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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범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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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Oct 28. 2021

교각 위에 서는 여자

평범한 A

“그래서, 반응이 어땠나요?”


컵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좋다. 흰색의 도자기 풍. 안에 든 커피의 따뜻함이 느긋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꽤나 신경 써서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마주 앉은 이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급할 것은 없지. 손톱 끝으로 컵을 두드린다. 팅팅. 그는 잔뜩 부은 얼굴을 한 채 무언가를 곱씹는 것 같다. 창문 틈새를 따라 바닥에 늘어진, 아침의 햇살을 바라보는 고양이 같은 얼굴이랄까.


마음을 결정한 것 같다. 그가 입을 연다.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어요.”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요?”


네-하고 대답하는 그의 얼굴이 자뭇 씁쓸해졌다. 하지만 꽤나 중요한 질문이었을 텐데요. 당신에게나, 또 서로에게나.


“네… 그렇죠. ‘우리 부모님을 뵈러 가자’고 물었죠. 굉장히 짧은 말이잖아요. 그렇죠?”

“물리적인 길이를 말씀하신다면…”


맞아요. 물리적으로 정말 짧고,  간결한 문장이죠. 입술 밖으로 터진 울림이   초도 가지 않을 거예요. 해봤자 지하철 승강장 사이의 거리 정도 밖에는 안될 겁니다.”

“지하철 승강장이라.”


따라 읊는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어느 정도 끄덕인다. 끄덕임은 두어 번 이어졌다. 아무래도 자신이 제시한 비유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런데 그걸 말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온갖 조사들과 문장부호들을 넣었다가 뺐는지 몰라요. 심지어 종이에 적어보기까지 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서요.”


“차이가 있죠.”하고 내가 말한다. 분명히 차이가 있지.


“정말이지 지하철 승강장 사이를 넘나드는 마음으로 건넸던 말이었어요.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후회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대답이 없었군요.”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푹 숙인다. 영락없이 실연을 당한 청년의 모습이다. 아마 그로써는 꽤나 용기를 냈던 말임에 분명할 것이다. 3년 간 이어졌던 교제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국면으로 들어서게 될 분기점으로 생각했을 터다.


그는 전원이 끊어진 라디오처럼 침묵한 채 가라앉았다. 다음으로 이어질 말까지의 묵직함을 느끼며, 앞에 놓였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쩌다 뽑힌 콘센트를 제자리로 꽂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 어쩌면 그게 대답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침묵을 말하는 건가? 그래. 대답에 꼭 소리가 동반될 필요는 없지. 이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한동안 저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너무도 차분한 눈빛이었어요. 깊은 바다처럼 말이죠. 허벅지가 아파올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는 저의 심정과는 완전 반대인, 그런 차분함은 참 사람을 더 초조하게 만들더군요.”


나는 언젠가 본 적 있던 동해 바다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저에게 어딘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것도 지금 당장 말이에요. 저의 의사는 중요하지도 않았는지, 곧바로 가방을 챙겨 일어나더라고요.”

“급하게 가야 했던 곳입니까?”


“한 교각이었어요.”

나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가 급한 듯 덧붙였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모두 입에 들이부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냅킨으로 입 주변을 정리한 그는, 대뜸 나를 바라보았다.


“같이 가주실래요? 그 교각, 거기서 나머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운전 중이었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 결연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덜 마신 커피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치지 못한 채, 옆자리에서 길을 안내하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핸들을 꺾었다.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15분 정도 악셀을 밟았나, 한적한 교차로가 보였다. 그리고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낡은 교각도 눈에 들어왔다.


저기예요-하는 말과 함께, 그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내가 뒤따라 나간다. 공기가 차갑다.


“저 교각이에요. 그녀와 그 길로 여기로 왔었어요.”

“그리고는?”


“그리고는-.” 그가 발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이 계단을 타고 교각 위로 올라갔어요.”


나를 뒤에 두고는 열심히 계단을 오르던 그가, 문득 멈추고는 뒤를 돌아본다.


“정확해요. 딱 이런 느낌으로 올랐어요. 그녀는 뭔가  홀린… 것 같았달까요. 늘 다정하게 맞잡아주던 손 마저 뿌리치고는 급하게 계단을 올랐어요.”


더 이상 발을 올려놓을 계단이 없어지자, 그는 교각의 중앙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다리 위에는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가로등도 낡은 빛만 뿜어대는 이런 외진 곳에 사람이 다닐 리가 없었다. 평평한 교차로 위에 불쑥 솟아오른 신호등들이 노란불을 깜빡이고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밑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자주 온다고 했어요.”

“그녀가요?”


그가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네. 시간도 얼추 비슷하네요. 이 시간대를 즐겨 찾는다더군요.”

“그렇지만 왜…?”


“저도 그게 너무 궁금했습니다. 사실 그때 이 다리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줄곧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물어보지 못했어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있죠? 그녀의 옆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억세 보였거든요.”


나는 그녀의 단정한 얼굴을 떠올린다.


“저한테 담배를 하나 펴보라고 했습니다.”

“담배를?”

“네.”


대답과 함께 그가 품에서 담뱃갑을 꺼낸다. 진갈색의 작은 갑에서, 역시나 심지가 누런 담배가 나온다. 라이터를 튀기는 소리가 난다. 뒤이어 흩뿜긴 파란 담배 연기가 부싯돌 소리를 밀어낸다. 불이 붙으면 연기가 난다. 당연한 인과관계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담배 연기에서는 어딘가 고소하면서도 매운 향이 난다. 그 냄새에, 카페에 남기고 온 커피가 생각난다.


그런데 정작 그는 담배 맛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어서 다 타버리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어떠한 류의 음미도 없이, 필터 끝까지 담배를 태웠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녀 앞에서 담배를 피는 것은 처음이었지요. 그런데도 저한테 어떤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줄곧 다리 아래였어요. 꼭 아래에서 차오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처럼요.”


손가락을 튀겨, 담배 끝에 맺힌 불꽃을 털어낸 그가 말을 이었다.


“그녀가 꽁초를 건네받았어요. 담배 냄새라고는 질색하던 사람이었기에, 그 광경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툭.


그의 손을 떠난 꽁초가 교차로 위에 떨어졌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차가움에 잔뜩 긴장한 우리 사이의 밤공기를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소리의 발원지 위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엉뚱한 인과관계가 내 머리를 메웠다. 꽁초 위를 트럭이 지나간다.


“그게 다예요.”


채 흩어지지 못한 담배 냄새가 전해진다.


“정말이지 그게 다예요. 이 자리에 잠시나마 서있다가, 그대로 등을 돌려 가 버렸습니다.”


차를 타고 교각으로 향하던 때부터, 무섭도록 차분한 빛을 띠던 그의 눈빛이 일순간 격하게 흔들렸다. 깊은 바다가 뒤집히고, 거센 파도가 쳤다. 그녀의 눈빛이 이랬다구요-하고 말하는 듯이.


우리는 다리를 내려왔다. 그는 마지막 계단을 밟음과 동시에 다시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오늘 실례가 많았다는 말만 남기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다.


나는 길가에 대 져 있던 차 옆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교각은 내가 오르내리기 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다리의 흉물스러운 밑부분이, 신호등의 노란 깜박임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했다.


문득 확신이 몰려왔다.


그녀는 교각 위에 섬으로 써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아래를 바라봄으로써 자신 스스로에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다. 떨어질 것인가, 난간을 붙들어 매고 있을 것인가. 이제껏 살아왔던 텅 빈 인생 속에서 가지게 된, 최초의 선택권을 유감없이 펼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떠한 류의 충족감을 느낄 것임에 분명하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자신을 몰고 가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


그녀 속에 끔찍하게도 차분히 눌러앉은 바다는, 그런 원초적인 쾌감 앞에서 일렁인다.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난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문을 연 점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별 수 없이 차의 본넷에 몸을 기대어 욕구를 달랜다.


교각의 한가운데에서 그가 내비친 격렬한 눈빛을 떠올린다. ‘꿈에라도 나오겠군.’ 짐짓 혼잣말을 해보지만, 심장의 거센 박동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엄한 간수의 채찍질 아래에서 노를 젓는 노예처럼.


황량한 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지금 내 눈 안에서는 어떤 것이 일렁이고 있을까.


신호등은 끊임없이 노란 불을 깜박이고, 내가 기대선 차의 엔진에서는 모닥불 타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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