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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Apr 19. 2024

자살과 전역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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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7개월까지. 살해 자살하려고

입대 8개월부터. 살아서 전역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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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여름. 두 달 군 병원 입원하면서 입대 후 처음 마음이 정되었다. 무엇보다도 구타가 없었다. 매 맞아 아파서보다 폭력에 굴종이 죽기보다 싫었다. 독재라는 폭력에 의해 별안간 강제 징집 당했고, 사단훈련소 훈련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한 마리 벌레이길 거부할 방법을 찾았다. 매일 자살할 궁리. 혼자 죽기 억울했다. 전두환 사살 즉시 자살.


배치된 자대에선 고문관이었다. 적응 잘해도 구타인데 작정하고 부적응자니 매를 한껏 키운다. 소대 막내가 늘 삐딱. 이를테면 최전방 도로 제설 작업. 중졸 병장이 내게 육사 가서 대대장 하지 그랬냐 하길래 별 달아 줘도 싫어요. 그날 밤 소대 병들 죄다 줄줄이 집합과 구타. 막내가 군기 빠졌다고.  이를테면 일과 후 쓰레기통 비우러 소각장 간다. 통 베고 누워 하늘을 보다 잠 든다. 막내가 안 보이니 탈영한 줄 알고 소대가 발칵. 참다 못한 병장 넷이 막사 복도에 나를 세우고 에워싼다. 전소대원이 보는 앞에서 집단 무차별 구타. 쓰러뜨리고 군화발로 축구 공인 양 차고 지져밟는다. 웅크려 장기 파열 보호 외엔 할 게 없다. 고참 병장이 이등병 것도 막내를 직접 구타하는 일은 결코 없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다. 군에선 참이다. 식기당번이라고 네 명 즉 소대 서열 중간쯤인 상병이나 고참 일병이 소대 병의 군기를 잡는다. 고참 병장이 식기당번에게 요즘 군기가 빠졌어. 한 마디면 자동 그 이하로 상병, 일병, 이등병들 차례로 집합해 구타. 군기 반장인 식기당번마저 포기한 막내. 그게  나였다. 왕고참과 병장 셋이 직접 나선 거.


몸은 손으로 말아서 내장 손상은 막았지만 머리는 노출. 고막 파열 및 뇌 이상. 대대, 연대, 사단, 군단 병원 거쳐 원주 1군 후송병원. 한 달 여. 병원서 일과는 밥 먹고 약 먹고 회복하는 거. 구타는 없다. 군 입대 후 처음으로 마음이 진정된다. 벼라별 병이나 사고로 입원한 장병들. 병원서 군 복무 6개월차 되었고 이등병에서 일병 진급. 제정신이 돌아와서 보니 나만 군대 끌려온 게 아니었다. 장병이라면 누구건 제대 날자만 손꼽아 세며 고대한다. 입대 전에 숙고해야 할 걸 병원에 장기 입원하면서 하게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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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징집과 차이는 있다. 나는 제대를 기대하지 않았다. 다들 입대할 때가 되어 신검 받고 자발적으로 각오하고 입대. 나는 막연히 대학 3년 마치고 입대할 생각이었다. 해서 대학 신입생으로 문무대 교육을 마쳤다. 1학년 겨울방학 때 부족한 영어 향상하려고 시립도서관서 영어사전 한 장씩 입으로 씹어가며 외우고 있었다. 헌데 뜬금없이 받아든 입대 영장. 휴학계를 내야 입영인데? 나는 휴학 안 했는데? 일주일 후 입대. 신검은커녕 마음의 준비라곤 일절 없이 초고속 진행. 사단 훈련소 첫날부터 시작된 구타의 나날. 전두환은 나를 콕 찍어서 군영에 가두었고 내게 갖은 치욕과 굴종을 안겼다.


혹자는 어차피 군에 가는 거 아닌가 반문. 천만에. 징집도 법이 있고 절차가 있다. 남자에게 군이란 일생일대 전환점. 그만큼 계획과 숙려 하에 행한다. 대통령도 법이 있고 선출 절차가 있다. 전두환은 군을 동원한 쿠데타 폭력으로 대통령직을 집어삼켰다. 그의 부당한 권력에 반하는 사람들은 폭력으로 탄압했다. 누구든 어김없이 잡아가 고문해 감옥 보내거나 죽이거나. 어린 청춘은 잡아다 군에 보냈다. 길들여지거나 죽거나. 길들이는 건 보안대, 죽는 건 자살, 타살이거나 사고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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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병원서 소식 듣다. 나를 집단으로 구타한 병장들 영창 갔다고. 나는 두 달 병원 신세. 병끼리 불화 나봤자 병들만 서로 피해. 병원서 신청한 의병 제대는 역시나 보안대 압력으로 무산되고. 2년 꼬박 남은 군복무 어쩌나. 자살? 전두환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사살? 최전방 내 앞까지 오겠나. 탈영? 군법 위반 감옥행. 전두환이 바라는 바. 계속 고문관? 나도 피해, 병들도 피해. 무엇보다도 이러다간 맞아 죽게 생겼다. 개죽음. 그래, 어차피 군에 온 거 일단 제대하고 보자.


복무 8개월차. 대전통합병원서 자대 복귀할 때쯤 마음가짐을 완전히 달리하였다. 단, 전출 즉 소속 대대를 바꿔달라 했다. 37연대 9중대. 이때부터다. 군 생활 열심히,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했다. 전역의 그날까지. 긍정적, 적극적, 활달한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강제 징집과 굴욕의 원한은 마음 저 구석에 밀쳐두었다.




8개월차. 입대 후 비로소 웃음을 되찾다. 병원서 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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