의 억울하고 처절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자신이 강자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약자와 연대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지 않을까.     


     또한 ‘모든 역사는 당대사다.’라고 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그런 의미에서 5.18 민중 항쟁도 현재의 역사다. 현재 ‘나’의 역사다. 5.18 민중 항쟁에 대해 배우고 느끼고 감동에 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5.18 정신이란 무엇일까?’, ‘내 삶 속에 그 정신을 녹여 내려면 구체적으로 오늘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천하는 일이 남아 있다.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5.18 정신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이자, 고통받는 이웃과 연대하는 정신이다. 그리고 그 정신을 실천해야 할 장소는 바로 나의 집, 나의 일터, 내가 장을 보는 상점, 내가 걷는 거리, 내 매일매일의 삶의 현장이다. 왜냐하면 오늘 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내 일상 속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연대하는가. 직장에서 부당한 지시나 약자를 소외시키는 관행을 마주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뉴스에서 노동조합의 파업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상점에서 거리에서 또 그 밖의 어디서든 마주치는 피부색이 다른 이웃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가. 나보다 가난한 이웃을 연대해야 할 친구로 여기는가, 진심으로 그러한가. 이 사회 곳곳에서 억울하게 눈물 흘리는 이웃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내 직장인 중학교에서 백 명 가까운 학생들과 수업을 했고, 그보다 더 많은 학생들과 인사를 나눴으며, 십여 명의 동료들과 업무 관련 대화를 했다. 학생의 실제 상황보다 규정에 적힌 단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장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학생과 조심조심 대화를 나눴다. 지금은 학교 앞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고, 이 글을 다 쓰면 집에 가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분들을 생각하며 ‘네가 보고 싶어서’ 연작을 그릴 것이다.

     

     이런 나의 하루하루는 결코 5.18과 무관하지 않다. 4.3과 무관하지 않다. 10.29와도 4.16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이 시각,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 어떻게 저항하고 연대했는가. 지금껏 듣고 보고 읽어 배운 온갖 훌륭한 담론들이 가슴을 적시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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