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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Sep 13. 2020

오폭

거래의 원리


할배약방




1부. 선전 포고

2부. 전투

3부. 오폭

4부. 인연  




- 오폭 -   




다음날


아침 일찍 혼자 차 몰고 집으로 출발한다. 전원주택에서 원주까지 삼십여 분 거리. 시간이 넉넉하니 작정하고 어제 일을 되짚어 보기로 한다. 속이 편해지니 차창 밖에서 달리는 풍경처럼 몸과 마음이 다 가뿟하다.   


약값 오천 원, 지팡이 오만 원은 정당한가? 결론부터 내자면 정당하다.


첫째, 파는 자 마음이다.   


싫으면 안 사면 되고, 미우면 안 가면 그만이다. 사는 자 마음에 안 든다고 갑질 하는 사람들 드물지만 있다. 파는 자에게 욕설하고, 상품 집어던지고, 가게 안팎을 드나들며 소리쳐서 손님 내쫓고, 심지어 인터넷에 올려 가게 문 닫게 한다고 겁을 준다.


이 정도면 범죄 행위다. 형법상 모욕죄, 재물손괴죄, 폭행죄, 영업방해죄, 협박죄에다 실제 인터넷에 올리면 명예훼손죄다. 그것 때문에 가게 문 닫게 생겼으면 형사 처벌은 물론 민사로 손해 배상까지 해야 한다. 이런 고객은 왕 아니다. 왕도 법을 지켜야 한다.  


둘째, 그렇다 해도 심하지 않나? 약값은 두 배, 지팡이는 다섯 배라니? 그럴 수 있다.   


면에 약방이 하나뿐이라 독점이다. 시골이라 주민 수가 적고 접근성마저 떨어져서 박리다매는 애초에 글렀다. 그러니 비싸게 파는 게 맞다.    



[실전 비지니스]   


무릇 최고의 장사꾼은 비싸게 많이 판다. 그 다음 싸게 많이 판다. 그 다음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팔거나, 비싸게 적게 판다.

문제는 싼데도 적게 파는 거다. 대변신해야 할 때다. 업을 접을 때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면 비싸게 많이 팔거나, 싸게 많이 팔아야 한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팔면 먹고는 사나 결국 경쟁에 치인다.

대개 차별화가 가른다. 그러니 팔려고 하기 전에 무엇이 다른가를 살펴야 한다.

경쟁이 심할수록 차별화가 더욱 필요하다.   


무릇 최고의 차별화는 새로움이고 출발은 창의이다. 

최선의 차별화는 남다름이고 출발은 역발상이다.

차선의 차별화는 색다름이고 출발은 발상의 전환이다.

대개 새로움의 뿌리는 엉뚱한 상상이고, 남다름이나 색다름이나 뿌리는 PMA다.

Positive Mental Attitude 적극적 사고

시장 지배적 관점에서 최고의 차별화는 독점이다.



허나 어쩌랴?


약방에 알루미늄 새시문은 삐거덕 거리고, 조명은 어둡고, 난방은 연탄난로인 것을 보건대 손님이 적어도 너무 적다. 이 정도니 직원은 당연히 둘 수 없다. 게다가 병원 하나 없으니 처방전 받을 일 없고, 최근에는 편의점까지 비상 상비약을 팔아 집객을 방해하니 사정이 오죽 딱하겠나? 얼마나 운영이 어려우면 지팡이를 팔고 있겠나? 본인 인건비는커녕 용돈이나 건질 요량으로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거다.


딱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팔순에 소일거리가 있어 움직이는 건 건강에 좋다. 용돈까지 버는 건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아픈 사람 병을 낫게 하니 보람까지 있다. 약방에 생뚱맞게 지팡이를 갖다 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수많은 상품 중에서 왜 유독 노인용 지팡이 하나만 콕 찍었을까? 노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신 게다.


게다가 지팡이는 할아버지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유용하다. 노인 사정은 노인이 알고, 죽음을 예감하는 노인에게는 기억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전국 어디나 당대에만 약방을 운영할 수 있기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여기 약방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 그전에 이리 경륜이 훌륭한 분이 자리를 지키는 건 병원은커녕 약국 하나 없는 시골에서 주민에게 행이요 복이다.   


가매기 삼거리 집 도착    


허락받은 외박이나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고한다. 먼저 귀복식당이 양이 참 많다고 자랑한다.


"그 식당 먹을 만해요?"    


맛있다 하니 아내는 다음에 가족이 모이면 다 함께 꼭 가잔다. 요즘 그렇게 맛있고 양까지 많은 집 없단다.

맞다. 나는 왜 가족 생각을 못했지? 역시 마누님은 현모양처고 나는 철이 없다.     


약방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말해 주고 난 후 묻는다.   


"체하는 데 먹는 약이 오천 원이면 비싼 거 아냐?"    


아내는 알약 수가 많으니 오천 원이 맞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역시 마누님은 현명하시다. 나보다 낫다.  


아참, 처방전이 없으니 건강보험도 안 되지 않나?

그렇다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는 돈이 없으니 오천 원도 싼 거다.


배가 고파 아내에게 해장 라면 끓여 달래서 먹으니 맛나다.

할아버지가 삼일 지나 배 고프면 완전히 낫는 거라 했는데 약 먹고 바로 다음날 배가 고프니 벌써 다 나은 거다. 비법이 맞다.    


이러고 보니 내가 잘못한 게다. 내 멋대로 가격에만 집착해서 약값을 넘겨짚고 후려친 거다.

이러하니 지팡이 또한 지레짐작한 게 틀림없다. 자연목 무늬 살리려 칠을 안 한 게 상품이고 잔뜩 떡칠해서 번질번질한 게 하품인 게다. 상등품이니 문 앞에 두고 하품이라 눈에 잘 안 뜨이는 천정 구석에 걸어 둔 거다. 내가 만 원밖에 없다며 택시비니 뭐니 연신 죽는소리를 하니까 할아버지는 내 형편에 맞추어 지팡이를 저렴한 걸로 권해 주신 거다.    


약이든 지팡이든 할아버지는 병을 살펴 주시고 주머니 사정을 배려하신 건데, 나는 자만으로 가득 차서 대결이랍시고 괜한 시비를 걸며 깝죽댄 거다. 삼장법사 손바닥에서 재롱떤 손오공이다. 나는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야 그때나 철이 들래나 보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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