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짓말쟁이의 세상에서 진실을 믿기로 선택했다

진실 기본값: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놀라운 심리학적 기제

류츠신의 SF 소설 '삼체'에서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두려워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이었다. 그들에게 거짓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었고, 이로 인해 지구인들을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 사회는 거짓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서로를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이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진실-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 TDT)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진실-기본값 이론은 2014년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티모시 레빈(Timothy Levine)에 의해 제안된 이론이다. 레빈 교수는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일치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 이론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경향이 있다는 '진실 기본값'이다. 둘째, 특정 상황이나 증거가 있을 때만 우리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는 '의심의 촉발'이다. 셋째,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을 위해 진화적으로 발달한 '적응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진실-기본값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가 어떻게 의사소통하고 신뢰를 형성하는지 설명하며, 왜 우리가 거짓말을 탐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증언의 신뢰성 평가나 거짓말 탐지 기술의 사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법적, 윤리적 함의를 갖는다.

이러한 진실 기본값의 영향력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온라인 신발 판매 기업 자포스(Zappos)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2003년,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고객 서비스에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통화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고객의 문의나 불만 사항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더 놀라운 것은 365일 동안 무료 반품을 허용한 정책이었다.

자포스는 고객들이 대부분 정직하며, 회사의 관대한 정책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고객 충성도가 크게 증가했고 매출도 급증했다. 2000년 170만 달러였던 연간 매출이 2008년에는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09년에는 아마존이 12억 달러에 자포스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고객을 신뢰하고 그들도 회사를 신뢰할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강력한 고객 관계를 구축하고 비즈니스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진실 기본값이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진실 기본값은 단순히 개인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고객 사이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사회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의심한다면 협력이 불가능해진다. 거짓말 탐지기는 생리적 반응만을 측정하며, 이는 반드시 거짓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을 수 있다. 스트레스나 불안 등 다른 요인들도 같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정보를 해석할 수 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이러한 복잡성을 파악하지 못한다. 더욱이 기본적으로 믿는 태도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더 유리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대부분의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속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협력과 발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진실-기본값 이론은 우리가 거짓말 탐지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와 함께 왜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이 자연스럽고 유익한지를 설명한다. 이는 우리의 약점이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의 강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삼체'의 외계인들과 달리, 우리 인간은 거짓말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서로를 믿는 능력을 통해 복잡한 사회를 구축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특성이 우리를 더욱 유연하고 적응력 있는 존재로 만들어준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단순한 나이브함이 아닌, 복잡한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