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 결혼식에 갔었다. 서울시청 앞 더프라자 호텔. 어이구야. 사방에 화환이 얼마나 많은지 사선으로 겹쳐 놓아 백 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화환이 이 정도니 예식과 피로연이 이어서 열린 축구장 반만 한 대연회장은 하객으로 미어터졌다. 십여 명이 둘러앉는 원형 테이블 수십 개가 빈 좌석 없이 꽉 들어찼다.
호텔 측은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사람들을 별도의 부페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연회장의 비좁은 테이블에 스테이크 달랑 한 접시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흔한 부페에서 볼 수 없는 방어회, 참치회가 비싸고 맛난 거라 회로 몇 접시 거의 배를 채웠다. 이 행운을 계기로 나와 친구 둘은 펄쩍펄쩍 뛰는 방어를 즉석에서 회 뜬 걸 먹기로 진즉에 날자를 잡고 장소는 원주로 정했다.
이틀 전.
어둠이 드리울 시간. 원주어시장. 일 년 전쯤 개장했단다. 시장이라고 이름을 붙일 만하게 독채로 높고 넓게 현대식으로 지었다. 새 건물에 입주한 이십여 개 횟집들은 구획을 나누어 줄과 열이 잘 맞고 한결같이 깔끔하다.
어류, 패류에 러시아산 대게까지 어지간한 횟감은 다 갖추었다. 수족관에서 유유히 빙빙 도는 대방어 몇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애인이라도 만난 듯 반가워 멈춰 선다. 그 우아한 자태에 슬며시 빨려든다.
"방어 해체 전문입니다. 대방어 맛이나 한번 보세요."
주인에게 눈길을 주자 주인은 내 소매를 잡아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여기를 보란다. 도마 아래 뻥 뚫린 수납 공간에 대방어 대가리가 세 개나 된다. 눈 여섯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회 뜨면서 잘라낸 걸 맛 보자는 건가? 냉장이 아닌 상온인데? 상했을까 걱정된다. 주인이 제일 큰 거를 꺼내어 으스대며 보여준다. 엄청 커서 웬만한 개머리다. 가까이 보니 눈이 밤톨만한 게 동그랗고 선명해서 바닷물에 넣으면 대가리만으로도 헤엄칠 것처럼 싱싱하다.
“세 마리 다 오늘 잡은 겁니다.”
주인이 자랑하는데 정작 좌석에는 술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다 먹고 자리를 뜬 건가? 오늘 잡은 게 맞나 의심이 든다. 주인은 목 부위를 회 뜨며 자랑을 이어간다.
"이 부위가 가마살입니다. 가마살은 아무나 못먹어요. 아는 사람만 먹어요."
한 접시 만들어 횟집 주인, 맞은편 횟집 주인과 그 부인 그리고 나, 넷이 회를 앞에 두고 둘러앉는다. 그래, 주인과 함께 여럿이 먹으면 별일 없을 거야. 한 점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초장 약간에 와사비 듬뿍 찍어 입에 넣는다. 쫀득쫀득. 난생 처음 식감, 별미 중 별미다. 식감이 너무 훌륭해 먹다 보니 다섯 점이나 꿀떡꿀떡. 주인도 연실 주워 먹으며 자화자찬.
“방어회는 큰 놈일수록 맛있어요.”
이 정도 서비스와 친절에 안 넘어갈 사람 있으랴. 내일 셋이 들른다고 주인과 약속했다.
아뿔싸.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기 마련인가 역시나 이게 살짝 상한 듯. 다음날 새벽 두 시경부터 두 번 토하고 배가 아파서 잠을 못 이루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주인이 상한 걸 알고서 같이 먹지는 않았을 거다. 설사 대가리가 상했다고 해도 몇 조각 시식했을 뿐이다. 살짝 맛이 갔을 뿐이어서 증상이 심하지도 치명적이지도 않다. 죽은 눈알마저 그리 선명했으니 그 전에 회 뜬 몸통은 아주 싱싱한 정상이었을 터. 무엇보다도 선의였고 서비스였다. 그러니 주인을 탓하기 어렵다.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후에 횟집 주인에게 전화해서 간밤의 고약한 사정을 말하니 주인은 괜찮단다. 하지만 나는 배가 살살 아프니 날 것인 회를 피해야 할 상황. 친구 둘에게 원주의 새로운 명소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어쩔 수 없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약을 취소했다. 그래서 한 달 기다린 대망의 대방어회를 다급하게 회 아닌 메뉴로 변경, 따라서 장소 급 변경, 또 변경. 결국 귀래 귀복식당서 삼겹살 먹다가 급체해 약방까지 가게 된 거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예사 인연이 아니다. 한 달 전 친구 딸 서울 결혼식이 귀래 시골 약방 할아버지로 이어지다니. 다음에 면에 갈 일 있으면 2,000원 꼭 더 드려야겠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도전. 아내와 함께 직접 개발해 고향 마을 가매기 삼거리에서 시작한 치킨집이 자리잡으면 오만 원 지팡이도 하나 사드려야겠다. 그리고 할아버지 모시고 귀복식당 가서 삼겹살 푸짐하게 대접하고, 머지않아 기억으로만 남을 약방과 그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근데 사과는 어떻게 하지? 방어가 맺어준 인연? 방어 덕에 돌고 돌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킨 인연의 미로를 어떻게 설명드리나?
아, 맞다. 이 글을 드리면 되겠다. 여기에 다 쓰여 있으니까. 그럼 할아버지는 글 속에서 나와 함께 백년, 운 좋으면 천년 사시는 거야.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