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자리작가 Jun 17. 2024

여름의 기억들.

스치는 생각들

여름에 대한 첫 기억은 바다였다. 5살 정도의 유년기 기억으로 어딘지 모를 해변의 자갈밭에서 놀고 있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라 할 것도 없었다. 다만 사진 속 내 모습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수학여행 때 갔던 제주도 바다가 떠올랐다. 이 역시 별다른 추억은 없었지만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들뜬 기억이 있다.


군대 동기들과 함께 갔던 포항 앞바다였다. 처음으로 펜션 잡고 놀러 간 때였다. 처음으로 불을 피워봤고,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고, 수영도 즐기며 재밌게 놀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새끼 복어를 낚은 일이다. 주인분께 빌린 낡은 낚싯대였는데 미끼도 없이 줄만 맸던 낚싯대였다. 그걸로 어떻게 낚았던 거지? 지금도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여름이라 특별한 것도 없었고, 직장에 매몰되어 쉬는 날엔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기 바빴다. 연휴 때면 친구와 함께 pc방에서 날새며 놀았던 기억뿐이었다. 시시했지만 나름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했다. 큰돈 쓰지 않고 저렴하게 놀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여름에 대한 기억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사고였다. 몸에 이상이 있어 여름휴가와 연차를 맞춰 수술했는데 그게 잘못되는 바람에 결국 회사를 관뒀다. 몸 상태도 별로였지만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태도에 질려버렸다. 여전히 이때만 떠올리면 사람을 보는 시선이 뒤틀린다. 그래서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다시 또 삐뚤어질까 봐.


다음 여름, 난 상담을 받았다.

통원치료까지 끝났고, 다시 재취업을 해야 할 시기였다. 큰 사고를 겪었기에 멘탈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가며 상담을 받았다. 결과는... 별로였다. 상담도 궁합이 맞아야 잘 풀린다는데 난 별로였나 보다. 상담을 끝내는 날까지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조언도 내게 도움 되었다. 다만 상담 금액을 생각했을 때 가성비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아, 만약 상담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받아보라 적극 권하고 싶다. 상담 자체는 새로운 생각의 길을 열어주니까)


다음 여름,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직종을 바꾸며 환경도 바뀌었다. 난생처음 하는 서비스업은 신세계였다. 항상 기계와 씨름하던 내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게 너무 생소했다. 일하는 순간순간 사람들과 교감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했으나 내 업무가 중책의 위치가 아니기에 부담은 없었다. 업무 강도도 전 회사에 비해 훨씬 나았다. 돈은 덜 벌었지만 안정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해 여름, 처음으로 모임을 나갔다.

세상엔 나 말고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점을 찾을 때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왜 내 주변엔 책 읽는 사람들이 없을까?'라는 의문 속에 살았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 찾아간 곳이었다. 처음으로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났고, 덕분에 많은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모임은 여름날 피어오른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처음으로 이별이 아쉬웠던 때였다.


다음 여름날, 다시 글을 썼다.

프로젝트 모임에 가입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에 쓴 글이라 괜히 흥분되고 기분 좋았다. 100일 프로젝트라 초고도 다 완성하지 못했지만 다시금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때 준비했던 작품이 ‘별자리’다. 지금 내 브런치 필명이 된 계기다.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나 같은 집돌이도 코로나로 인해 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어떤 날을 마주할지 모를 시간의 연속이었다. 느닷없이 덮쳐온 팬데믹에 좁았던 활동반경이 더욱더 좁아졌다. 혼자인 시간들은 계속되었다. 고독을 즐기던 나조차 지쳐가고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립기도 했다. 짧았던 독서모임을 기억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길 바랐다.


그리고 작년 여름날, 난 바닷가에 있었다.

바라던 데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가가길 망설이던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이들.

덕분에 지금의 난 많이 변할 수 있었다.


매 해 여름이면 좋을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이번 여름도 기대된다.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작가의 이전글 정답이 아닌 실마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