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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Jan 30. 2019

그래도, 당분간은 두통과 작별하고 싶다.



두통은 나의 오랜 친구였다. 별다른 이유 없이도 찾아오는 두통은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된 지 오래다.

두통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세상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이였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를 엄청 치열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거의 하루걸러 찾아오는 통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필통에 매일 두통약 한두 알씩 넣어 다녔을 정도였으니.

당시 지독하게 앓았던 두통은 수능이 끝나는 날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한 번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스트레스가 정말 몸에 영향을 엄청나게 주긴 하나 보다, 신기함에 "역시 고3은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구만"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도 종종 아무런 이유 없이 두통을 앓을 때도 있긴 했지만, 유난히 힘든 시기에는 스트레스를 자각하기도 전에 두통이 먼저 찾아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졸업 논문을 쓰던 한 학기, 죽어도 하기 싫었던 토익 공부를 할 때나, 취업 준비를 할 때 등등.

그런데 요새는 딱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도 잦은 두통을 앓곤 한다. 매일 출근하기 싫어서 꾸역꾸역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의미 없는 사진. 출근길에 달이 예뻤다.


지난 토요일, 나는 엄마를 대신해 청소기를 돌리며 머릿속으로 요새 진행 중인 원고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신간을 진행하면서 실수가 잦았던 터라 '이번 책은 실수를 줄이자'고 다짐하던 참이었다. 차근차근 전날의 업무를 되짚어보다가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내가 원고 검토서를 보냈던가?'

매일 퇴근하기 전에 업무일지와 함께 그날그날 보낼 파일을 첨부하여 전송하곤 하는데, 전날 메일에 첨부했어야 하는 투고 원고 검토서를 보내지 않은 게 떠오른 거다. 나는 부랴부랴 청소기를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보낸 메일함에 들어가 파일 목록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토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 나 진짜. 정신머리 얻다 빼놓고 다니니. 어떡하지, 차라리 평일이었으면 다음 날 아침이라도 보냈을 텐데 하필 또 주말이야...'

잠시 자책에 빠져있던 나는 다시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검토서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실수를 한 게 처음도 아니고, 그걸로 혼이 나거나 훈계를 들은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초조해졌다.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혼나진 않을까, 왜 자꾸 실수를 하냐고 화를 내시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온종일 불안에 떨었다. 결국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나니 일요일에는 귀신같이 두통이 찾아왔다. 채 잠에서 깨기도 전에 '머리 아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지독한 두통이었다. 소박하게 세워 놓은 그날의 계획은 머리가 너무 아파 전부 무산되고, 고작 방 침대와 거실의 소파를 좀비처럼 겨우 오가며 하루를 지냈다.


초조함 끝에 맞이한 월요일, 사무실에 출근함과 동시에 검토서를 발송했다. 물론 메일에 적을 멘트를 고민하느라 5분 정도의 시간을 지체하긴 했다. 너무 구구절절하지 않게, 하지만 실수를 사과하는 태도가 보이도록... 썼다 지우길 반복한 서너 줄의 문장과 함께 메일을 발송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지지리 궁상이지만, 그땐 나름대로 심각했던 거다.

오전에 일이 있으셨는지 점심 즈음이 되어 출근하신 실장님은 발발 떨며(하지만 겉으론 멀쩡해 보였으리라 믿는다) 검토서를 보냈다고 말하는 내게 미소와 함께 "응, 봤어." 하고 답하셨다. 주말 내내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러더니 "너무 무거워서 같이 보내기 힘들었어?" 하고 농담까지 하시는 게 아닌가.

그제야 며칠을 붙잡고 있던 긴장이 풀렸다. 나도 참 바보 같았구나,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을 대체 왜 그리 신경 쓰며 초조해했는지. 나 자신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진행 중인 원고와 관련하여 실장님과 마주 앉아 짧은 회의를 마쳤다. 회의의 끝머리에 큼직한 사항을 정리하던 실장님이 문득 말씀하셨다.

"M은 책이 한 권 마무리되면 그런 걸 써 봐.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어떤 점을 잘했는지, 반대로 아쉬웠던 점은 뭔지. 나를 칭찬하는 거야. 부끄러워도 그냥 막 써 봐. 짧아도 괜찮으니까 '아, 나 이번에는 이거 좀 잘했어.' 하고 칭찬할 것들을 정리하는 거야."

내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했길래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는 걸까. 궁금했지만 우선 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실장님이 덧붙인 한 마디가 그 의문을 깨뜨렸다. '칭찬과 고칠 점을 써 보라고 하는 이유'와, '요즘 내가 왜 그리 잦은 두통을 앓았는지'에 대한 의문 말이다.


"M한테는 그런 게 필요할 것 같아. 너한테 너무 가혹하지 않아도 돼."


순간 그 한 마디에 팽팽하게 조여 잡고 있던 뭔가가 탁 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검토서 때문에 하신 말씀은 아니었겠지만, 그토록 긴장했던 주말과 비슷한 모습이 요 며칠 눈에 띄었으니 이야기하신 거겠지. '너에겐 자신을 칭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그제야 느꼈다. 참 별것도 아닌 일로 나한테 너무 가혹하게 굴고 있었구나. 언젠가 업무 중 큰 실수를 저지를 뻔한 후로 나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무던한 성격이라고 여겨서 자각하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항상 '느슨하게 살자'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살기가 어찌나 힘든지...

근래 왜 이렇게 자주 머리가 아픈가 했더니 그래서였나 보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나를 조이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해 끝없이 자책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러니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하던가.


물론 이렇게 깨달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한동안 '캬, 역시 난 천재야~ 왜 이렇게 완벽하니?' 하며 지내더라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스트레스를 왕창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거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아오 이 멍충이 진짜, 얻다 써먹어 이걸!' 하면서 말이다.

모르겠다. 진이 빠지니 이런 게 다 뭐가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 그냥 또 깨닫고, 실수하고, 자책하다가 다시 느슨해지고, 깨달았다가 또 실수하고... 어차피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 아닌가. 유난 떨면서 자괴감에 동굴을 파더라도 다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다. 실수를 반복하면서, 자책감과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당분간은 두통과 작별하고 싶다.

지긋지긋한 평생 친구도 때론 각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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