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주의 돈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계의 베테랑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수백 개 매장을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해 온 대형 브랜드의 임원으로, 여러 기업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기획부터 론칭, 육성까지 도맡아온 전문가였다.
당연히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한 강한 신념과 자부심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그의 시각은 냉소적이었다. 오히려 현재 업계 상황을 통렬히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그가 가장 문제로 지적한 것은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단기 성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점포 수 늘리기에만 목을 매고, 정작 가맹점주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사후 관리는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제2의 인생을 꿈꾸며 큰 기대를 품고 뛰어든 가맹점주들이 결국 피해를 보게 된다"는 그의 말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본사의 안일한 관리, 아니 방치 때문에 누군가의 가족과 미래가 통째로 위험에 처한다는 고발이었다.
본사 편에서 수십 년간 일해온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모습이 의외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업계의 추악한 민낯을 인정하는 용기가 오히려 그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여전히 귀에 남는다.
"남의 돈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인생이 걸린 투자일 수 있으니까."
그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적 견해가 아님은 정부 기관들이 뒤늦게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4년 "필수품목 개선대책"을 발표한 것 자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한 것이다. 일부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을 과도하게 지정하고 단가를 일방적으로 인상하는 문제가 "가맹점주의 경영 환경을 악화하는 최대 현안 중 하나"라고 공정위가 공식 시인했다.
더 심각한 것은 구조적 착취다. 가맹점은 지정된 거래상대방에 지정된 품목의 구매가 강제되기 때문에 가맹본부가 불합리한 거래조건을 들이밀어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약자 지위에 있다. 이는 그가 지적한 "본사의 안일한 관리로 가맹업주가 피해를 입는" 상황의 실체다.
2023년 국회에서 통과된 '가맹점주단체 등록제 및 단체교섭권 부여'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가맹점주들에게 단체교섭권이라는 최후의 무기를 쥐여줘야 할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짓밟혀 왔다는 뜻이다.
실제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등 수도권 지자체들이 프랜차이즈 가맹 계약 피해에 대한 집중 신고를 받을 정도로 피해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위탁운영이나 용역 도급 계약을 악용한 사기성 계약, 일방적인 위약금 강탈 등이 주요 수법이었다.
이런 현상은 프랜차이즈의 본고장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2024년 7월 프랜차이즈 관련 긴급 정책성명을 발표하며 "가맹점주들의 불만이 제대로 접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3년 정보 요청에 대해 무려 2,000건 이상의 의견이 쏟아졌다는 것은 가맹점주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미국 가맹점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계속 증가하는 결제 처리비와 기술비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에 신음하고 있으며, FTC는 "프랜차이즈 본부들이 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수수료를 마음대로 부과하고 징수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단죄했다. 이는 그가 우려한 "단기적 관점에서 점포확장에만 혈안이 되고 후속관리는 뒷전"인 행태의 구체적 증거다.
국내 프랜차이즈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도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한 대형 분식 프랜차이즈가 해외 진출을 위해 현지 업체와 위탁 운영 계약을 맺었다가 소송전으로 번진 사례가 있다. 매장을 오픈한 뒤 본사가 즉시 매장 인수를 요구했고, 현지 파트너는 이를 '매장 뺏기'라고 주장했다. 본사 측은 현지 업체의 계약 위반이 원인이라고 맞섰다.
미국의 프랜차이즈 전문 로펌들조차 "프랜차이즈 본부가 기회를 과대포장하는 것은 거의 관행"이라며 "보장된 수익, 과장된 영역별 잠재력, 허위 지원 주장" 등을 대표적 사기 수법으로 꼽고 있다. 이는 전 세계 프랜차이즈 업계가 같은 병리를 앓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사례를 되짚어보니, 그 임원의 말이 왜 그토록 무거웠는지 비로소 이해된다. 그는 업계를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가맹점주를 짓밟는 구조적 착취를 폭로한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칼을 빼들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까지 나선 상황은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증명한다. 몇몇 기업의 일탈이 아니다. 프랜차이즈라는 사업 모델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이 전 세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돈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이제야 제대로 들린다. 이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가맹점주들의 신뢰를 잃는 순간, 프랜차이즈 생태계 전체가 무너진다. 안타깝지만 그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