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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Sep 18. 2020

매미와 어머니의 마음 (훈련병)

망군 亡軍


-- 쥐의 눈에 꼬랑지 감춘 겁먹은 개만도 못한 동물이 되어 있었다. --





1982년 1월. 사단 신병 교육대.

새벽 2시.

기상! 기상! 기상!

조교가 막사네 소대 규모 훈령병을 깨운다. 입으로 고함치고 오른손에 몽둥이로 훈련병 대갈통을 드럼 치듯이 두드린다. 내무반 복도를 급히 질러가면서 닥치는 대로.

양쪽 침상에서 20여 명씩 일렬로 나란히 누워 곤히 잠든 훈련병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잠이 깬다. 밤 10시 취침 후 12시에 한 번했으니 이게 두 번째.

"열외 일 명 없이 알몸으로 막사 밖으로 집합!"

조교가 외치지만 침상에 모포를 몸에 두른 채 서로 눈치만 본다. 밖은 가장 추운 2월의 최전방 영하 15도. 바람 불면 체감 온도 영하 25도. 시궁창에서 발각된 쥐처럼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알만 굴릴 뿐 아무도 침상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이 새끼들이! 총알같이 튀어내려 와 개새끼들아!"

그렇다. 쥐새끼라 하기엔 체구가 크니 우린 개새끼가 맞다. 겁에 질려 꼬랑지를 똥구멍 아래로 말아 넣은 개새끼. 그렇지만 개새끼는 끼깅낑 앓는 소리라도 낸다. 그럼 안 물고 봐주기도 하니까.


허나 우린 누구 하나 끽소리 없다. 그건 항명이고 그럼 고문관으로 찍혀 초주검 되니까. 그걸 여기서 수없이 봤으니까. 그러니 우린 개새끼마저도 못 된다.




ㅡㅡㅡ




"어랏. 이 새끼들 봐라?" 

조교는 문 앞쪽 침상의 훈련병부터 몽둥이로 대갈빡을 갈긴다. 오직 맞지 않기 위해서 후다닥 문쪽으로 뛴다. 버티다간 맞아 죽으니까. 그렇게 전부가 복도에서 문으로 향하고 조교는 젤 뒤로 가서 나가, 나가 외친다.

허나 맨 앞에 한두 녀석이 활짝 열린 문틀손 벌려 잡고 양발도 벌려 바닥을 딛고 큰 대자로 한껏 버틴다. 얼음장 같은 칼바람이 홀딱 벗은 몸을 핥으니 녀석은 밖으로 내몰리지 않으려고 사지와 온몸에 힘을 바짝 준다.

조교는 안다. 이 짓거리를 오늘만 해도 두 번째. 이틀이 멀다 하고, 훈련소 조교 2년 반째니 거쳐간 신병만도 사단 규모. 젤 뒤에 녀석 을 몽둥이로 대가리고 몸이고 사정없이 두들기고, 군홧발로는 종아리를 찍어 찬다. 맞는 걸 피하려면, 아니 살려면 훈련병들은 앞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그래서 젤 앞에 문틀 붙든 녀석이 밖으로 밀리고 그렇게 훈병들은 막사 뒤쪽 마당에 모이게 된다. 훈병들은 추위를 덜려고 똬리 튼 뱀처럼 똘똘 뭉친다. 바깥 줄은 춥고 안은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하니 안으로 비집고 들고 안은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고. 똬리가 찰떡처럼 뭉친다.




ㅡㅡㅡ




"양팔 벌려 좌우정열!"

그래야 냉기가 그대로 훈련병 각각의 온몸에 전달되니까. 그렇다고 순순히 따르는 바보는 없다. 허나 조교가 몇 차례 몽둥이를 휘두르니 접 붙은 똥개가 이리저리 엉거주춤 몰리다가 떨어지듯, 모세의 기적에 바다가 갈라지듯 분리된다. 조교가 바라는 대형을 갖춘다. 그렇게 맨몸, 맨발로 맨땅에서 큰 대자로 10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사시나무 떨리듯 양팔 양다리 벌린 채로 부들부들, 위아래 이빨이 부딪혀 여기저기서 따다닥 따다닥.

"에이 씨발 차가워."

이쯤에서 조교는 미리 준비한 양동이에서 손에 물을 담아 앞줄부터 차례로 몸통에 끼얹는다. 뭉친 물보다 흩뿌려야, 몸이 얼기 전에 온기가 남았을 때 추적추적 적셔 죽을 맛이다. 맹추위에 얼음같이 찬물에 공포까지 더해져서 지는 벌써 번데기 주름처럼 잔뜩 오그라들었, 불알은 진작 몸속 깊숙이 파고들어 숨었.  벌린 채 꼼짝없이 당하느니 차라리 몽둥이 매가 낫다. 웅크리며 아픈 척이나마 할 수는 있으니까.

"나무 위에 매미!"

조교가 외친다. 마당에는 나무가 몇 그루 넓적다리 굵기. 거기에 매미처럼 달라붙으라는 거. 매미는 공중에 있고 발이 땅에 닿으면 매미가 아닌 게 되니 명령 불복종. 몽둥이로 내리친다. 수십 명이 매달리기에는 택도 없는 나무 수. 나무 옆에 서 있어도 몸이 굳은 녀석보다 동작 빠른 녀석이 먼저다. 매를 피하려고 어떻게든 매미가 된다. 다급하면 붙은 매미 잡아당겨서 구고 지가 매미 되고.


조교가 다가오면 발을 바닥에서 떼어 안간힘으로 매달리고, 조교가 다른 나무로 이동하면 얼른 발을 땅에 붙인다. 듣도 보도 못 한 군에서만 서식하는 야행성 토종 한국산 매미. 겨울 새벽에 막사 뒷마당에선 한바탕 소리 없는 매미들 향연이 펼쳐진다.

"집합! 앉아! 오리걸음으로 변소로 갓!"

맨몸뚱이 살덩어리지만 뇌는 있기에 시키는 대로 따른다. 털 뽑은 오리 무리가 뒤뚱뒤뚱. 조교는 옆에 변소로 전부 몰아넣는다. 전면은 서서 소변, 중간은 복도, 뒤는 쪼그리고 앉아서 똥간 다섯 칸. 기다랗고 좁다.

"복도에 수류탄!"

똥간으로 튀어 숨으라는 거. 똥간 한 칸에 한 명 볼 일 보는데 뒤편 상단에 쪽창까지 매달리면 다섯은 구겨서라도 들어간다. 복도에 남은 십여 명은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는다.


"똥간에 수류탄"


복도로 나오라는 거. 후다닥 똥간서 나와 복도서 대기하고. 그렇게 조교는 입으로 수류탄을 몇  던진다. 그때마다 복도와 똥간 사이에서 우르륵 우르륵 아우성. 전쟁터가 따로 없다.




ㅡㅡㅡ




"복도에 앉아!"

이제야 처음으로 앉아본다. 알몸이고 시멘트 바닥은 냉골이니 쪼그리고 앉는다. 앞사람 등에 가슴을 최대한 붙여서 언몸을 조금이나마 녹인다.


조교가 외친다. 

"사회에서 노래 자신 있는 놈 손 들어!"

그 와중에 그놈의 노래가 지 한 녀석이 앞으로 나선다.

한겨울 오밤중 공중변소 복도를 가득 메운,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아 웅크린 채 눌어붙은, 엿같은 생물 앞에 동종의 생물이 다.

"어머니의 마음 알지? 선창 하면 다 같이 따라 한다!"

녀석은 잠시 가사를 뇌인다. 


"준비됐나. 노래 일발 장전!"


조교의 구령에 맞춰 훈련병 모두가 마지못해서,


"발사!"


녀석이 선창 하며 다 함께 부른다. 조교만 빼고.

"낳실 제 괴에로움 다 잊으시고오."
"낳실 제 괴에로움 다 잊으 흑"

누군지 하나둘 흑 흐느낀다.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으음."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 흑흑"

대여섯이 가세해서 예서제서 흑흑 흐느낀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오오생 하시네."
"진자리 마른자리 흐흑 갈아뉘시 흐흑 손발이 다 닳 흐흐흑 고오오생 흐흑흐윽"

"하늘 아래...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가이..."
"그 무엇이... 으으은혜는... 없어라."

선창자나 따라 부르는 자나 제정신이 아니다. 누가 부르다 흐느끼느라 노래가 끊기면 다른 누가 메꿔서 부르고 그 또한 복받쳐서 멈추면 다른 누가 채워 부르고. 나 또한 격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울다가 부르다가 눈물, 콧물 훔치며 부르다가 흐느끼다가.

세상에 이리도 감동적인 노래는 단연코 없다. 어머니의 마음이 이리 심장을 후벼 판 건 난생처음이다.

"해산!"

내몰릴 때와는 정반대로 다들 총알처럼 내무반으로 달려들어가 모포로 몸을 두른다.

총시간은 50여분. 조교는 자기 불침번 한 시간을 그렇게 때운다. 교대 시간 돼가니 자기 시간 아까워서 끝내는 거다.

이렇게 신병 훈련을 5주 받았다. 하루 걸러 어떤 날은 한 번, 다른 날은 두 번 취침 이후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쥐눈에 개새끼보다 못 한 대가리 달린 살덩어리가 되었다가 한겨울에 맞은 매미로, 털 빠진 오리로 변신했다. 별 아래 괴이한 광경이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어머니의 마음 노래만은 단 한 번 뿐이었다.


모든 건 잘 짜인 각본이었고 군의 전통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조교를 원망할 수 없다. 그도 신병 때 같은 걸 겪었을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한 하사관 교육 아닌 폭력을 한 번 더 당했기 때문에 악마가 된 거니까.


이렇게 창군 이래 전통이라는 미명의 폭력을 나는 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처음 목도했고 온몸으로 겪으면서 배우고 익혔다. 5주간의 미친 짓마칠 때쯤 나는 나라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군인이 아니라 머리는 붙어 있되 생선만도 못한 대가리에 불과했다. 쥐의 눈에 꼬랑지 감춘 겁먹은 개만도 못한 동물이 되어 있었다. 갈가리 찢긴 영혼과 산산조각 난 자유 의지가 자살 유혹과 살인 충동으로 대체되기에 5주는 넉넉한 기간이었다. 




2020.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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