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여기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다.
토론토에 도착한 날이었다. 굳이 몬트리올과 퀘벡까지 들러 늦추고 또 늦췄었다. 캐나다에 가는 이유가 토론토 때문은 아니라고, 너 때문은 아니라고 에둘러 돌고 돌아가던 날, 쇼핑몰 문을 잡고 나는 서 있었다.
그런 날이었다.
그를 찾는 건 아니라면서도 내 발이 우리가 자주 가던 곳부터 들어서고 있었다. 예상대로 아주 낯선 사람으로부터 커피와 에그 타르트를 건네받았다. 하진이를 모르지만 대신 조금도 변하지 않은 에그 타르트를 먹고 가라고 그가 말했다.
사실이었다. 맛은 그대로였다.
왜지. 너는 없는데 에그 타르트 맛은 왜 변함없이 맛있지. 맛도 변해야 당연한 것 아닌가.
당연하다는 것이 이리 불공평해도 되는 것인가.
자주 가던 쇼핑몰에 이르렀을 때, 유아차를 밀며 나오는 여성과 마주했다.
문을 열며 비켜섰다.
당신 먼저 가시라, 편하게 나가시라.
엄마 뒤로 꼬마가 따라붙었다. 그래, 너도 가야지. 손 놓칠라, 얼른 엄마 옆에 바싹 붙어라.
주춤하는 사이 노부부가 뒤따른다. 그래요, 어르신.
"인종차별일 수 있어. 그러니까 문 잡아주고, 짐 들어주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동양인이라서 그런 일이나 하는 사람 취급한단 말이야."
주저리주저리 귀를 간지럽히는 잔소리를 어깨로 끊어내며 문에서 언제 손을 떼야 할까, 탁탁 발끝으로 시간을 재촉할 즈음 백인 여성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Your turn.”
_
주민센터에서 책을 찾아 나오는 길, 할머니를 대신해 문을 잡아드렸다. 그리고 문 앞에 멀뚱히 선 채로 욕을 먹어야만 했다.
연로한 외모, 느릿한 발걸음과 달리 그녀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한여름 쉰 밥알처럼 뭉개진 말이 질질 흘러내렸다. 제 모양을 잃은 단어를 뭉쳐보자면, 문을 의지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넘어질 뻔했다는 것. 정말 그녀가 다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욕설이 성경처럼 들릴 정도였다.
나이가 들수록 걷는 방법에도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 텐데 아픈 경험이 그녀보다 부족했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네가 걸어온 길이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네가 갈 길이다.
_ 출처 불명
그만해도 좋을 법한데, 성경 같던 쉰 발음에서 진물이 찍찍 늘어졌다. 말이 한없이 늘어졌다. 문을 잡은 손을 언제 떼야 하나 주위를 살피는데,
“너 여기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의 목소리가 다시 귓바퀴를 휘감는다.
끝내 만나지도 못하고 목소리만 더듬었던 토론토 쇼핑몰 앞으로 나를 이끈다.
하진아, 여기, 거기가 중요한 건 아닌가 봐.
당연하게 문을 잡아주는 것이 때로는 네가 없는 것만큼, 에그 타르트 맛이 변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불공평하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Alaksiej Čarankievi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