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가을 Jul 16. 2019

[언젠가는 써야만 했다] 미숙1

떨어져서 어떻게 살아

지난 금요일 짐을 꾸리고, 토요일에 이사했다. 부모님의 집을 떠나 내 공간을 꾸린 것이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지워졌다. 복잡한 감정선을 가졌지만 그 감정이 미묘하게 잘 드러나는 사람. 말 한마디, 여운을 남기는 행동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있구나, 알았다. 


월요일 밤, 퇴근 후 엄마와 통화를 했다. 

생각보다 이사 온 곳이랑 회사가 가까워, 걸어서 몇 분, 오는 데 대로도 걸을 맛이 나더라, 시시콜콜한 말을 전하고 말은 돌고 돌아 본심을 내비쳤다.


목요일에 네가 출근할 때, 그동안 우리 애들이 학교든, 회사든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말 듣고, 가는 뒷모습 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지금 이 모습이 마지막이겠구나 싶어서 어쩐지 좀 울적했어. 


담담하게 고백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애들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도 당장 이 공허함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은 하는데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네. 


마음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물리적인 독립과는 다른, 더욱더 어려운 일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날 때부터 연결된 부모 자식 간의 유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십년에 걸쳐 상처와 애정으로 단단해진 관계였다. 


어느 순간 심리적인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단 말이 딱 나에게 적용되는 것 같았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이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떠올렸다. 어쩌면 그 과정이 더 괴로웠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그 이유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엄마다. 그리고 인생의 친구로 나를 대해준 엄마에게 무한히 고맙다. 그렇다고 일거수일투족 모든 생활과 생각과 마음과 이야기를 공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칼이 되어 의도치 않게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다. 


울음이 커진 엄마는 잘 시간이 지났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 울음은 고스란히 나에게 옮겨왔다. 우리의 관계는 깊고, 각자 무른 중에 생활력이 강하니 어떻게든 이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괜찮아질까? 잘 모르겠다. 때때로 울컥할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의 형태에 적응하려고 애쓰며 하루하루 살아가겠지. 어떻게든 지내보겠지.


어떤 이야기 중에 엄마는 내게 '아주 나가 살고 싶어서 휙 나간 사람을 뭐'라는 식의 문장을 은연중에 뱉었다. 마음에 있던 말이 툭 튀어나온 것일 텐데 엄마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파고들기까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그간의 나의 어떤 행동들에.

이미 나와 있지만, 그래도 내 말과 행동을 되짚어본다. 또다시 죄책감을 느끼고 독립이란 뭘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4. 어떻게든 방송 종료 0.5초 작가 생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