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 135호
-134호의 上편에 이어-
(어느 날, ‘나’는 등대의 빛에 이끌려 떠오르는 꿈을 꾸게 되고, 작은 어촌인 등대마을에 머물렀던 때를 회상한다. 나는 그곳의 등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는, 매일매일을 항구 앞에 앉아 등대를 바라본다. 그러다 이장님이라 불리는 노인에게 이 어촌이 쇠퇴하게 된 배경을 듣게 된다. 떠나간 명태가 등대 빛을 보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노인의 바람과는 달리, 나에게는 김총무라 불리는 한 기묘한 인물이 접근해온다. 그와 동시에, 마을에 등대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주위가 시끄럽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누군가는 흘릴 눈물을 모으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마구 일그러진 감정들이 공기를 울리는 탓에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다. 격랑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가 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게,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소각로 안으로 들어간 관이 곧 주황색 불꽃으로 가득 휩싸인다. 그 불빛은 나로 하여금 한 노인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을 회관에서 보았던 주황빛의 시선. 그때 마을 회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며칠 전 나는 마을 회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을 권유 받았더랬다. 등대의 처분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는데,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얼굴을 비쳤던 것은 다름 아니라 총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등대마을이 어떠한 세력들로 인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눈치 챌 수 있었다. 등대를 지키고자 하는 노인들, 등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자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곳에 눈치 없이 낑겨 앉은 외지인 한 명. 나.
회의는 줄곧 험악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내 눈에는 적어도, 그 회의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고민하는 곳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총무는 계속해서 등대를 철거하자고 주장했고, 노인은 ‘철거’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강한 헛기침을 내뱉으며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담배 생각이 간절한데, 차마 밀폐된 곳에서까지 피워대기에는 뭣한 듯했다. 총무가 구체적인 철거안을 제시하고 노인이 그를 거부한다. 그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파도와 갯바위의 싸움 같았다. 그리고 그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각각이 파도 뒤의 바다와 갯바위 너머의 모래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서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지나가는 갈매기 정도였을까?
의미 없는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을 무렵, 언뜻 총무가 답답한 듯한 목소리로 노인을 불렀다.
“…이장님.”
노인이 담담하게 고개를 들어 총무를 바라본다. 하지만 총무가 바랐던 것은 눈길이 아닌 대답이었던 듯하다.
“이장님!”
“듣고 있네.”
“저 정말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이지요.”
총무가 잠시 뜸을 들이는 듯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노인과의 시선 교환이 얼마간 이뤄진 뒤,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말 궁금하기라도 한 듯, 고개까지 갸웃거리면서.
“저 등대가 마을에 꼭 있어야 할 별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질문이 대화의 결을 깨고는 갑작스럽게 원론적인 부분을 찌르는 바람에, 마을 회관의 좁은 공기가 다시금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노인의 눈가 또한 일그러졌다. 그 불편함이 모두에게 닿았는지, 노인이 입을 열기까지의 공백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우리들 사이의 전기난로만이 조용함을 메우려는 듯 작은 소리를 내었을 뿐이다. 노인의 대답이 이어졌다.
“…이 마을이 등대마을이기 때문이지.”
“그럼 이름을 바꾸면 되겠군요?”
노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총무가 되물었다. 그 틈이 워낙 짧아서, 마치 그가 노인의 말꼬리를 잡아먹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네. 사람 이름도 그렇게 쉽게는….”
“사람 이름도 요즘에는 얼마나 쉽게 바꾸는데요 이장님.”
이번에는 확실히 말꼬리를 삼켰다. 노인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지금 총무의 태도에는 깊은 무례가 배어있었다. 노인의 심기가 어떨지 조금 살피는 와중에, 옆얼굴로 총무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장님, 조금 더 인과적으로, 음… 그러니까 선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 요즘 누가 그렇게 이름에 의미를 둔단 말입니까? 다 쓸데없는 거예요. 그걸 아니까 요즘 사람들도 이름 바꾸는데 거부감이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이 알맹이라구요. 알맹이.”
총무가 자신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등대가 있어서 등대마을. 그건 좋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네,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그게 등대를 철거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구요. 등대가 있어서 등대마을이라고 이름 붙였으면, 등대가 없어진 마을은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면 그만 아닐는지…?”
총무와 노인 사이의 시선이 점차 날카로워져 간다. 전기난로가 피워올리는 아지랑이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렇게 잠시, 총무가 먼저 눈을 떼고는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쳐를 취한다. 일단 한발 물러서는 건가.
뒤이어 총무는 자신이 구상한 등대 철거 계획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우리 마을에는 낭비되고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많고, 그중에서도 등대가 있는 방파제의 끝부분이 가장 그렇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만약’ 등대를 철거할 수 있다면, 그 부분 바깥으로 뻗어있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생태 탐방 코스와 같은 관광지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도를 통해 반등을 이룬 어촌 마을들에 대한 예시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 지금 등대를 관리하는데 지나친 시간과 인력을 허비하고 있다는 점도 빼먹지 않았다.
확실히 준비를 많이 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논리는 논리대로 꽤 완성되어있었거니와, 총무 자신도 말을 해가면서 점점 스스로에 심취해가는 듯했다. 그 증거로는 그 특유의 눈빛이 점차 기묘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 반면에 노인은… 어딘가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총무가 연이어 내뱉는 ‘철거’라는 단어에도 더 이상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다. 쥐고 있는 담뱃갑 위에 손가락을 얹고는 주기적으로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꼭 바다 아래에 가라앉아 껍데기에 들어간 거북이 같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노인처럼 생각에 잠긴 거북이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노인 측, 그러니까 이장님과 다른 노인들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내가 회의의 흐름을 완전히 놓쳤다고 생각이 될 무렵, 그제야 총무가 내뱉는 단어가 들려왔다.
“…반대는 이장님 포함한 다섯 명이군요. 그렇다면 이번엔 찬성하시는 분들이 손을 들어주시죠.”
이번에는 총무 자신을 포함한 다섯 젊은이들이 손을 들었다. 찬성과 반대가 5대 5로 나뉘었다. 이들의 수적 균형에 따라 등대가 남아있을 수 있었구나- 하는 찰나,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 순간 총무가 나를 이 회의에 부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내가 참석한 회차에 장황한 브리핑을 진행한 이유도. 아마 그간 굳어져 왔던 찬반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균열을 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광적인 총무의 눈빛, 그리고 뜨거운 노인의 시선. 나는 그들 누구에게도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가운데에 놓인 전기난로를 선택했다.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나.
나의 대답과 함께, 오묘한 분위기가 흐르던 회의는 이내 마무리되었다. 젊은이와 노인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몇몇 사이에서는 악수가 오갔다. 하지만 물론, 총무와 이장님은 서로 간에 아무런 겉치레를 치르지 않았다. 노인은 회의가 끝났다는 총무의 말에 흘끗하고 쳐다보는 것을 끝으로, 가장 먼저 회관을 빠져나갔다. 내가 그 뒤를 이어 빠르게 발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니 주위는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꺼져있던 가로등에는 환한 불이 들어와 있었다. 공기도 오늘따라 몹시 찼다. 따뜻한 전기난로를 쬐고 있던 얼굴이 찬 공기를 맞고는 땡땡하게 펴지는 바람에 약간의 팽창감이 느껴진다. 먼저 나간 노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와중에, 익숙한 담배 향이 코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마을회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심겨진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를 향해 걸어가며 길을 건너는 중, 문득 그의 뒷모습이 유난히 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노인이 지금 작게 느껴지는 것이 실제로 그가 거북이처럼 쪼그라들어서인지, 아니면 회관에서의 일 때문에 내가 그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노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마을의 전경이 발아래에 계단식으로 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을 회관이 마을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밑의 계층에는 곽씨 성을 지닌 노인이, 그 아래 칸에는 김씨 성의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며칠간 파악할 수 있었다. 검게 물든 골목들에 양초처럼 불을 내뿜는 가로등들, 저 멀리서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등대 빛과 그 궤적에 따라 언뜻 비치는 작은 만의 형태도 보인다. 여기서 바라보는 등대마을도 꽤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노인의 옆에 엉덩이를 깐다.
“여기 계셨어요.”
“(…)”
노인은 나를 흘긋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허벅다리에 양 팔꿈치를 괸 채,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푸흐-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뱉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모금. 지금의 노인은 마치 담배에 모든 집중을 기하고 있는 듯했다. 담배 연기를 속 안에다가 들이부어서는, 안에서 끓어오르는 물이든 불이든 간에를 가려버리는 것 일지도. 그의 발밑에는 이미 두어 개의 꽁초가 짓이겨져 있었다. 노인이 가래 끓는 목을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못난 꼴을 보여줬구먼.”
“예? 아, 아니에요 이장님.”
잠시간의 침묵. 멀리 보이는 등대가 4초 주기로 두 바퀴를 돌았다.
“…마을의 상황이 이렇다네. 회의가 열리면 매번 이런 식이야.”
노인의 가라앉음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얹을 수 없었다. 옆에서 바라본 노인의 눈에서 주홍빛이 꺼졌다는 사실이 유독 슬프게 느껴졌다. 노인의 눈동자 안에서는 등대 빛이 몽롱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몽롱함을 조금 품은 목소리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봤나?”
“아뇨, 그런 기억은 없네요.”
“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웃길 수는 있겠네만, 난 꽤 많이 나가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네. 뱃사람으로 살아왔으니 당연한 말이지.”
노인이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몸속에 욱여넣은 니코틴이 벌써 용해되기라도 한 듯.
“뱃사람이라면 아무렴 밤바다의 무서움을 가슴 속에 품게 되기 마련이네. 명태를 잡느라 정신이 팔리다 보면 가끔씩 시간을 놓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지곤 하는 거야.”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부딪힐 곳이 없어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물의 위압감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노인의 옆얼굴이 잠깐 화색을 띠었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짐작건대, 명태에 대해 생각하는 탓인 듯했다. 그러다 깜빡. 노인의 상상에 따라 잠겨 들어가는 나를 마을 아래의 등대 빛이 끌어 올린다. 노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때 바다는 꼭 검은 이무기 같이 꿀렁거린단 말일세. 차라리 그런 광경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후레시를 비추기 마저 무서운 거야. 그 때 깜박이는 등대 빛이 얼마나 반가운지. 저 등대가 나를 두어 번은 더 구해줬을 거야. 그런데 요즘은 참 이상해졌어.”
“어떤 게 말인가요?”
노인이 얼마간 너털웃음을 털어놓는 소리가 들렸다.
“…요새는 저놈이 우리를,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뭐 그렇다고 저 등대가 못된 놈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노인은 못된 놈은 따로 있지- 하고는 말을 얼버무렸다. 총무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옆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져, 함께 허리를 펴고는 작게 기지개를 켠다. 노인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한다. 언제나와 같이 강한 악력이 전해져온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월요일이다. 월요일에는 등대의 순번이 바뀐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내일이면 다시 등대에 들어갈 차례구만. 내 그동안 생각 정리를 조금 더 하고 있겠네. 다녀와서 마저 이야기 나누지.”
“네 이장님 들어가세요.”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가는 노인을 뒤로하고 다시금 벤치에 앉는다. 멀리서는 등대가 깜박인다. 주홍빛 가로등에 싸여서 흰색 빛을 바라본다. 저기서는 내가 보일까 싶어 괜스레 팔을 들어 보이지만, 흔들고 싶은 마음은 참는다. 오늘은 바람이 꽤나 거칠다. 밤이 되며 바람의 방향이 바뀐 듯, 바닷바람이 머리 뒤편에서 불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즐겨 태우는 담배 향은 여전히 내 주위를 떠돈다. 그가 남기고 떠난 꽁초들에서 피어오르는 걸까. 그 담배 향은 얼마 후 내가 숙소로 향했을 때까지 무겁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향냄새 가득한 곳에서 노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노인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난 바로 다음 날,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마을 바깥에서 장례식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내가 여길 가도 되나?’였으니,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가. 항구로 향하는 길에 가끔 마주치던, 회의 때도 뵈었던 마을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사인은 익사라고 했다. 나와의 대화 이후에 댁으로 바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르신이 향을 올리고 나오는 길에 나를 붙잡고는 입을 열었다.
“항구에서 술 한잔을 하신 모양일세, 아무래도 회의 이후에 마음이 심란하셨던 게지.”
“…술을 많이 드셨던 건가요?”
“그런 것 같다더군. 항구 어귀에 붙어있는 CCTV에 이장님이 잡혔어. 의자를 펴고 앉아서 술을 마시는 모습 말이지. 그렇게 두어 병을 비우다가….”
우리 사이로 한 검은 정장 무리가 지나가는 바람에, 나와 어르신은 잠시 서로에게서 물러섰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무리 안에는 김총무도 있었다. 마을 어르신도 그를 발견한 듯했다. 정장 무리가 향을 올리는 것을 확인한 어르신께서는 조금 망설이시는 것 같더니, 이내 체념한 듯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자네의 짐작과 같이, 이 일은 이장님이 항구에서 발을 헛디뎌서 일어난 일일세. 그런데 CCTV에 잡힌 이장님 모습이 조금… 이상해. 그래서 마을 분위기도 이상하게 돌아가는 중이고.”
“이상하다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이장님께서 꼭 등대 불빛에 홀린 것 같았단 말일세.”
어르신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CCTV 화면은 이러했다. 자리를 펴고 앉은 이장님과 맞은편의 등대가 함께 놓여있는 구도 속에서, 노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등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등대가 돌아가며 빛을 뿌리고, 그에 따라 노인의 발치에 놓은 술병이 하나둘 늘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등산복 차림의 노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멈춰선 노인, 그를 움직인 것은 등대 빛이었다. 하얀빛이 그의 머리 위의 공간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노인이 걷는다. 언젠가 노인이 말해준 뱃사람의 기억처럼, 그는 바다 한 가운데 남겨진 통통배의 선장이 된 듯 등대 빛에 의존해 걸음을 내디딘다. 등대를 향해서 한 발짝. 그리고 다시 한 발짝. 그렇게 마지막 걸음을 향해 내딛다가, 노인의 모습이 방파제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게 안주라도 같이 잡수셨어야 했는데. 허… 술도 얼마 못하는 양반이.”
“(…)”
눈시울을 붉히는 어르신과 목례를 하고, 나는 다시 혼자 남게 되었다. 발인까지의 3일 동안에도 나는 혼자였다. 영정사진 속의 노인만이 굳은 표정을 한 채 나와 눈을 마주쳐주었다. 다만 노인의 눈동자는 자신 앞에서 절을 올리는 모두의 눈을 초점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거기서 본래의 뜨거운 열기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 불꽃이 마지막으로 식은 곳이 차가운 바다속이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마음에 밟히는 것은 왜일까.
입관까지를 지켜본 뒤, 어둑한 시간이 되어서 나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등대도 회전을 시작했다. 오늘은 원래라면 노인이 등대 안을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항구 안에 묶인 배들이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흔들린다. 언젠가 떠난 자들을 위한 존재들이라고 여겼던 통통배들. 뱃머리에 적힌 이름들을 다시 한번 주욱 읽어본다. 그러나 그사이에 노인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노인 역시 다른 의미로 ‘떠난 사람’이 되었지만, 그를 떠올릴 수 있는 물체는 어디에도 없다. 그의 영혼은 겨울 바다 밑에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에서 볼까지의 일직선에 어떠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손으로 훔치려 들지만, 언젠가 흘렀던 눈물 줄기는 바닷바람에 날려가 버린 뒤였다. 문득 등대의 박동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는 왜 이토록 등대 빛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조언해줄 사람마저 떠나갔지만, 등대는 여전히 답을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음 날 마을에서는 다시 한번 회의가 열렸고, 그 결과는 등대를 철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찬성 쪽으로 많은 표가 움직였다는 것으로 보아, 노인의 죽음이 반대 측에게 큰 타격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등대 철거 반대에 손을 들던 다른 노인들 또한 등대보다는 이장님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지금, 노인이 떠났다. 구심점을 잃은 원반은 한순간에 손을 떠나기 마련이지 않나.
그리고 뒷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총무 일행이 지자체로 나가 등대 철거 인가를 받아냈다. 그래도 등대 같은 공용 건축물, 그러니까 나라가 지은 건물에 쉽게 철거 인가가 내려지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헛된 것이었다. 느지막한 오후에 마을을 나선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허가증 몇 장을 들고는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전부터 착실하게 연줄을 이어왔던 것 같다는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철거는 한 주가 끝나기 전에, 그러니까 본래 노인이 등대 안에서 보냈어야 했을 시간이 다 지나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먼저 등대를 둘러보기 위한 사람들이 왔다. 노을이 지고 있을 무렵 도착한 그들은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을 입은 채 차에서 내렸는데, 등대 곁에 닿기 전에 노란색 안전모를 꺼내쓰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단순한 ‘작업’을 하러 온 것이다. 등대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작업. 하나의 박동을 꺼뜨리려는 작업 말이다. 여러 장비들로 온갖 치수를 재는 안전모들. 그들의 얼굴에서는 일체의 감정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의 상징물을 걷어 없애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라든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슬픔이라든지…. 그들은 피곤함에 찌든 의사의 얼굴로 등대의 사망 일시를 기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무표정은 언젠가부터 그들 곁에 서 있던 총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왜 기뻐하고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바라왔던 일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실행되고 있지 않았나. 평소에 보아왔던 그의 성격에는 조금 더 눈에 띄는 감정 변화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나도 이상한 장면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등대의 마지막 박동에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던 듯, 이물감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등대가 꺼졌다.
물론 등대는 매일매일 꺼진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 켜지고 밤이 물러갈 때 꺼진다. 해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때 바다를 밝히는 게 등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의 꺼짐은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밤 동안의 피로를 몰아내기 위한 휴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기 시작하는 노을에 맞추어 막 돌아가던 등대 빛은, 4초 주기를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멈췄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멈춘 것처럼, 혹은 병든 이가 뱉은 마지막 숨결처럼, 등대의 마지막에는 죽음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었다. 오늘 밤이 물러가고 내일의 노을이 찾아오더라도, 등대가 다시 박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늘상 앉던 방파제 위에서 등대의 마지막을 똑똑히 지켜보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는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때면 의자를 들고 해변을 찾았다. 좁아터진 방 안에서 낡은 보일러 소리만 듣고 있으니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답답함을 피해 바깥에 나선 나를 해변으로 이끈 건 역시 등대에 대한 미련이었다. 내가 이 마을에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껏 머물면서 해 온 것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등대를 바라보다 불현듯 느꼈던 따뜻한 감정, 그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철제 의자의 촉감을 등받이를 통해 느끼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역시나. 하늘이 까만 별 이불을 목 끝까지 덮었는데도 등대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 주위를 밝혀주는 것은 등 뒤로 어렴풋이 느껴지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뿐이었다. 문득 몸을 돌리고는 가로등과 사랑에 빠진 날벌레가 몇 마리나 될까 세어보던 참이었는데, 해안가에 산책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내 귀에도 들릴 만큼 격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서는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총무가 돌연 모습을 감췄다는 말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제가 들은 게 모두 정말인가요?”
“누구….”
그들은 중장년 남녀였는데, 여성분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한다. 나도 내가 지금 무례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질문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남자 쪽은 나와 오다가다 안면을 튼 적이 있다. 그분께서 ‘그 있잖아, 매일 여기 나와서 앉아있는 도시 청년’이라며 나를 소개한다. 아직 인상이 모두 펴지지 않은 아주머니는 잠시 뒤로 물러나고, 아저씨가 대신 입을 연다.
“어떤 질문을 하시는 건가요?”
“총무 이야기하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김총무 말이에요.”
“아 맞아요. 김총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총무를 언급하자 아주머니의 미간에 골이 세로로 깊어진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서로 마주 보고는 한숨을 쉰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나는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총무가 사라졌다. 하루종일 전화를 받지 않기에 한 마을 사람이 집으로 찾아갔는데, 총무가 머물던 방은 언제 사람이 살기라도 했냐는 듯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장 내일이면 등대가 철거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일을 집도한 사람의 행방은 묘연해진 것이다. 그 사실을 발견한 것이 저녁이어서 아직 마을에 소문이 퍼지진 않았지만… 중년 부부는 내일, 총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마을 분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등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저 등대도 사라져요. 그런데 그 뒷일을 계획한 사람이 없어졌으니….”
“(…)”
“이럴 거면 왜 굳이 없애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댔는지 원.”
고개를 고깝게 흔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다시금 길을 떠났다. 하지만 난 그대로 발을 뗄 수 없었다. 총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에게 주는 충격이 꽤나 강했던 모양이다. 부둣가에 멍하게 서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중년 부부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져만 가더니 어느새 두 개의 점이 아닌 하나의 점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고개 돌려 바라본 등대는 자신의 하얀 몸을 어둡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 쓸쓸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다음 날. 마을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등대 철거를 위한 중장비들이 끼릭끼릭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하나둘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에 발맞추어 항구에 머리를 비춘 사람들 중, 그 중장비들 각각의 쓰임새가 어떤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계들이 등대 곁에 들어섰다. 곧 차량에서 내린 이들이 노란 안전모를 쓰고는 등대에 달라붙고,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는 검은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작업을 지켜봤다. 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등대 주변이 아닌 항구 근처에 띄엄띄엄 서 있었다. 근처에 보이는 노인들은 오다가다 꽤나 여러 번 마주쳤던 분들인데, 나는 그들 중 어느 하나와도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나 또한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떼어줄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이윽고 해가 하늘 정중앙에 자리 잡았다. 등대의 사형식이 거행되려 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포장도로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는 뿔 모양 포크레인이 그 진동하는 코를 등대에 가져다 댔다.
쿵-. 첫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등대의 옆면에 나 있던 작은 창문이 깨어져 나갔다. 바로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는 자리를 떠났다.
쿵-. 두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옆면의 구멍이 조금 더 넓어졌다. 그 사이의 조그마한 공간 속으로, 등대 내벽에 붙어있는 시멘트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아랫단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피던 담배를 쥔 채 자리를 떠났다.
쿵-. 세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등대 안의 층을 나눠주던 지붕이 내려앉았다. 녹슨 철근에 콘크리트 조각이 안쓰럽게 붙어있다. 배가 많이 고픈 쥐가 갉아 먹은 빵처럼, 그 형태가 많이 불균형하다. 중년 부부가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껴안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쿵. 등대의 램프가 급격하게 한쪽으로 쏠리더니 이내 무너졌다. 무너진 등대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병든 환자의 가래 섞인 기침처럼, 자신의 색이었던 흰 먼지들을 조금 흩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등대 조각들은 덤프트럭에 실렸다. 서 있을 땐 5미터 남짓 되어 보였던 등대가,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져서는 자그마한 용기에 담겨 나간다. 그 광경이 꼭 화장터에서 나온 유골함을, 다른 친족들의 눈물 냄새를 거쳐 나에게 전달된 슬픔의 무게를 연상케 했다.
등대가 무너지며 남긴 마지막 울림에, 내 몸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들어갔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멈춤이었다. 혈액이 멈춘 팔다리는 굳어 움직이지 않았고, 폐는 더 이상 신선한 공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나를 박동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심장을 잃은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선 채 등대의 마지막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질 무렵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항구에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몸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풀린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방파제 끝으로 걸어 나와 등대가 묘비처럼 남긴 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이 마을에 남아있도록 했던 강한 동기가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밤사이에 고생한 낡은 보일러에게 휴식을 주는 것. 끼니를 챙겨 먹는 것. 미리 날씨를 확인하고는 걸맞은 옷가지를 챙기는 것. 철제 의자를 끌고 가느라 마주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감내하는 것. 내가 이제까지 행해왔던 그 모든 것들은 항구에 앉아 등대를 바라보기 위한 절차였음을 보다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승점이 사라진 이상, 나는 매일 아침 출발선에 설 필요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 트랙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마음을 먹은 이후, 며칠간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마치 내가 결심을 재고하기를 누군가가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우연히 찾아온 거센 바람에 메여서라도 이 마을을 떠나기 싫은 일말의 미련일지도. 어느 쪽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날이 개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악천후는 찾아왔을 때처럼 느닷없이 마을을 떠나갔다. 나도 그간 싸 온 짐들을 제대로 꾸리고는 숙소를 나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같이 화분 밑에 열쇠를 놓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친 날씨가 지나갔다고는 하나, 아직 공기 중에 흔들림의 흔적들이 남아있음을 얼굴로 느낄 수 있었다. 간간이 들이닥치는 돌풍이 뒤끝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하늘도 아직 반쯤은 구름에 가려졌다. 덕분에 마을의 색이 조금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항구를 향해 발을 옮겼다. 볼일이 하나 남았기 때문이다.
방파제에 다다라, 나는 가방을 뒤져 작은 장난감 배 하나를 꺼내 든다. 언젠가 마을의 문방구에서 구입했던 것이다. 그 모양새가 작은 항구의 만에 메여있는 통통배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굳이 분류하자면 크루즈 선이라고 할까. 하지만 아무렴 어때. 희고 파란 장난감 배를 조심스럽게 수면 위에 내려놓는다.
며칠간 좋지 않았던 날씨 탓에 물색이 뒤집혀 있었다. 장난감 배의 뚜렷한 색채와 그 아래의 황토색 바닷물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배는 파도에 딸려 얼마큼 바다로 밀려 나갔다가, 다시 방파제로 다가오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꼭, 이곳을 떠나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온갖 악을 쓰면서까지. 배의 앞코가 방파제에 부딪혀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여기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몸체 안에 남몰래 새겨둔 노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주위의 통통배들이 떠난 사람들을 위한 존재인 것처럼, 장난감 배는 노인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잠시 묵례를 취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을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사실은 도저히 숨겨지지 않았다. 거리에 나오지 않은 존재는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가로등 위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갈매기들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마을은 그들을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여기에 붙잡아 매어두었던 ‘무언가’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으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동감이, 쿵쾅거리는 박동감이 여기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언덕을 넘어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마을의 현판에 적힌 ‘등대마을’이라는 단어와 걸맞지 않게, 무심코 돌아본 항구의 정경에 등대는 없었다. 주시할 곳을 잃은 눈동자가 이내 의미 없이 마을의 뒷모습만을 훑을 뿐이다. 나는 누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하나. 하얗게 소금꽃이 핀 장승? 아니면… 바다?
등대마을에 대한 기록은 여기서 끝이 난다.
길었던 회상이 끝났다. 여태껏 노트를 내려다보느라 목이 뻐근했다. 목뒤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창가를 바라본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가 새벽을 향해 가는 한밤 중이었는데,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파릇한 아침 햇빛이었다. 밤을 새워버린 것이 분명했다. 읽던 노트를 일으켜 세운다. 표지를 만지고 있는 손가락을 통해, 종이 노트 위에 덧대어진 인조 가죽의 질감이 느껴진다. 문득 냄새가 궁금해져 코를 대어보지만, 내심 기대했던 바다 냄새는커녕 가죽 냄새도 나지 않는다. 대신 노트를 박아두었던 책상 서랍의 냄새가 난다. 그 쿰쿰한 먼지 냄새가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은 아니라 짧게 기침을 한다.
등대마을에서 보낸 나날들의 기록은 노트에 적힌 것이 전부다. 마을을 떠난 나는 그 길로 집으로 향했고, 지금까지 그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평이한 날을 보내고 있다.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고, 다시 다음 출근 시간을 생각하며 잠에 드는 식이다. 어느새부터인가 나의 일상 속에서는 출발점과 결승점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달까. 하염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 같이 호흡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가 벌써 1년 전이네.”
1년 전에 가졌던 한 달간의 일탈. 등대마을에서의 날들은 딱 그 정도의 시간적 무게를 가진다. 하지만 지금 떠올려보는 지난 1년보다,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의 한 달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꿈에서 본 등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무슨 꿈이든 깨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그 하얀 등대빛은 점점 커져서는 곧 내 머리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불현듯, 이제껏 당연스레 생각했던 인과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등대 꿈을 꾸었기 때문에 등대마을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를 떠올려야 했기 때문에 꿈을 꾼 것이었다.
이곳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는 직감이 쇄도했다. 등대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 그것이 지금만큼은 나를 강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나는 등대 빛을 발견한 한밤중의 뱃사람이 된 것처럼, 그 깜박임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기로 했다. 곧 짐을 꾸렸다. 이번 밀물은 꽤나 강하다고 생각하면서.
등대마을까지는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시내에서 나와 고속도로를,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한참 달려야 했다. 물론 운전을 하는 데에 반나절 모두를 쓴 것은 아니었다. 아침 일찍 준비하고 나와 차에 올라탔는데, 막상 내비게이션에 등대마을을 검색하니 ‘찾을 수 없는 지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마을이 지도상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기억해야 했고, 운전도 알음알음 더듬어가야 했다. 그 때문에, 마을 어귀에 들어선 시점은 해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할 즈음이 되어서였다. 작년 이맘때쯤 등대마을에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다.
하지만 나를 맞는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우선 두 장승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다. 관리의 시점을 조금 벗어나 방치되다 싶었던 장승들은 어디로 가고 없고, 막 옻칠을 마친 듯 반질반질한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 있는 마을 대문에는 번듯한 현판 하나가 걸려있었는데, 거기 적힌 단어가 나에게 너무도 낯선 것이었기에 일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부마을’
마을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리라. 어떠한 연유에서 개명을 했을까-하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등대가 없는 마을의 이름에 등대가 들어가는 것도 조금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 대문을 넘어서자, 또 다른 충격이 전해져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등대였다. 등대가 마지막 박동을 행했던 자리. 그곳에는 그보다는 조금 작은 등대가 솟아있었다. 색깔이 짙은 빨간색인 것으로 보아 무인 등대일 테다. 그 외에도 마을은 많은 변화를 겪은 듯했다. 일전에 노인이 알려주었던 바에 따르면, 과거 등대마을에서 명태가 잡혔을 때에는 항구에도 좌판이 크게 열렸었더랬다. 명태가 떠나면서 터만 남았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좌판이 열려있었고, 그 위에 널려있는 무언가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사람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예전의 등대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항구에 도착했다. 좌판 위에 놓여있던 것들은 다름 아닌 오징어였다. 가만, 오징어? 본래 등대마을은 명태를 잡는 곳이었지 않은가.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 명태, 그리고 따뜻한 물에 살기로 유명한 오징어. 둘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등대마을에 다시 등대가 들어섰다. 반면, 마을의 이름은 남부마을로 바뀌었다. 버려진 어촌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좌판 위에는 오징어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너무도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욱여 들어왔다. 그 덕에 그들 사이의 우열을 나누지 못하는, 이 당혹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때 좌판 근처에 몰려있던 얼굴들 중,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는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노인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사인에 대해 말을 해주었던 어르신이다.
“이게 누군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게야?”
“그간 잘 지내셨어요.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잠시 들르게 됐습니다.”
낯설게 변해버린 공간에서 낯익은 이를 마주친다는 것이 이렇게나 큰 행운으로 느껴질 줄이야. 설령 이 어르신과 나의 관계가 그리 여물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마을의 변화에 대해서 물어볼 이가 있다는 것이 나를 크게 안심시켜주었다.
짧은 인사가 오가고 난 후, 질문을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어르신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그래, 궁금한 것들이 많겠구먼.”
“네.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에요.”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 이 마을이 이렇게 바뀐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니.”
어르신이 감회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좌판 근처의 소음이 생각보다 커서, 우리는 보다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르신이 말을 이었다.
“작년쯤에 등대가 철거되었을 때, 자네도 그 자리에 있었지 아마?”
“네.”
“그 상태로 반년이 지났지. 반년 말일세. 말로 하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네만. 한 번 상상해보게,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네.”
방치된 어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머리 위로는 해의 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목을 가다듬은 어르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떠났지…. 나 같은 노인네들도 하나둘씩 짐을 싸더구먼. 마을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어. 그때 우리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던 것이 마을 이름 개명이었다네.”
“그게 조금 효과가 있었나요?”
“있었다마다! 분위기만 바꿨을까. 이름을 바꾸고 나서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했단 말일세.”
어르신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보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긴 하네만…. ‘남부’라는 이름이 남쪽의 오징어를 데리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허허.”
해류에 유연히 떠밀려 올라온 오징어 배가 만선을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많은 오징어 군체들이 발견되었고, 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몇몇 어부들부터 오징어잡이로의 업종 전환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징어 출하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입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마을은 예전의 규모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 선순환 격으로, 항구의 어선 출항이 급격히 증가하자 다시금 등대를 배치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아직 이 분위기가 어색하다네. 남부마을이라는 이름도 아직 입에 익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저 빨간 등대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구먼.”
“예. 저 등대 색은 저한테도 너무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오징어도, 등대도, 사람들도….”
좌판 쪽에서 누군가가 어르신을 찾는다. 어르신이 그 부름에 응답하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어르신은 나에게 ‘천천히 둘러보다가 가시게나’와 같은 말을 건네더니, 인파 속으로 금세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나는 좌판 쪽에서 조금 더 벗어나, 등대가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매일 같이 철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던 곳이다. 여기에 서 있자니 그때의 생각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처음으로 등대를 보고 느꼈던 이상한 감정부터 노인과 나눴던 대화들, 또 지금 이곳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았던 등대의 마지막과 몸이 얼어붙는 듯했던 느낌까지. 일련의 나날들이 영사기 속 필름들처럼 촤르르르하고 영사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준비해둔 필름 롤이 다 떨어질 무렵, 정면의 빨간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등대의 머리가 하얀빛을 띠고는 일정한 주기로 회전한다. 아직까지는 건재한 노을도 언젠가는 밤에게 잡아먹힐 것을 안다는 듯, 노을을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굳세게 빛을 뿜어댄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비단 등대뿐 아니라, 이 마을의 환경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 비린내와 흥정하는 이들의 왁자지껄함. 그 중심에서는 그들 모두를 위해 박동하고 있는 작은 심장이 있다. 나는 그 속에 들어와 있음에 따라, 내가 왜 등대에 그토록 끌렸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좌판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조용함이 찾아왔다. 등 뒤에서 켜진 가로등이 노을을 대신해 세상에 주황빛을 보태고 있었다. 남색과 흰색, 그리고 주황색으로 물든 방파제 위에서 생각에 잠긴다. 나와 이 마을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등대, 노인, 그리고 총무. 지금은 모두 떠난 것이며 떠난 이들이다. 등대는 부서졌고 노인은 가라앉았다. 총무는…. 총무는 어떻게 되었지? 그때, 나는 방파제 위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이미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고개는 정확히 나에게 향해 있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 느낌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끈적하면서도 기묘한 눈빛. 그와 눈을 마주쳐 본 이들 중, 그의 시선이 가져다주는 이 기분을 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총무와 나는 어느새 나란히 서 있게 되었다. 내가 다가간 것인지, 그가 나에게로 다가온 것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총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총무가 먼 산을 바라보듯, 등대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인사를 해왔다. 나도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인사를 받는다.
“네. 오래간만입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자연스럽게 총무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는데, 근 1년 만에 마주하게 된 그의 얼굴은 예전만 못했다. 도시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얼굴은 살이 빠지며 광대를 드러냈고, 항상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다니던 머리에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자리를 잡았다. 면도한 지 꽤 된 듯 수염들도 제각기 다른 길이로 나 있었다. 이전의 총무라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모습에 절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10살은 더 많아 보인다는 게 총무의 첫인상 아닌 첫인상 평가였다. 고루한 침묵은 총무의 질문으로 깨어졌다.
“안 물어보십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총무가 입술 사이로 프흐흐하는 웃음을 내뱉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 왜 사라졌는지 말입니다.”
“(…)”
물론 궁금하긴 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벌여놓은 일에 대해서 왜 책임을 지지 않았는지. 그렇게 사라져 버릴 거였다면, 회의 때 열성적으로 토해내던 계획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하지만 내가 그 이유를 지금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바닷속에 빠진 노인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막 건립된 빨간 등대가 흰색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답하지 않자, 총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네요.”
“사실은 무서웠습니다.”
무서웠다고? 그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총무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큰 심호흡 이후, 총무의 말이 이어졌다.
“등대를 철거하자니… 그 위에 관광코스를 만들자니… 사실 제가 그걸 다 어떻게 관리하고 계획할 수 있겠습니까. 다 허울 좋은 구실들이었죠. 왜냐? 저도 거기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요. “
“그럼 도대체 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소 목적들이라고 해둘까요?”
총무가 다시 예의 프흐흐하는 웃음소리를 낸 뒤 입을 다문다. 그가 입을 다시 여는 데에는 등대가 한 바퀴를 돌기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있잖아요. 저는 사실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이겨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시험이라면 시험, 운동이라면 운동. 그렇게 살아온 인생, 의미 없이 흐르고 흘러서 여기까지 왔었죠. 그렇게 자리 잡게 된 이 조그마한 마을. 뭔가 요상한 자신감이 절 휩싸는 겁니다. 아, 이곳이다. 여기라면 나는 더 이상 패배자로 살지 않아도 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총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자신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말인 듯, 묵혀두었을 법한 기억이 좁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걸 막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등대 마저 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스레 우리 쪽을 비추는 주기가 더 길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
“그 당시 여기에 지내던 사람들은 말이죠, 제가 보기에는 너무 쉬운 문제를 안고 있어 보였어요. 쓸모없어진 옛것을 고집하는 노인들, 그에 따라 자신에게 부과된 귀찮은 의무를 지고 싶지 않던 젊은이들….”
“잠깐, 그러면 총무님이 여기 오기 전부터 등대로 말이 많았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죠. 제가 한 것이라고는 그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끼어든 것뿐이에요. 마을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거라구요.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등대 철거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죠. 설마, 이제까지 제가 전부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총무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어쩐지,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좋지 않더라니-.
“…모든 게 제 계획대로 이뤄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등대가 철거됐죠. 안 그래도 일주일씩이나 등대 안에 박혀있기 싫었던 건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뭐 중간에 이장님이 돌아가셨다거나, 당신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했다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 인생에서의 첫 승점을 이 작은 마을에서 따낸 겁니다. 그런데 막상 제 바람이 이뤄지고 나니… 무서워지는 것 있죠.”
아마도 그는, 승리자로서의 자신에게 부여되는 막중한 책임과 기대를 버티지 못했던 것임이 분명했다. 마치 한 초짜 연기자처럼, 자신이 무대 아래에서 견뎌내야 할 가십과 스캔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여기 웬일로 오셨습니까?”
“아… 저는 그냥 소식을 듣고 왔어요.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나 뭐라나 해서. 총무님은요?”
총무가 나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몸이 움찔하고 떨리는 것을 숨기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다음 총무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을 본다면 정말이지 얼이 빠졌다고 생각하겠지.
“어제 등대 꿈을 꾸어서 말이지요. 아 물론 이 빨간 등대 말고요. 예전에 있던 하얀 등대 말입니다.”
“(…!)”
그는 시선을 등대에 고정한 채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두운 바다에서 빛을 보고는 떠올랐고, 수면에 도착해 바라본 곳에는 하얀 등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빛이 자신을 삼키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고 했다. 내가 꾸었던 꿈과 똑같다. 총무가 말을 이었다.
“등대가 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보이리라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냥 그런 직감이 들었어요. 처음에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런 류의 직감 있죠? 아! 얘가 나를 부르고 있는구나! 그래서… 사과라도 해야 할 듯 싶어 왔습니다.”
“사과요?”
“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저 때문에 부서진 놈이니까.”
총무를 바라본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주황색 가로등 빛을 업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희끗희끗해진 머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흔들거린다. 그가 주머니에 꽂고 있던 양손을 꺼내더니, 자신의 양 볼을 뭉개듯이 문질렀다. 그 모습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려고 애쓰는 사람 같았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멋쩍게 웃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세겠지요? 그렇지요?”
언젠가 나와 총무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등대를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총무가 다가와 말을 걸었었더랬다. 등대를 철거해야 한다며, 쓸모없어진 가치관은 버려야 한다며 열렬하게 주장했던 그가 마지막에 꼭 저런 말을 했었는데.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겠지요? 그렇지요?’
다른 점이라고는 총무의 눈동자가 더는 기묘하게 울렁거리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총무는 떠나갔다. 사실 그 모습을 직접 바라보지는 못했으나, 그가 이 마을이 아닌 어디론가로 다시 떠나갔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등대를 바라보는 나의 옆얼굴을 향해, 그는 어쩌면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른다. 묵례를 했을 수도, 혹은 작은 손 인사를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분명한 것은 그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저벅거림도 없이.
4초마다 한 바퀴를 돌았던 이전의 등대와 달리, 빨간 등대는 3초를 간격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빨라진 주기에 적응하는 와중에, 내 속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변화라기보다는 완결에 가까웠다. 등대마을과 나 사이에 남아있던 미완성의 매듭이 다시 엮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총무와의 만남에서 유발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노인의 죽음을 배웅하고, 등대의 마지막을 목도했던 것과는 달리, 애당초 나와 총무 사이의 관계는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총무도 지금 마음 한켠에서 완성되고 있는 매듭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떠나오기 전 품었던 직관이 다시금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등대가 나로 하여금 이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총무의 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의도가 어찌 됐든 간에 나와 총무는 꿈을 통해 등대를 보았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마을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우연 아래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강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등대가 명태를 다시 불러올 것이라고 믿었던 노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등대가 부르고 있었던 것은 명태가 아닌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 정리를 하며 항구 안을 걷다가, 나는 항구의 구석에 박혀있는 폐그물 안에서 한 장난감 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마을을 떠날 때 남긴 것이다. 용케도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밀려왔다. 배가 본래 가지고 있던 흰색과 파란색의 구분은 이미 무색하기 만치 바라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이끼가 배의 아랫부분을 모두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끼가 배의 상처 또한 가려주었다는 것일까.
배를 다시금 물 위에 올렸다. 중간에 틈이라도 생겨서 물에 뜨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도 잠시, 배는 출렁이는 수면 위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잡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이제껏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던 것과 달리, 머리 뒤에서 불어온 바람이 바다를 흙냄새로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물의 방향 또한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간조가 시작되려는 듯했다. 항구 밖으로 나가려는 물과 들어오려는 물이 부딪히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방파제의 표면에는 만조 때 차오른 물 만큼의 이끼가 새겨져 있었다.
장난감 배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는 노을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마을의 전경이, 가로등 위에 앉아 끼룩거리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새롭게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를 뒤로하고는, 노인의 이름을 실은 배가 검은 동해를 향해 출항했다.
그리고 그 배의 앞길을, 등대가 회전하며 비춰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