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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베짱이 Jul 21. 2020

말 한 마디가 산후 우울증도 갚는다

오늘 왜 이렇게 예뻐?

사실 나는 스스로 엄청 밝고 자신감 넘치고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나 나름의 고민과 힘듬이 왜 없겠느냐 만은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선 항상 긍정적이고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산후 우울증이란 단어는 왠지 나랑 거리가 먼 얘기라 믿고 그저 흘려버렸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주위에서 들리는 여러가지 얘기에 자꾸 신경이 쓰이긴 했다. 내가 분만을 하기로 한 병원에서 하는 출산교실에 가서도 산후 우울증 (baby blues/ postpartum depression)에 관한 짧지 않은 강의와 대처 방법에 대해 들었고, 출산 직후 스스로 우울증을 검사해 보는 설문조사도 해야했다. 그렇게 자꾸 의도치 않게 이 우울증이란 단어에 계속해서 노출이 되고 나니 나도 자연스레 스스로를 체크하게 되고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임신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나의 파트너 오서방은 (산부인과 검진부터 모든 출산 교실 등 하나도 같이 안 한 것이 없다. 얼마나 감사한지) 출산교실에서 배운 대로 자꾸 나에게 질문을 해 대며 나를 은근 체크 했고 자기가 도울 수 있는게 있는지 자꾸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바로 옆에 착 붙어있다는 안도감이 일단은 너무 고맙고 도움이 됐다. 하지만 출산 직후는 너무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들어서 사실은 우울증이고 뭐고 그냥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한가지 자꾸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제 아기는 내 몸안에 없구나. 좀 아쉽다, 항상 같이었는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기를 만나고 싶어하겠다. 아기가 참 귀엽긴 한데 나는 너무 일단 힘들다.' 그리고 우리를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아기를 보고 '아이구 너무 귀엽다~ 축하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내가 괜찮냐는 안 물어주나요?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낳았는데. 만삭일 때 나에게 주던 오만 관심은 어디갔는지.' 라는 맘이 들었다. 참 이상한 감정이었다. 모두들 우리아기가 예뻐서 축하해주고 보고싶어하는 건데 이건 질투도 아닌 뭐라고 할까... 섭섭함? 내가 몸이 너무 아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래도 내 친구들과 특히 엄마인 여자들은 나를 먼저 더 걱정하고 안부를 물어봐왔다. 이게 바로 경험의 차이... 다 겪어봐야 안다는거, 진짜다.


물론 그 중간에서 나도 챙기랴 아기도 챙기랴 자기 엄마랑도 얘기하랴 오서방은 분주했다. 미국에서 출산을 했지만 꼭 처음에 한끼는 미역국을 먹겠노라 다짐하고 싸온 미역국을 데워서 나에게 대접을 하고 또 자꾸 울어대는 아기도 돌보고. 택사스에서 찾아온 엄마도 또 챙겨야하고. 그렇게 미역국을 천천히 먹는데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 나도 내 엄마 아빠가 보고싶기도 하고 또 계속 멈추지 않는 피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또 옆에서 고생하는 오서방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옆에서 꼬물꼬물 대는 새로운 생명체 때문에 감격스럽기도 하고. 참 복잡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 손님들과 간호사들이 잠시 없이 우리 방에 우리 둘과 아기만 남았을 때 오서방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 갑자기 대뜸 나에게 물었다 '나 좀 감정 해소 좀 해도 될까?' 그리고는 누워있는 나의 어깨에 기대 갑자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아이구.... 우리 오서방도 나와 같이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을 텐데 가장의 짐을 지고 있느라 맘대로 울지도 못 했구나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같이 잠시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그 순간을 함께 했다. 이렇게 한 가족이 되어 가는건가? :)


병원에서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서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간호사와 의사가 없어서 이제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집에 오니 또 우리 집이라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좋았다. 3일 이었지만 나의 몸은 출산 직후에 비해서 많이 회복을 해 있었고 그 동안 나름 배워온 육아 지식을 이제 우리 식으로 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직 회복이 안 된 몸이라 나는 아가에게 밥 주는 일만 하고 나머지는 오서방과 그의 어머니께서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2주 동안 아기 기저귀는 한 번도 제대로 갈아본 적이 없었고 어디 안고 걸어본 적도 없었다. 물론 수유를 하는 동안은 아기랑 함께 해야하니 계속 얼굴은 보았지만 빨리 회복해서 아가랑 더 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허니문 시기는 금방 지나가기 마련이고 드디어 진짜 육아가 시작되었다. 2-3시간 마다 먹이고 재워야하니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은 당연했고 나는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참 힘이 들었다. 저 울어대는 조그만 생명에게 양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니... 그 책임감은 부담감이 되었고 그 부담감은 날이 갈 수록 더 해 갔다. 그리고 제대로 쉴 수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으로 내 정신은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이 작은 아기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언제쯤 피는 멈출까? 아, 이 시기에 철분약을 먹으면서 변비가 심해져서 이것 또한 나의 큰 걱정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쯤 되니 저절로 왜 산후우울증에 걸리고 그렇게 병원에서 강조 했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아프고 피곤한데 정신적으로 걱정과 불안이 함께 오니 이건 좀... 진짜 세다 싶었다. 아무리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가가 귀여워도 또 울어재끼며 나의 찌찌를 찾을 때는 참,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힘들었다. 물론 옆에서 같이 육아휴직을 내고 도와주는 오서방이 있어서 그나마 힘듬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직 모유수유를 하는 이상 엄마 만이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어서 어느 고정된 일들은 내가 할 수 밖에 없다는 그 생각이 은근 부담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육아와 그리고 집안일 등등 끊임없이 돌아가는 24시간제 육아를 하다 보니 내가 뭘 입고 있는지 샤워는 언제 했는지 하는 것들은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꼭 문득 내가 뭘 하고 있지? 내 몰골이 어떤가 하는 현실 자각의 시간이 꼭 돌아온다. 그럴때마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울감 혹은 우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인생의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물론 이 감정도 1주 2주가 될 수록 많이 나아져갔지만. 그럴 때 가장 큰 도움을 준건 물론 오서방이었다. 내가 이런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그러는지 '오늘 너무 예뻐보인다고 말 했나? Did I tell you that you look so pretty today?' 혹은 '자기가 나의 히어로야. You are my hero.' 등등의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나의 기분 강약을 조절해 대는 것이 아닌가. 그냥 말 한마디 일 뿐인데도 나는 또 배시시 웃으며 '진짜?' 하고는 그날 하루의 에너지를 듬뿍 얻었다. 항상 나에게 '오늘 기분이 어때?' 혹은 '뭐든 얘기하고 싶은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얘기를 해 줘'라고 하며 나의 상태를 끊임 없이 체크하며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얼마나 고맙고 예쁜지. 어떻게 하는게 제일 잘 도와주는 지를 모르면서 도와주려고 애쓰는 것 만큼 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예민한 감정까지 고려해 가면서. :) 나는 나름 정당한 이유와 권리를 가지고 힘듬을 짜증으로 풀 수도 있는 위치라면 오서방은 딱히 그럴 위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또 그렇다고 딱히 아닌 것도 아닌 위치에 있다라고 해야할까? (오서방도 분만의 고통을 고스란히 옆에서 느꼈고 아빠로서 얼마나 힘들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나도 더 힘을 내서 이 상황을 즐겨보자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나도 오서방의 기분을 이해하고 함께 도와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해 가자는 맘을 더 강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가족의 동지애, 사랑이 더 생겨나게 되었다. 후후


2020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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