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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May 25. 2022

데이지

청옥산에 올라가면 그 높고 넓은 데가 온통 데이지 꽃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했다. 그 생각만 하고 평창으로 갔다.



원래부터 데이지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일곱 살 땐가, 엄마가 길에 핀 개망초를 두고 "미림아, 이거 꼭 계란 후라이처럼 생겼지? 이거 계란 후라이 꽃이야."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었다. 계란 후라이는 비릿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면서도 조그만 계란 후라이 꽃은 참 좋았다. 그런 내가 개망초의 확장형인 데이지는 왜 싫어했나 보니까 일곱 살 때쯤 본 만화 때문인 게 분명하다.


웨딩 피치라고, 인형처럼 예쁜 여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인데 거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릴리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좋아했던 캐릭터가 피치고... 세 명 중에 하나인 데이지는 뭔가 예쁘지 않았다. 왜? 데이지의 치마는 긴 드레스가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단순하고 어이없는 이유로 데이지는 내 머릿속에서 별로 예쁘지 않은 꽃이라는 견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 근린공원에 데이지 꽃이 많이 피어난 것이다. 얇은 꽃대는 좀 무겁지 않나, 싶을 만한 꽃송이를 잘도 버티며 살랑였다. 그 키도 꽤 컸는데, 내 무릎만치 올라와 자라 있었다.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도 곱고, 새하얗고 샛노란 반전도 자세히 보니 생그러워보였다. 그러다 그 꽃이 좋아졌다.


그랬으니 청옥산으로 향하는 길에 내 마음은 설렘. 유월이면 만개한다고 하니, 오월 말쯤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피어있을 게 분명했다. 날도 쨍하고, 공기도 건조하고, 바람은 선선했으니, 날씨는 완벽했다. 굽은 길, 한참을 올라가며. 막힌 귀는 코 막은 바람으로 뚫어내며. 더, 더, 높이. 높은 데에 있는 데이지 꽃밭은 상상하며.


그러나 몇 시간을 차로 달려 간 그곳엔 민들레만 가득했다. 높은 데라 너무 추웠나, 민들레만 가득했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꽃밭 틈에 난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고라니가 내 소리를 듣고 놀라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나는 그 옆에 주저앉아서 언덕에 핀 잡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건 잡풀들이 아니라 꽃봉오리들이었다. 온 데가 다 꽃봉오리들이었다.



청옥산을 내려오며 마음이 서글프지 않았던 건, 때가 되면 피어나 온 데를 다 덮을 데이지 꽃봉오리들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감히. 아직 닿지 못한 나의 완성을 보고 계신 신의 마음과도 같은 거였다. 앞날을 알지 못해 불안한 나와는 달리 모든 일의 결국을 다 알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면.


꽃봉오리를 보며 다 핀 꽃들을 보는 마음을 배우고 청옥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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