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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21. 2020

잘 있다고 알리는 신호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임신 초기에 모두들 힘들다는 입덧이 나에게도 (아마) 왔었다. 드라마 처럼 밥 먹다 화장실로 뛰쳐나가서 토해야하는 그런 심한 입덧은 전혀 아니었고 그냥 배가 고파오면 갑자기 속이 좀 미식미식 거리는 정도? (정말 복 받았지!) 오서방이 어떤 느낌이냐고 계속 물었을 때 가장 근접한 느낌을 표현하자면 "그 전날 술 많이 먹고 그 다음날 속이 미식미식 한데 토를 할까 말까 하면서 그냥 뭔가 상태가 안 좋은 hangover 상태?"라고 했다. 계속 뭔 가를 먹어야 속이 편안해서 과자도 많이 사 놓고 맛있는 것도 계속 해 먹고 사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과일이 제일 먹고싶었다! 다행이다. 과자를 쉽게 안 찾아서. 미국에는 과일이 한국보다 훨씬 사서 별 부담 없이 포도, 체리, 블루베리, 바나나, 수박, 망고 계속 쉴 새없이 사 먹었다. 물론 밥도 잘 챙겨먹고. 단백질도 빠짐없이 챙겨먹고. 


사실 임신 초기가 끝나갈 무렵 (11주 째 쯤?) 6월 중순 프랑스로 학회 겸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있었다. (이미 거의 1년 전 부터 계획 된 여행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임신인 걸 알았을 때 의사에게 처음으로 물었던 질문이 '곧 프랑스로 여행을 가기로 되어있는데, 괜찮을까요?' 였다. 참나 임신한 엄마가 (그것도 고 위험군) 이런 질문을 하다니 라고 생각할까봐 되게 걱정했는데 의사는 아주 쿨 하게 '지금 몸 상태도 좋고 뭐 별 걱정없이 다녀와도 됩니다. 비행기에서 물 자주 마시고 가끔 다리 좀 풀어주고 하면 괜찮을거예요.'라며 이미 계획된 것이니 마음 편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다만 프랑스 가서 맛있는 치즈와 와인을 피하기는 좀 힘들거라며. 그리고 덧붙였다. '만약, 진짜 만약에 초기 유산이 되더라도 그건 산모분이 여행을 가서 그런 것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면서. 정말 그 한마디가 얼마나 고맙고 뭔가 나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던지. 


그래서 조심 할 수 있는 건 조심하면서 정말 아무 무리 없이 잘 다니고 잘 놀다가 왔다. 역시 내 딸이라 (아, 프랑스 다녀오자마자 DNA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딸이란다! 오서방이 엉엉 울었던 얘기는 나중에) 엄마 여행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시기에 딱 맞춰서 안정기가 되어주고 약하게 나마 있던 입덧도 거의 없어지고. 효녀다! 사실, 여행다니는 동안 혹시나 임신한 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평소보다 조심조심하긴 했다. 하지만 비행기 환승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거의 전력질주로 뛰어야 했던 적이 두번이나 있었고 (싼 비행기 표를 사는 바람에 3번을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맛있는 치즈에 와인을 눈 질끔감고 맛만 본 적도 있긴했다. 딱 한번! (오서방이 알고는 너무 뭐라고 해서 앞으로는 안 그러기로!) 하지만 프랑스에선 너무나 길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고 하필 내가 간 그 때가 최고로 더워서 뉴스에도 계속 나오고 했던 그 때라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몸을 사리고 조심할 뿐 뭐 어쩔 방도가 없었다. 임신이고 뭐고 그냥 덥고 힘드니까 쉬고 싶은건 다 매한가지.


하지만 임신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행동 하나 하나, 먹는 것 하나 하나, 나의 생각 하나하나가 혹시나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 까 하는 마음. 내가 괜히 여행한다고 아기가 힘들어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이 여행도 싸게 그리고 자유롭게 하겠다고 백팩만 메고 여행하기로 계획을 짜놨던 터라 호텔보다는 좀 더 저렴한 에어비앤비 숙소로 해 놓았고 어떤 숙소는 엘레베이터도, 에어콘도 없고 (유럽엔 이게 정상이라네). 같이 여행 간 엄마보다는 어쨋든 내가 더 나이가 어리니 짐도 들어주고 밥도 하고 그냥 할 수 밖에 없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임신해서 너무 무리하는게 아닌가, 우리 아기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걸 어떡해. 엄마 짐도 들어주고 싶고, 더 많이 걸어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싶고.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럴 때 마다 나에게 안심을 시켰던 건 가끔씩 찾아오는 미식 미식하는 그 느낌이었다. 아기가 '엄마, 나 여기 잘 있으니 걱정말고 재미있게 놀아요. 나도 여행하니 좋아요!' 하는 그런 느낌?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 하고 직접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그런 느낌? 이렇게 아기와 서로 적응을 해 가면서 서로에게 가끔 나름 독특한 방법으로 인사도 하면서 여행을 잘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모르게 자꾸 속으로 아가에게 말도 걸고 내가 보는 것을 설명도 해주고.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던 듯!

프랑스 남부 여행 중 하이라이트 라벤더 밭!


2019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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