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삼거리에서 Jul 26. 2020

기둥서방과 부랄 친구 (노 이병)

망군 亡軍


-- 육이오전쟁, 아니 창군 이래 수십 년을 이러고 있었던 게다. --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 받을 때 주일이면 조교가 큰 구령 소리로 교회, 절 가라고 소집한다.

"기독교 환자 집합!"
"불교 환자 집합!"

훈련 마치고 갈매기가 주워 먹는다는 이등병 계급장 달고서 최전방 GOP 자대로 간다.

첫날 첫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위 고참이 소초 막사 구석으로 데리고 간다. 분홍색 아스테지 안에 고이 모신 손바닥만 한 쪽지를 내민다.
글씨가 깨알 같다. 길다.
무조건 외우란다. 3일 준단다.

고참은 예수와 동기 동창이고 성모 마리아의 기둥서방이며 석가모니와 부랄 친구며 마호메트와 호형호제한다. 고참은 공자와 어쩌구 누구와 저쩌구 블라블라.

장난 아니다. 3일간 밥 먹고, 불침번 안 서고, 경계 근무도 안 서고 이거만 했다 해도 과언 아니다.
거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못 외우면 죽음이나 다름없다.
줄줄 왼다. 완벽하니 통과.

옛 기억이라 마호메트보다 한 끗발 높다인지 긴가민가 확실치 않다.

난 무교인데도 불경할까 죄송했는데 종교인들은 어떨까 걱정되었다.

도대체 이게 먼가? 대한민국 군이 이러고 있었다.

육이오 전쟁, 아니 창군 이래 수십 년을 이러고 있었던 다.

그 많은 군 통수권자, 국방장관, 참모총장, 사단장, 소대장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가?
기독교, 불교 종단은 또 무얼 하고 있었는가?

이건 나라 지키는 군대가 아니고,
깡패, 범죄 집단이요, 미치광이 이단 중에 이단이다.

1982년 일이다.
내가 고참 돼서는 적어도 우리 소대만큼은 이 악습을 끊어버렸다.

그간 전쟁 안 난 게 참 다행이다.


 




지금은



둘째가 입대한 지 3개월째.
세세히 듣고 있다. 참 많이 바뀌었다.
군이 이제나마 제대로 가고 있다.

그래도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안 된다. 절대, 결단코, 하늘이 두 쪽 나도.
자식, 후손, 그리고 나를 위해서.



2018.01.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