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시간이 좀 걸리는데요. 비용도 그렇고."
사설 업체에 맡긴 적 없던 시계였다. 비용과 시간 때문에 마지못해 맡기면서 대단한 명품이라도 되는 양 장인을 찾아 강남까지 갔던 날이었다.
"시곗줄은 어디서 구매하신 거예요?"
홍콩 지점에서 겨우 재고가 풀렸을 때 몇 개 미리 사뒀던 거였다. 어렵게 구해 귀하게 간직했던 것들이 세월에 닳아버린 가죽 정도가 될 줄이야.
“수리는 고민 좀 해볼게요.”
시곗줄에서 떨어지는 조각을 손끝으로 끌어모았다.
그는 수리를 마친 다른 시계들과 함께 배터리와 시곗줄이 분리된 애착 시계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고민해 보시고, 나중에라도 꼭 살리세요. 시계가 아주 독특해서 아깝네요. 줄은 다른 거로 교체해도 되니까."
‘이 시계는 시곗줄이 생명인데요’라는 말은 애써 하지 않았다.
시계 장인이라도 이해 못 할 나만의 집착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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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이 눈치 없게 사진을 펼쳐놓았다. 화투장이라도 까듯 하나하나 내려보다가 딱 두 장의 사진 앞에서 멈칫했다.
"이 사진은 왜 찍은 거야?"
동료들이 묻곤 했었다.
그러니까, 시계 이야기라 해야 할까, 모텔에 얽힌 이야기라 해야 할까.
바르셀로나로 출국하던 날, 모텔에 시계를 두고 온 걸 알았다. 같이 잤던 남자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주저도, 민망함도 없었다.
다시 구하기 어려운 디자인이었다.
시계를 핑계 삼지 않아도 다시 만날 사람이었다.
단지 애착 시계가 얽혀버려서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침대 옆 바닥에서 찾은 시계를 모텔 직원이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 직원을 칭찬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난 시계를 찾으러 그곳에 다시 들른 그가 너무 듬직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시계를 되찾은 안도감이 그에 대한 믿음의 감정으로 잘못 발현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바르셀로나 호텔 앞 벤치에서 통화를 하는데 그 시간의 공기가 너무 예뻐서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진을 채운 건, 일렁이는 가로등 빛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손끝에 애정을 묻히던 연인이었다.
벤치 위에 올려놓은 무릎이, 등받이에 걸친 팔 끝이 오롯이 서로를 향해 있었다. 일상을 살아갈 현지인이라면 다음날이 걱정될 만큼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관광객인 나만큼이나 밤을 붙들고 있었다.
그날의 통화를 설명할 수 없었고 그 연인을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그러니 사진을 찍은 이유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리고 시계는 멈췄고, 모텔도 그도 사라졌다.
말끝마다 번지던 연인의 웃음과 서로를 향하던 손끝만 아직 움직일 뿐이다.
마치 프레임에 봉인해 둔 것처럼.
사진 출처: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