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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4시

별 좀 볼게

by 빌려온 고양이



"핸드폰 내려놔. 어차피 눈에 보이는 만큼 담지도 못해"


손에서 휴대전화가 느슨하게 떨어졌다. 그제야 액정 안에 갇힌 시선이 풀어졌다.


시작과 끝이 없는 은하수를 처음 본 건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였다. 온 사방이 은하수로 채워졌다. 뿌옇게 보이는 구름마저도 은하라 했다.

거짓말 같았다.


주변 사람들은 앱을 열어 별자리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런 앱이 있나 보네. 우리도 깔고 올걸."

"그냥 눈에 담아. 별자리 찾아서 뭐 하게?"


별을 보겠다면서도 휴대전화로 하늘을 가리고 앱에 시선을 가두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캄캄한 마당에 발라당 드러누워 손끝으로 선을 긋는 낭만도 모르는 사람들.


"알고 보면 좋잖아. 북두칠성 찾아볼까?"

"멍청이. 남반구잖아."


말과 달리 빼곡한 별 위에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를 그렸다. 여기는 모르는, 나만 아는 별 그리듯 했다. 이리 그어도 카시오페이아, 저리 그어도 카시오페이아가 될 만큼 별이 가득했다.


“저 십자가 모양이나 실컷 봐둬. 우리나라에선 못 보는 거라잖아.”

"또 볼 수 있을까?"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는 말에 더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그런 거니까.


_

반짝이는 건 별이다. 생각이 필요한 건 아니다.


"금성이다."

"인공위성이야."


"봤어? 은하철도 999 같은 거?"

"스타링크 트레인이야."


별이 아니면 행성이겠지 하던 것들에 인공위성, 우주정거장, 스타링크 같은 이름이 덧대진다.

굳이 짚어내는 사람 앞에 나 또한 낭만을 잊은 지 오래라는 걸 깨닫는다.


마침, 수성, 금성, 목성 등 여섯 개 행성이 나란히 선단다.

<행성 정렬>


샛-벼얼. 샛뼐! 세엣벼-er.

입안에서 단어를 굴리고 또 굴려본다.

유별나게 이름이 많은 별.

이름이 이렇게 예쁜데 해뜨기 전 샛별은 얼마나 예쁠까.

일몰 후 금성보다 일출 전 샛별이 보고 싶어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오늘도 속는 셈 치지 뭐.

우주쇼라는 게 시간만 맞추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지만 막상 보이지 않아 실망할 걸 안다. 그런데도 새벽 시간에 맞춰 거실에 쪼그리고 앉았다.


동서남북을 확인하다 말고 시선을 거뒀다.


-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데.-


이상하다.

우유니 사막 하늘에선 은하수가 쏟아졌는데 지금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위로랍시고 건네던 말이 주위를 에워쌌다.


별보다 새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조용한 새벽만큼이나 낮은 소리가 묵직하게 깔렸다.

인공위성이야-처럼 매몰차진 않지만, 네가 지금 별 볼 처지야? 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볼리비아가 아니라서 그래? 남반구가 아니라서 그래?


별 좀 보겠다던 마음이 물컹하게 내려앉았다.

속이 창밖으로 흘러내렸다.

서운함을 넘어 좀 아팠다.


그냥 별 좀 볼게.

어둠 말고 별을 좀 볼게.


고개를 휘휘 저어 본다.

새벽이 사라지고, 샛별도 희미해졌다.


"그거 알아? 우린 밤하늘의 과거를 보는 거래. 별도 달도, 수만 년, 수억 년 전의 과거.

어쩌면 저 별도 지금은 죽었을지 몰라."


"과거에 매달리는 것만큼 추한 건 없어."


감성도 모르는 놈.




사진 출처: https://www.rutaverdebolivia.com/stargazing-planner-uyuni-salt-fl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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