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상적 실천의 총합이 곧 브랜딩
"브랜딩은 쉽게 말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상적 실천의 총합입니다"
지난 11월 21일,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생활공작소의 공동창업자이자 브랜드 디렉터 최종우 상무의 브랜딩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그는 화려한 수사 대신 담백한 현실의 언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돈으로는 최소 생산 수량 맞추는 것도 버거웠죠. 하지만 그만큼 모든 선택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오히려 우리의 강점이 됐습니다."
강연의 초반부터 최 상무는 생활용품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명확하게 짚어나갔다.
"시장조사를 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했어요. 소비자들이 정말 불편해하는 지점들이었죠. 특히 두 가지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시장을 분석하면서 두 가지 핵심적인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먼저 성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었습니다. 과연 이 비싼 성분들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 실제로 효과가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두 번째는 가격이었습니다. '좋은 성분'이라는 명목으로 책정된 비현실적으로 높은 가격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한 번 사고 끝나는 제품이 아닌, 매일 써야 하는 생필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성분의 제품을 높은 가격으로 지속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죠."
잠시 청중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이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듯했다.
"여러분도 비싼 생활용품 살 때 이런 생각 해보셨을 거예요. '이렇게 비싼 걸 매번 사도 될까?' '이번 달은 좀 아껴 써야겠다.' 이런 심리적 부담감까지 더해지는 거죠."
이런 문제 인식은 자연스럽게 생활공작소만의 독특한 해결책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화려한 해결책을 찾지 않았어요. 대신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했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분 공개였습니다. 비록 법적 의무는 없었지만, 고객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의 성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추출물 1%' 같은 마케팅용 성분들을 과감하게 빼기로 했습니다. 실제로는 효과가 미미한데 가격만 올리는 이런 불필요한 성분들을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봤죠."
최 상무의 목소리에 확신이 실렸다.
"2014년 창업 당시만 해도 이게 통할까 의구심이 컸어요. 하지만 2022년, 이노션을 통해 브랜드 진단 조사를 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소비자들이 생활용품 브랜드에 가장 바라는 게 뭐였을까요? 정확히 '성분'과 '가격'이었어요. 8년 전 우리의 가설이 맞았던 거죠."
이 말에 강연장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브랜딩이란 결국 화려한 겉포장이 아닌, 소비자의 실제 고민을 해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이 청중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강연장 스크린에 한 장의 사진이 떴다. 심플한 디자인의 냉장고였다. 최 상무는 이 사진을 보여주며 생활공작소의 디자인 철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우리 구성원들 온보딩할 때 꼭 이 냉장고 사진을 보여줘요. 무인양품 냉장고인데요, 보시면 아무것도 없어요. 화려한 디스플레이도 없고, 복잡한 버튼도 없죠. 손잡이도 그냥 길게 하나 달려있을 뿐이에요. 왜일까요?"
잠시 청중들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냉장고의 본질이 뭔가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거기에 더하고 있나요? 디스플레이를 몇 번이나 만지시나요? 인체공학적이라는 손잡이는 정말 필요한가요? 결국 냉장고는 냉장고답게,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하면 되는 겁니다."
이어서 그는 생활공작소 제품들의 패키지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기존 생활용품들의 화려하고 복잡한 패키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보통 생활용품 패키지를 보면 뭐가 많죠. 친환경 마크도 있고, '강력한 세정력', '완벽한 제거' 같은 문구들로 가득하고... 심지어 녹차 추출물이 들어갔다고 녹차 이미지도 넣고. 근데 잠깐 생각해보세요. 주방세제를 사면서 '이거 안 닦이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시는 분 계신가요?"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과감히 다 뺐어요. 제품명, 용량, 회사명, 향 구분. 이 네 가지만 남겼죠. 심지어 저희가 받은 친환경 인증마크도 패키지에서 뺐어요. 왜냐하면 고객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필요한 정보를 다 얻으시거든요. 굳이 제품에 '저 친환경이에요!'라고 계속 외치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봤죠."
제품명에 대한 그의 설명도 흥미로웠다.
"여러분, '테크'하면 세탁세제, '자연퐁'하면 주방세제라는 걸 어떻게 아세요? 수십 년간 대기업들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들여 각인시켰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럴 돈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 느꼈어요. 그래서 그냥 '세탁세제'는 '세탁세제', '주방세제'는 '주방세제'라고 썼어요. 가장 직관적이고 명확하게요."
그는 이어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처가 어르신들이 올라오셨을 때의 일이에요. 아내가 화장실에서 네임펜으로 뭔가를 쓰더라고요. 보니까 비싼 수입 샴푸 용기에 그냥 '샴푸'라고 크게 써놓은 거예요. 원래 그 제품은 브랜드명만 크고 '샴푸'라는 글자는 아래 작게 영어로 써있거든요. 어르신들은 그걸 못 보시는 거죠. 거기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냥 단순명료하게 가면 되겠다고..."
최 상무는 스크린에 여러 SNS 게시물들을 보여주며 생활공작소만의 독특한 소셜미디어 전략을 설명했다.
"보통 생활용품 브랜드들의 SNS를 보면 어떤가요? '때가 쫙~' '물때가 순식간에~' 같은 자극적인 카피와 극적인 비포&애프터 사진들이 대부분이죠. 심지어 '여러분이 하루에 먹는 세제 양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같은 공포마케팅도 있고요."
잠시의 침묵 후 말을 이었다.
"생활공작소는 좀 다르게 가기로 했어요.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특별했죠. 보통은 팔로워 수가 많은 매크로 인플루언서들을 섭외하잖아요? 우리는 오히려 팔로워 천 명도 안 되는 분들의 피드를 하나하나 봤어요. 그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우리 제품의 모습을 찾았죠. 제품 중심의 과시적인 사진 말고요."
강연장 스크린에 한 게시물이 떴다. 아늑한 주방 한켠에 생활공작소 주방세제가 놓여있는 사진이었다.
"이런 거예요. 제품이 주인공이 아니라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는 거죠. 재미있는 건, 이런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의 게시물이 오히려 더 높은 인게이지먼트를 보였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강연의 분위기가 한층 진지해졌다. 2016년 치약 성분 논란 사건을 이야기할 때였다.
"저희 치약에서 CMIT/MIT 성분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났어요. 사실 저희는 그 성분을 넣지 않았는데, 공장에서 다른 원료가 혼입된 거였죠. 하지만 그건 변명이 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선택한 이유를 알았거든요. 성분에 대한 신뢰였죠. 그래서 즉시 전량 회수하고 무조건 환불을 진행했어요. 보통은 반품 절차를 거치는데, 그 과정조차 고객에게 허들이 될 수 있다고 봤거든요. 더 놀라운 건 그 이후였어요."
스크린에 1년 후의 SNS 게시물이 떴다.
"치약을 다시 출시하면서 이전의 실수를 다시 언급했어요. 많은 분들이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나?' 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때의 게시물을 지금도 지우지 말라고 해요.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거니까요. 브랜드는 결국 신뢰거든요."
강연 후반부, 최 상무는 브랜딩의 본질을 설명하며 인상적인 비유를 들었다.
"제가 갑자기 여러분 앞에서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저를 믿으시겠어요?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친환경적인 브랜드입니다', '고객을 생각하는 브랜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최 상무는 잠시 청중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믿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진짜 그런 사람인지 판단하게 되죠. 브랜드도 똑같아요. SNS에서만 멋있는 말 하고, 광고에서만 좋은 소리 하면 뭐해요. 고객이 실제로 경험하는 모든 접점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강연 막바지에 이르러 최 상무는 실제 창업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조언을 이어갔다.
"자본이 부족하다고 브랜딩을 미룰 필요는 없어요. 시장에 나오는 순간이 바로 경기의 시작입니다. 못 뛰면 걷기라도 해야 해요. 댓글 하나를 달더라도 정성껏 다는 거죠. CS 응대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게 다 브랜딩입니다."
그는 특히 초기 스타트업들을 위한 실용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것들을 꼭 체크하세요. 첫째, 회전이 빨라야 해요. 우리처럼 자본금이 적으면 재고가 금방 현금으로 바뀌어야 하거든요. 둘째, 리스크가 적은 제품이어야 해요. 우리가 처음에 제습제를 선택한 것도 공정이 단순하고 품질 리스크가 적었기 때문이에요. 셋째, 단일 제품으로도 어색하지 않아야 해요. 샴푸를 내면서 트리트먼트는 나중에 내겠다고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3시간에 걸친 강연의 마지막, 최 상무는 의미심장한 말로 마무리했다.
"결국 브랜딩의 본질은 뭘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생각과 모습과 태도가 일치하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 제품에 담기고, 그 제품이 고객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일관된 태도로 드러나야 해요. 매출이 안 나는 브랜딩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매출도 지속될 수 없죠."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의 강연은 브랜딩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주제를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뺄 것인가'에 집중한 생활공작소의 철학은, 많은 참석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이날의 강연은 브랜딩이 결코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작은 기업도 본질에 충실하면서 차근차근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종우 상무가 보여준 현실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브랜딩 철학은, 앞으로 많은 스타트업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