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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30. 2020

아기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안 볼 때 뭔가 자꾸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뿌뿌

미팅을 하거나 일을 할 때엔 아기를 옆에 재워놓거나 바운서에 앉혀놓고 회의에 참여하곤 했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곧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렇게 여유롭게 일을 하는 것도 힘들어 질꺼다, 베이비 시터가 필요할 것이다 하는 말들을 종종 했었다. 그 때엔 '아,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지뭐. 아직 제대로 앉지도 못 하는 아기인데'하고는 별 생각없이 넘겼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아기가 혼자 앉아서 놀고, 놀다가 엎어지고, 엎어지다 뒹굴고, 또 뒹굴다 돌아다니고 하는 아기가 되어간다. 내가 볼 땐 아직 무릎을 세워서 적극적으로 기어다니는 레벨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팔힘이 세지고 있는 것 같긴하다. 푸쉬업 자세 정도는 이제 잘 하니까. 적어도 내가 지켜보고 있을 땐 그렇다.


하지만 재미있는 게, 내가 지켜보고 있고 같이 놀고 있을 땐 멀리 가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그냥 뒹굴 뒹굴 하며 장난감 한 번 내 얼굴 한 번 이렇게 보면서 나름 정적인 놀이를 하는데,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거나 딴 거 잠시 보러 다녀오면 아기는 이미 놀이 매트에서 떠나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준비하고 있다. 


어, 언제 거기까지 갔어? 어디가니?

분명 내가 볼 때엔 아직 기어다니는 능력 배지를 획득하진 못 했었는데, 어떻게 저기까지 간거지? 혹시나 해서 잠시 (진짜 몇 분) 아기 혼자 둘 때엔 노란 쿠션 근처 구석탱이에 아기를 앉혀두고 옆에 장난감을 뿌려두고 내 볼일을 보러 간다. (볼 일이라고 해 봤자 폰 충전 시키러 가기, 설거지 식기세척기에 넣기, 빨래 가지러 가기 정도?) 근데 그 몇 분 사이에 아기는 저 멀리까지 혼자 기어 나가 있다. 데굴 데굴 굴러서 갔는지, 포복 자세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가 있다. 저 멀리에. 나무 바닥이 딱딱하니 혹시 구르다 머리를 아야 할 까봐 바로 얼른 매트에 넣어주지만 또 안 보는 사이 다른 쪽으로 가 있다.


이렇게 잘 움직이는 것이 신기해 어떻게 다니나 보자 하고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다리거나 옆에서 그냥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기는 많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앉아서 장난감이랑 놀거나 내 얼굴을 보며 생글생글 웃고만 있다. '빨리 같이 놀자!'하는 얼굴로. 나는 좀 뭘 하나 보고 싶은데, 참 안 보여주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기도 자기 혼자 있는 시간에 여러가지를 시도해보고 연습도 해보고 실패도 해 보고 또 끝까지 연습해서 성공도 해보고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잘 해서 하나의 쇼를 보여줘야 한다는 은근 부담감이 있는 것일까, 혹은 실패하는 것을 보여주기 싫다는 마음이 있는 걸까, 혹은 그냥 누가 있으면 누구랑 놀고 싶은 맘이 앞서는 것 일까. 결국 뿌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수 는 없으나 혼자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였다. 장난도 원래 몰래 몰래 쳐야 더 재미있는 것 처럼! 


그 대신 뭔가 새로운 스킬 배지를 획득 했을 때 엄청 오버해서 박수치며 같이 축하해준다. 뭔가 성공 했을 때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그러면 뭔가 쑥스러워하며 씨익 하고 웃는 것이 정말 정말 대견하고 귀엽다. 아무리 아기이지만 마음껏 실패하고 스스로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옆에서 엄마가 계속 봐주고 안아주고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혼자 여러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겠다. 물론 주위에 위험한 것은 없는지, 배는 안 고픈지, 혼자 있고 싶어하는 타이밍인지를 확실히 인지한 후에. 


그래서 오늘 생각난 김에 베이비 놀이 매트를 또 사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 이렇게 씩씩하고 재미있는 아이가 되어가는 구나 뿌뿌! 


2020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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