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집을 지어 놓고 무언가가 거기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거미의 운명이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듭 말한다. “배면을 보라. 이면을 보라. 높이서도 보고 멀리에서도 가까이에서도 보라. 세상에 한 가지 모습만 있는 대상은 없다. 그들은 우리의 열린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교정 후 자신의 나아진 글씨를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획이 반듯한 글씨, 굵기가 일정한 글씨, 자간이 뚜렷한 글씨, 띄어쓰기가 명확한 글씨, 긴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글씨를 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의 붓으로 그린다. 깔끔한 글씨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내가 보인다. 이쁜 글씨는 나를 묘사하고 빛낸다.
이면의 시선으로 글씨 연습하는 나를 멀리서 지켜본다. 고작 손놀림인데 힘겨운지 엉덩이가 들썩인다. 고개는 점점 내려가고 허리는 구부정해진다. 여러 번 손 터는 동작을 하며 자세를 리셋한다.
만만치 않다. 머리와 눈과 손은 따로 논다. 머릿속에 있는 글씨를 눈으로 그리지 못하고, 눈으로 겨우 그린 글씨는 손에서 출력이 잘되지 않는다. 프린트 잉크 바늘이 고장 난 듯, 불량 글씨가 대량 생산된다.
하루가 지나고 한 주,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되어도 글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몽당연필만 남고 중지 손가락 끝 부위만 두툼하다. 다시 한번 글씨에 온 집중을 다하지만 결과는 역시다. 글씨 교정의 길은 험난 그 자체다.
포기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글씨라는 미미한 행위에 압도당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있다. 파도는 매일매일 절벽에 부딪치며 절경을 만드는 자연의 노고를 알듯, 하루도 빠지지 않는 나의 노력은 글씨 또한 점점 명필로 다듬는다는 세상의 진리를 잘 안다.
하루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뚜벅이가 되어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행진한다. 벤치마킹을 하듯, 막 시작한 일과 어려웠던 일에 같은 진리를 적용한다. 하루는 점점, 속이 꽉 찬 꽃게처럼, 풍만해진다. 바쁜 날들이 달력을 채우고 인생의 꽃망울을 만든다. 언젠가는 터트릴 날이 온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