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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술잔을 부딪혀야 상대방을 알 수 있나요?

신경화학적 착시: 알코올이 만드는 가짜 유대감

by 조인후

당신은 동료의 취향을 아는가? 그의 커리어 목표는? 그녀가 일에서 느끼는 진짜 어려움은?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면 알 수 있지."


이 답변은 논리적 오류다. 상대를 안다는 것과 술을 마신다는 것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둘을 동일시하는가?


한국 직장 문화는 오랫동안 하나의 공식을 전제해왔다: 친밀감 = 알코올 × 시간.


이 공식은 검증된 적이 없다. 단지 수용되었을 뿐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술 없이 당신은 동료를 알 수 없는가?



뇌과학이 폭로하는 알코올의 정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답은 명쾌하다. 알코올은 전두엽을 억제한다. 전두엽은 판단력, 자기통제, 사회적 행동 조절을 담당한다. 알코올은 이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결과: 당신은 평소보다 더 많이 말하고, 덜 검열하고, 가짜 친밀감을 느낀다.


Nature 게재 연구는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알코올은 측좌핵을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뇌는 보상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방과의 진정한 연결이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의 일시적 교란이다.


당신이 술자리에서 느낀 친밀감은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뇌의 화학적 착시다.


더 냉혹한 사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회식은 다음 날 생산성을 직접 저하시키고, 장기적으로 만성 피로와 인지 기능 감퇴로 이어진다. 직장 내 알코올 소비는 단기적 '친밀감 착각'을 주지만, 건강한 조직 문화를 장기적으로 훼손한다.


인정하자. 술은 상대를 알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알고 있다는 착각을 주는 마취제다.



카페에서의 3시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느 한 기업의 대표, 외부 컨설턴트, 그리고 나.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술은 없었다.


대화는 예상과 달랐다. 지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구조적 취약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할 수 있었다. 다른 컨설턴트는 자신의 방법론을 정밀하게 설명했고, 나는 과거 스타트업 운영에서 겪은 실패를 데이터와 함께 공유했다. 술기운이 만드는 피상적 공감 대신, 각자의 전문성이 온전히 교환되었다.


대화는 3시간 지속되었다. 중요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우리 모두 전날 밤 대화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후 후속 미팅이 잡혔고, 실제 협업이 시작되었다. 술 없이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말이다.


또 다른 만남이 있었다. 어느 기업의 CMO와의 미팅이었다. 생과일 주스를 앞에 두고 우리는 그의 회사 마케팅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그가 말했다.


"맑은 정신으로 이렇게 제 고민을 깊이 말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진짜 고민을 말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그것은 진짜 이야기가 아니었다. 뒷탈이 없는 이야기, 적당히 가공된 이야기, 위계에 순응하는 이야기였다. 알코올이 만든 것은 친밀감이 아니라 검열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더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경청의 조건: 억제되지 않은 전두엽

상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말을 듣는 것이다.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언어 이면의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질문으로 더 깊은 층위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온전한 인지 기능을 요구한다. 알코올은 이를 방해한다. 청각 정보 처리 속도가 저하되고, 단기 기억 형성에 장애가 생기며, 맥락 파악 능력이 감소한다. 공감의 정확도마저 떨어진다. 술을 마시면서 당신은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척하고 있다.


반대로, 맑은 정신의 경청은 정보를 정확히 처리하고, 질문의 적절성을 실시간으로 판단하며, 상대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한다. 진짜 경청에는 억제되지 않은 전두엽이 필요하다. 술은 그것을 파괴한다.



시스템의 전환: 시간의 양에서 질로

"이번 분기 회식은 볼링장에서 진행하겠습니다." "팀 모임을 런치 타임에 가지는 건 어떨까요?"


이것은 단순한 형식 변경이 아니다. 인식론적 전환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 런치 미팅은 업무 시간 내에 이루어지며 참여는 선택적이다. 티타임 미팅은 1시간으로 제한되고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팀 액티비티는 신체 활동에 집중하며 알코올을 배제한다.


핵심 변화는 이것이다. 시간의 질이 양을 대체한다.


한 중견기업 팀장이 말했다. "팀원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왜 술이 필요했을까?" 이 질문이 폭로하는 진실은 명확하다. 술은 듣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듣지 않기 위한 변명이었다.


직장인들 사이에 새로운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 "술자리보다 맑은 정신의 30분 대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것은 감성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사실이다.


결론: 상대방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

그래서 꼭 술을 같이 먹어야 상대방을 알 수 있을까?


아니다.


상대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온전한 인지 기능, 방해받지 않는 집중, 진정한 호기심, 판단 유보 능력, 그리고 적절한 질문이다. 이 중 어느 것도 알코올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코올은 이 모든 것을 방해한다.


우리는 잘못된 공식을 수십년간 반복했다. 이제 공식을 바꿀 때다.


친밀감 ≠ 알코올 × 시간


친밀감 = 경청 × 공감



30분의 집중된 대화가 3시간의 술자리보다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한다.


문제는 술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술 없이 어떻게 친해지지?"가 아니라 "왜 우리는 술 없이 대화할 수 없다고 믿었는가?"


답은 명확하다. 우리는 대화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원했다. 술은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도구였다.


이제 그 시스템을 폐기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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