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인표 Jun 11. 2024

간(肝) 같은 관계


바오밥나무를 8년째 키우는 중이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수입하여 판매하던 화분용 바오밥나무, 묘목이라 지금은 구할 수도 없고 삽목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애지중지 키운 건 아니고 순둥순둥 스스로 잘 크는 녀석이다. 무엇보다 막 더워지기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크는데 올해엔 영 기운이 없고 심지어 잎을 떨구고 만다.


예사롭지 않아 화분을 들춰냈다. 흙이 팔꿈치를 다 잡아먹을 때까지 팔을 집어넣어 칡이라 말해도 될만한 뿌리를 들어내고 나니 천 조각 하나가 딸려 나온다. 화분 구멍을 막아뒀던 양파망이다. 배수망을 대신해 양파망을 작게 잘라 넣기도 하는데, 가제 손수건만 한 사이즈를 넣었던 걸 기억하지 못했다.


아주 예전에 채워놓은 목줄이 훌쩍 커버린 강아지 살을 파먹듯 양파망이 뿌리를 옭아매어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도구가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팽팽하게 조이고 있었다. 패인 살에서 피딱지가 들러붙은 끈을 잘라내듯 양파망을 겨우 끊어냈다.


아팠구나, 자르면 자르는 대로 새순 내어주고 물도 주는 대로 들이켜서 무던하고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라 여겼다. 따지고 보면 개중 좋은 도기에 넣어준 것도 나 보기 좋으라고 심은 것이지 바오밥나무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래 함께한 만큼 더 챙겼어야 했는데 가족 대하듯 했던 모양이다. 한편으론, 아프다고 노랗게 질린 이파리로 말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_

아버지의 간이 기능을 다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생명도 꺼져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병원을 갔어야지, 왜 방치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말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가장이라 그랬다고,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게 최선이라 그랬다는 변명은 나 보기 좋으라고 예쁜 도기에 식물을 심는 것과 같은 소리다.


가족은,

오래 같이 있어 주는 게 가장 큰 재산인데 얼마나 대단한 돈을 번다고,

꼭 그랬어야 했냐고,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야 떼를 쓰듯 말하고 있다.


이후로 말수 적은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고, 무엇보다 말하는 것에 예민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가까이 두지도 않았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야 의지에 따른다지만 가족이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아버지를 똑 닮은 오빠는 전공이나 직업도 혼자 연구하는 일이었으니 충분히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짐작은 했을 텐데,

그게 문제가 돼야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었으리라.


아빠와 같은 병을 얻어 119에 실려 갈 지경이 되도록 자신을 방치하고 함구했다. 똑똑한 형제인 줄 알았는데 꽉 막혀 고지식하고 고집이 아주 센 사람이었다. 병으로 정신까지 놓아버리자, 사회에서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런데도 가족이라 끊어 낼 수 없고 외면할 수 없었다. 살릴 수만 있다면 다 괜찮다고 여겼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족이라는 이름이 올가미가 되어 조여왔다. 나는 어느새 꽉 쪼인 목줄에 살이 베이고 피비린내를 맡은 파리가 들러붙는 유기견이 되어버렸다.


_

바오밥나무도 하엽으로 아픈 티를 내는데,  

식물도 아닌 사람이, 가족이,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가족이라서 감정을 숨기고 상처를 차마 말하지 못하는 관계,

침묵의 장기라고 하는 '간(肝)' 같은 관계가 되어 버렸다.


알아챘을 땐 이미 늦어버려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는 침묵의 장기.


그러니, 아프다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바오밥나무가 고마울 수밖에.



사진출처: 본인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가 어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