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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ul 14. 2024

친절한 카페 사장님의 정체와 은밀한 비밀 공간의 용도

평범했던 단층집이 증축하며 바뀐 일상

쏟아질 듯 먹구름이 낮게 깔린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곤충을 좋아하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시골 곤충체험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이미 상상 속의 곤충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듯했다.


"아빠, 장수풍뎅이도 볼 수 있을까?" 큰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사슴벌레도 있을 거야."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체험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아내가 내 팔을 살짝 잡았다.


"원고 마감 임박했잖아. 근처에 카페가 있던데, 거기 가서 작업 좀 하고 와. 두 시간 뒤에 돌아오면 될 거야."


아내의 따뜻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작가 조인후


촉촉한 흙냄새를 맡으며 좁은 시골길을 걸어 내려가던 중, 갑자기 눈에 들어온 건물 하나. 주변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 가옥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현대식 2층 건물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외벽에 큼지막한 통유리창, 그리고 '갤러리 카페'라는 간판. 이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호기심에 이끌려 좁은 돌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예상을 뛰어넘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장은 최소 4미터는 되어 보였고, 흰색으로 칠해진 벽면 곳곳에는 크고 작은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왼쪽 벽면을 따라 늘어선 원목 테이블과 의자, 오른쪽의 아늑한 소파 공간, 그리고 정면의 카운터와 그 뒤로 보이는 커다란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이 모든 것이 마치 서울 한복판의 세련된 갤러리 카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작가 조인후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짓는 중년 여성. 그녀의 앞치마에는 미세한 물감 얼룩이 보였다. 그 얼룩들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테라스에 앉으실래요? 날씨가 좀 흐리긴 한데, 비가 올 것 같으면 언제든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 편안한 어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에 놓인 철제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분주하게 김포공항을 오르내리는 비행기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드립니다."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펼쳤지만, 복잡한 마음 때문인지 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았다. 대신 이 특별한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커피를 다 마시고 계산을 위해 일어났다. 카운터로 향하던 중 문득 왼쪽 벽 끝에 있는 열린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로 아담한 공간이 보였는데,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방 안에는 나무 조각들과 반쯤 완성된 도자기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선반에는 다양한 색상의 물감과 붓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중앙의 큰 작업대 위에는 페인팅 중인 듯한 하얀 컵들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사장님, 혹시 여기가 작업실인가요?"


내 목소리에 사장님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놀람과 함께 반가움이 어렸다.


"네, 맞아요. 제 작은 아틀리에예요. 관심 있으세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작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네, 어릴 때 잠깐 세라믹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요. 혹시 물레 작업도 하세요?"


사장님의 눈이 반짝였다. 


"아, 물레는 공간이 더 필요해서 외부 작업실에서 해요. 여기선 주로 페인팅 작업을 하죠. 혹시... 한번 구경해 보실래요?"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작가 조인후


그녀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실로 들어서자 물감 냄새와 흙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사장님은 하나하나 작품을 설명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삶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 카페, 10년 전만 해도 그저 평범한 1층 집이었어요. 남편과 함께 2층으로 증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죠."


"저기 보이는 목공 작업물은 제 남편 거예요. 그이는 40년 넘게 파일럿으로 일하다 은퇴했어요. 지금은 취미로 나무를 깎고 다듬어 작품을 만들죠."


순간 이 카페의 위치가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늘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위해, 비행기가 보이는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개인 작업실을 카페로도 운영하세요? 작업에 방해되지 않나요?"


이어진 사장님의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혼자 쓰기엔 너무 아깝더라고요. 게다가 저처럼 작품 활동을 하는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전시 기회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곳을 카페로 열고, 벽면을 작은 갤러리처럼 활용하기로 한 거죠."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작가 조인후


그 배려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 역시 글을 쓴다고 하자, 사장님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예술인들을 위한 각종 지원 정보를 알려주었다.


"글쓰기도 참 외로운 작업이죠. 하지만 그 고독을 견뎌내면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는 법이에요. 힘내세요."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조언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열정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카페를 나서는 순간,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곤충체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나도 이런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내 글과 다른 이들의 예술이 공존하는 그런 곳. 끊임없이 성장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영감을 주고받는 그런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오늘의 사장님처럼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을까?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작가 조인후


인생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평범한 하루라 생각했던 오늘,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의 따뜻함과 열정이 내 안의 무언가를 흔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때론 이렇게 예기치 못한 만남이,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법이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오늘의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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