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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Sep 22. 2019

손에 쥔 것들을 느슨하게 잡는 법

나야말로 알고 싶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눈앞에 닥친 일거리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어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해치워야 속이 시원했다. 번잡하게 흩어진 것들을 두고도 손 놓고 있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몫의 짐들을 눈앞에서 얼른 치워야 한다는 강박은 대학 시절에도 여전했다. 날 때부터 귀찮음이 많고 게으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제가 생기면 하루 이틀 내로 곧장 해치우고는 마감 전날에 난리가 난 동기들 카톡방에 "얘들아, 그러게 과제는 미리미리 해야지~^^" 하며 얄밉게 약을 올리곤 했다.


이런 별난 성격은 요즘도 변함이 없다. 특히 일에 쫓길 때면 마음이 불안해 울컥 눈물이 솟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가뜩이나 오늘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그 일 중 제대로 끝낸 것이 아직 하나도 없는데, 속도 모르고 새로운 일이 얹히면 어김없이 마음이 울렁거리며 불안이 찾아왔다. 이런 내 성격을 알고 있는 실장님은 "천천히 해도 돼. 괜찮아. 불안해하지 마."라며 말씀하곤 했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다.

오죽하면 여름 휴가 5일 동안 내가 맡았던 일, 아직 끝내지 못하고 온 일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하며 핸드폰을 붙잡고 살았을 정도였다. 결국 휴가 이틀을 남기고 출근하는 꿈까지 꾸고 말았다. 차라리 휴가가 끝나고 빨리 출근해서 내가 맡은 일들을 끝내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를 들은 직장 사람들은 "M씨에게 '워커홀릭'의 기질이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사실 그 말은 틀렸다. 나는 그저 손에 쥔 것들을 느슨하게 잡는 법을 모를 뿐이다.



스물일곱 해를 살았어도 나는 여전히 손에 쥔 것들을 느슨하게 잡는 법을 알지 못한다. 급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어도 일단 내 손에 떨어지면 잠시 놓을 줄을 몰라 힘주어 쥐고 있다. 먼저 쥐고 있던 것들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통에 손이 부들부들 떨려도, 다음 날이면 그 노력이 근육통으로 바뀌어 끙끙 앓게 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놓을 줄 모른다.


예전에는 성격이 그냥 '성실해서'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어쩌면 남들에게 내세우던 나의 장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것은 그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내가 쥔 것들을 조금 느슨하게 잡을 여유. 바쁘지 않은 것들을 잠시 뒤로 미루어 놓아도 마음 불편해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


살다 보니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약점이기도 했다. 이런 불안은 선천적인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버릴 수 있는 걸까. 몇 해나 더 살아야 내가 가진 것들을 느슨하게 쥐고도 가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걸까.

정답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힌트라도 조금 흘려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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