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 낀 시금치처럼 성가신 단어가 있다.
-흥미진진-
내복을 입고 엎드려 글을 쓰던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다 틀린 단어라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선물을 '흥미 진지'하게 기다린다는 문장이었다. 이후로는 발음도 어려워 천천히 말할뿐더러 TV 자막으로 눈에 꽂힌 날엔 수능 금지곡을 들은 사람처럼 입안에서 수없이 굴려댄다. 흥미진지진진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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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그런 단어가 부쩍 늘었다. 문장력이 좋아지고 어휘력이 늘 줄 알았더니만 엉뚱한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무심코 쓰면 몰랐을 텐데 고민하느라 모니터를 노려보는 사이 단어가 한껏 낯설어진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가 될 때까지 응시하다가 끝내 맞춤법검사기에 탈곡하듯 부어버린다.
그제야 ‘마냥’인지, ‘처럼’인지 잘못된 표현이 고쳐진 해설지를 보고 커닝을 해 글을 마무리한다. 표준전과 없이 문제를 못 풀듯 자동으로 다 고쳐주는 시대에 익숙해져 부끄러운지도 모른다. 단어가 입에서만 돌고 기억이 나지 않을 때면 소리대로 입력해도 네이버 사전이 기가 막히게 꼭 맞는 단어를 찾아준다.
이쯤 되면 맞춤법 검사기와 네이버 사전이 공동 집필한다고 해도 될 판이다.
어지간히도 깁고 다듬어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닌데 가끔은 부아가 치민다. 뭘 자꾸 부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지, 왜 자꾸 국립국어원, 맞춤법 표준안에 따르면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는지 약이 바짝 오른다. 한술 더 떠서 표준어인 줄 알았던 단어를 전라도나 경상도 방언이라고 짚어댄다. 그 지역 사람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쓰던 말인데 다른 지역 말이라니. 괜스레 집안에 시집, 장가온 친척들 얼굴을 머릿속 필름으로 돌려본다.
글도 말 습관일 텐데 말을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반성해 보다가도, 어찌 보면 사전으로 담지 못하는 변방의 말을 하는 것 같아 되레 적어두고 싶어진다.
할머니가 쓰던 별난 말투가 얼마나 예뻤던가. 맛깔나게 살려 말하느라 단어가 찰지고, 문자가 아닌 소리로 배운 탓에 생활이 묻어난 언어, 멋모르던 시절 세피아 톤의 어린 시절 언어로 돌아갈 수 없듯 다시 들을 수 없게 될 말.
잊어버리지 않으려 입안에서 단어를 뭉쳐본다. 다시 듣지 못하면 어쩌지, 기억나지 않으면 어쩌지.
할머니의 말을 다시 들을 수 없듯이, 내 주위에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질까 봐 두렵다.
김영하 작가에 따르면, 작가니까 사전에 있는 말만 쓸 것 같은지 편집자가 오류를 잡듯 연락한단다.
"작가님, 사전에 없는 단어인데요?"
"제가 쓰면 사전에 들어갈 거예요."
-멋지네.-
사전이라는 게 문학작품에서 단어를 수집해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전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수정할 필요는 없을듯하지만,
나는 김영하 작가도 아니고, 문학 속 말뭉치가 아니라 오타쯤으로 읽히겠지.
오늘도 맞춤법 검사기와 사전에 상당한 지분을 내어준다.
소중한 공동 저자여, 동반자여.
사진 출처: Unsplash의 Clark 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