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꽃’ 돋보기
영화는 인물들 사이 예기치 않은 사건과 그 이후 전개되는 사건을 통해 삶의 양상을 묘사한다. 이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불꽃의 특성과 비슷해 보인다. 그 불꽃은 친구인 니시와 호리베 두 주요 인물을 통해 드러난다. 니시는 다섯 살 된 딸을 잃었다. 아내도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런 니시를 호리베와 후배 형사들은 동정한다.
동정 어린 마음에 호리베는 니시에게 아내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편의를 봐준다. 그러다 오히려 잠복근무하는 사이에 귀여운 딸이 있고 건강한 부인이 있다던 호리베는 걷지 못하게 된다. 그런 호리베를 두고 아내와 딸은 떠난다. 또 니시를 안타깝게 여기던 후배 형사도 죽는다.
영화는 초반 호리베가 니시의 아픈 아내를 안타까워하면서 니시에게 “우리 아내는 너무 건강해서 탈이야”라고 위로 아닌 위로하다가 돌아서는 “그래도 건강이 최고지” 하면서 두 인물의 대비된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또 이 사실을 인물이 인식하는 것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관객은 호리베가 자신이 마주친 단편적인 고정된 것을 인식할 뿐, 계속 변하는 상황과 처지는 볼 수 없었단 것을 그 이후 사건들을 통해 보게 된다. 불쌍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자리를 비우도록 한 뒤 총을 맞아 반신불수가 될 것도 몰랐고, 사랑하는 가족까지 그런 자신을 버리고 떠날 줄도 몰랐다.
실의에 빠진 호리베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다가 살아남게 되어 그림을 그린다. 한편 니시의 삶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경찰을 그만두게 되고 경찰 복장으로 은행을 턴다. 또 다른 조직 폭력배를 죽이게 되고, 남은 두 발의 총알로 아내와 삶을 마감한다. 물론 모든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가 갈등이 있고 예기치 않은 반전과 기폭제가 있다.
영화 하나비는 어떤 이야기 못지않게 강렬한 이야기와 자극적인 전개 방식을 따르지만, 인물과 거리를 둔다. 등장인물의 삶과 이야기에 관객이 몰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 그 삶은 불행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안심할 것도 불안해할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떤 삶을 특정한 잣대로 판단하고 묘사한다면 이미 흐르고 없을 찰나의 무상한 순간을 어떻다고 하다고 규정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그림은 관객의 몰입을 깨면서 거리를 두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또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기도 한다. 등장하는 그림들은 언뜻 기괴하다. 동물이나 사람의 얼굴 대신 꽃이 있는 그림이다.
얼굴은 종종 마음의 창으로 표현된다.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은 그만큼 사람의 감정이, 또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역시 그만큼 많이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리베와 니시의 삶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그런 감정들은 무상하며 그 감정들의 집합인 삶 역시 좋거나 나쁘거나 한 가치를 매길 수 없이, 고정되지 않은 무상한 것임을 나타낸다. 인간의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은 무상한 것을 쉼 없이 따라가는 괴롭고 모순된 삶을 반증한다. 그 자리를 꽃이 대신한다는 것은 꽃의 속성을 살핌으로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꽃은 번식 기관이다. 동물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끌어낼 뿐.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가능한 높은 자리에서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화려하게 필 뿐이다. 꽃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꽃을 바람과 벌이 꽃가루를 실어 줘 번식한다. 꽃은 주위 상황에 개의치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피고 질 뿐이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불쌍하거나 부럽거나 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