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가락마다, 마디, 손톱마다 영혼이 있다. 섬세해서 잘 삐지기도 한다.
“곱다” 어르신들이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 봉사하러 갔던 날이었다. 내 손을 보더니 한 어르신이 말했다. 군데군데 굳은 살도 있고 손가락 마디도 툭 불거져 곱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르신의 손을 보다가 보니 상대적으로 고와 보이긴 했다. 어르신 손톱을 깎아주고 영양제를 발라주던 시간이었다.
첫 만남에 손을 이렇게 골똘히 바라보니 어색하기도 했다. 동시에 손에 보이는 주름과 자잘한 손금들이 어르신이 살아온 세월의 겹을 보는 것 같아서 손을 잡고 영양제를 바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가까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전에 발려있던 매니큐어를 지우다가 어르신의 오른손 엄지손톱을 봤다. 왼손 엄지손톱보다 6배는 더 작았다.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르신이 불편할까 봐 괜히 못 본 척, 다른 손톱들부터 발려있던 매니큐어를 지웠다. 다른 손톱 영양제를 다 바르고 그 엄지손톱만 남았다. 발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슬며시 발랐다.
어르신은 내 손길에서 고민의 흔적을 느꼈는지, 엄지손톱이 그렇게 된 이유를 말해줬다.
“예전에 딸이 작두로 잘랐어 도와준다고 하다가”
어르신은 소여물을 만들려고 짚을 자르다 다쳤다고 했다. 건초를 작두에 대면 작은딸이 작두를 발로 디디다가 합이 안 맞아서 엄지손가락이 작두에 썰려 나갔다. 그 바람에 손톱도 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생살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또 치료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바쁜 농사일을 계속해야 했던 할머니의 지난날이 보이는 듯했다. 할머니의 작은딸이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을지, 엄마의 손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진 않았는지. 할머니의 죽은 나무토막 조각 같은 손톱에는 어떤 마음들이 모여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안 발라주면 얘가 삐진다네?”
어르신은 또 잠시 생각에 잠긴 날 부르듯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들이 그러대, 안 발라주면 얘가 삐진다고,”
어르신이 그거, 병신 발라서 뭐하냐고 그러면 센터에 있는 선생님들은 어르신에게 그렇게 장난을 치며 발라준다고 한다.
어르신에게 그 말은 어이없고 웃긴 거 같으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말인 것 같았다. 연신 내게 반복해서 말하며 웃었다. 어렴풋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장난인 줄 알면서도, 아니면 상대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나, 감동을 주려고 의도하지 않은 툭 내뱉은 작은 말. 그 말이 때로는 당사자에게는 큰 울림을 주는 말이 될 때가 있다.
다치고 나서도 일해야 했던 손, 혹여 딸이 걱정하고 미안해할까 내색하지 못했던 슬픔이 담긴 손.
때문에 어르신의 그 엄지도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일하고 또 이후 수많은 세월을 아무렇지 않은 척 보내야 했을 것이다.
삐지는 것은 무던한 마음과는 반대로 꽤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이다. “삐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르신은 무던한 척했고 숨겨야 했던 손가락의 마음을 늦게나마 알아주고 그제야 마음껏 풀어줄 수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