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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Nov 11. 2024

50년간 맥도날드가 "비밀"을 지켜온 이유

미스터리를 설계하는 브랜드들의 은밀한 전략

1967년, 펜실베이니아주 유니언타운. 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점주는 자신의 매장 매출이 저녁 시간에 크게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근처 제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배가 고프다며 기존 햄버거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해."


점주는 고민 끝에 새로운 햄버거를 구상했다. 두 장의 패티,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를 세 장의 번으로 쌓아올린 독특한 구조의 햄버거였다. 특히 그가 개발한 소스는 독특했다. 기존 소스들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처음에는 본사의 반대가 심했다. 표준화된 메뉴만을 고집하던 본사 입장에서는 이례적인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매장에서 새로운 햄버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첫 해에 이 햄버거의 매출은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특히 소스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비밀이 된 소스


본사는 이 제품의 가능성을 재빨리 알아챘다. 1968년, 피츠버그 지역의 다른 매장들에서도 시범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레시피를 공개하는 대신, 오히려 더 비밀스럽게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소스의 정체에 대한 고객들의 추측과 호기심이 오히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은 이 특별한 소스의 비밀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매장에서는 이런 대화가 일상이 되었다.


"이 소스, 대체 뭐가 들어간 거죠? 마요네즈와 케첩을 섞은 게 아닐까요?"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Thousand Island dressing) 같은데요?"


"아니에요, 전 분명 특별한 향신료가 들어갔다고 봐요."

"제 생각엔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 것 같아요."


1968년 8월, 드디어 이 햄버거는 전국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빅맥'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빅맥 스페셜 소스'의 정확한 레시피는 맥도날드의 가장 잘 지켜지는 비밀 중 하나로 남아있다


빅맥, ⓒ맥도날드



호기심의 심리학


1994년 가을,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한 연구실. 조지 로웬스타인(George Loewenstein) 교수는 수개월간 진행해 온 실험 결과를 분석하며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예상과 달리 작동했다.


"완전한 무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알 것 같은데 완전히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은 더 강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그의 연구팀은 수백 명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난이도의 퀴즈와 수수께끼를 제시했다. 너무 쉬운 문제나 너무 어려운 문제보다, 참가자들이 어렴풋이 답을 짐작할 수 있는 문제들에서 가장 높은 흥미와 집중도를 보였다.


조지 로웬스타인 교수,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cience


로웬스타인은 이를 '정보 격차 이론(Information Gap Theory)'이라 이름 붙였다. 우리의 뇌는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발견할 때 가장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없을 때 느끼는 강한 완성 욕구와 비슷했다.


앞서 살펴본 빅맥의 성공은 이 이론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맥도날드가 소스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식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영리했다. 소스의 존재는 공개하되, 그 정확한 레시피는 비밀에 부쳤다. 사람들은 맛을 보며 재료를 추측할 수 있었지만, 완벽한 답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심리적 원리는 현대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2007년 아이폰 첫 공개 당시,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하나의 완벽한 미스터리 드라마였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잡스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와이드스크린 아이팟, 혁신적인 휴대전화, 그리고 획기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터입니다."


청중이 세 가지 다른 제품을 상상하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잡스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제품입니다."


그 순간의 반전은 전 세계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첫 공개, ⓒNew York Post


오늘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이 전략의 현대적 대가로 꼽힌다. 그의 소셜 미디어는 하나의 미스터리 노블과 같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암시적 힌트들은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끊임없는 추측과 토론을 만들어낸다.



일상에서의 미스터리 설계


호기심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최근 마케팅 분야에서 더욱 체계화되고 있다. 몇 가지 검증된 사례를 통해 그 원칙들을 살펴보자.


1. 정보의 계단식 공개: 애플의 공개 전략:

2021년 아이폰 13 출시 과정은 정보의 계단식 공개가 어떻게 호기심을 극대화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애플은 먼저 9월 이벤트 초대장을 발송하며 'California Streaming'이라는 암시적 문구만 공개했다. 이어서 미디어들의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고, 애플은 전략적으로 일부 정보만을 확인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카메라 기능에 대해서는 더욱 교묘한 전략을 구사했다. 프로 모델의 카메라 성능에 대해 "전문가급 사진과 영상"이라는 모호한 힌트만 던졌다. 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추측을 낳았고, 결과적으로 제품 출시 전부터 엄청난 화제성을 만들어냈다.


2. 긴장감의 예술: 나이키 x 조던 브랜드의 전략:

나이키의 조던 브랜드는 한정판 운동화 출시에서 독특한 패턴을 보여준다. 2022년 'Air Jordan 1 High 85 Georgetown' 출시 때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제품 발매 3개월 전부터 스니커즈 전문 매체를 통해 희미한 실루엣 이미지만 공개했다.


ⓒWarsaw Sneaker Store


이어서 영향력 있는 스니커즈 수집가들에게 제품의 특정 부분만 촬영된 사진을 전략적으로 유출했다. 공식 발표까지 이어진 이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의 관심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최종 발매 때는 준비된 수량이 몇 분 만에 완판되었다.


3. 스토리텔링의 마법: 디즈니의 '점진적 공개' 원칙:

2020년 디즈니가 공개한 "스토리텔링 통한 테마파크 설계 원칙"은 호기심 설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어트랙션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방문객들이 경험하는 모든 요소는 '예고(Foreshadowing) - 발견(Discovery) - 해소(Resolution)'라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갤럭시 엣지' 구역에서는 먼저 멀리서 밀레니엄 팔콘 우주선의 일부만 보이도록 했다. 방문객들이 가까이 가면서 우주선의 전모가 드러나고, 최종적으로는 직접 탑승할 수 있는 어트랙션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단계적 경험 설계는 방문객들의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호기심이 이끄는 새로운 경제


정보화 시대의 역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베일에 가려진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23년 "The Experience Economy: Competing for Customer Time, Attention, and Money" 논문을 통해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의 새로운 단계를 조명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정보의 전략적 제한이 소비자 경험에 미치는 영향이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접근 가능한 시대에, 오히려 신중하게 설계된 정보의 단계적 공개가 소비자의 호기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50년 전, 맥도날드의 특별한 소스는 단순한 조미료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정확한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는 전략은 단순한 비밀 유지가 아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적절한 미스터리'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정보 과잉의 시대이기에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번의 검색으로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시대. 하지만 역설적으로, 손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 직접 경험하고 발견해야 하는 가치들이 더욱 소중해지고 있다. 완벽한 정보 공개가 오히려 소비자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당신의 비즈니스에도 분명 특별한 '소스'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제품의 비밀 레시피일 수도, 서비스의 독특한 노하우일 수도, 당신만의 차별화된 관점일 수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전략적으로 공개하고 관리할 것인가다.


미스터리는 더 이상 단순한 비밀 유지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정교한 설계와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는 비즈니스 예술이 되었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이, 앞으로의 비즈니스 성공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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