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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11. 2024

사랑의 뒤편 (남색대문)

영화 속 ‘장면’ 돋보기

 영화 <남색대문>은 미성숙한 청춘남녀의 엇갈린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흔히들 등장하는 사랑의 ‘결실’과는 멀기 때문이다. 애정씬도 나오지 않거니와 그렇다고 눈물을 쥐어짜는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것도 아니다. 영화는 보통의 로맨스 영화에서 다루는 인물들 간 ‘마주하기’ 방식의 사랑이 아닌 ‘바라보기’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뒤편에 서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이의 뒷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당연히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 ‘마주하기’식의 사랑이다. 그렇게 ‘마주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러다 상대가 나였으면 좋겠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줘” 영화 속 배경의 한여름의 타오르는 태양처럼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에서 나오는 사랑의 방식이다.

 반면 영화 <남색대문>에 나오는 사랑의 방식은 서로 마주해 불꽃 튀는 양방향의 사랑이기보다 바라보는 사랑이다. 영화는 바라보는 사랑을 말하겠다고 선언하듯 첫 장면부터, 또 이어지는 여러 장면과 마지막 장면까지 사랑스러운 얼굴로 연인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드러나는 갈등이나 에피소드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담담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사랑에 대해 묘사한다. 


 바라보는 사랑은 상대의 어떤 반응이나 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구도는 마주하는 것과 다르게 그 상대가 마주한 나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그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본다. 난 그런 상대를 바라보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사랑하는 상대의 흔적을 느낄 뿐이다. 그 찰나의 흔적은 상대가 없는 나의 일상을 사랑하는 상대로 가득 채운다. 


 자전거를 탄 채 앞서거나 뒤따라가거나 하는 걸 반복하는 장면에서도 영화는 같은 방향으로 가되 서로 뒤섞이지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관조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나를 사랑해 줘서가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랑. 집요한 사랑이다.

  

 장시하오에게 등을 보이고 외면하는 멍커로우,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끈질기게 “난 전갈자리, 기타클럽, 수영부야”라며 자기소개를 하거나 왜  그랬냐고 같은 말만 반복하며 따지는 장시하오의 유치한 외침은 역설적이게도 어떤 사랑 고백보다 강렬해 보이는 이유다.     


 마주하는 사랑을 하다 보면 결국 상대와 나는 섞인다. 상대는 더 이상 내가 처음 좋아하게 된 상대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은 상대가 된다. 물론 나와 관계를 맺으며 상대는 전보다 친근해지고 더 잘 맞고 좋을 수 있다. 분명한 건, 그 상대는 내와 관계를 맺기 전,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그때 바라보던 상대는 아니게 된다.     


 사랑하는 눈빛으로 나를 마주한 상대의 눈에는 결국 내가 비친다. 

 바라보는 사랑을 하는 사람의 눈에는 상대의 온전한 뒷모습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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