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살쪘단 말을 말던가.
추석이라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봄에 그랬던 것처럼, 올 가을에도 고향을 찾는다. 명절에만 가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 가는 길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던 개인적인 이유를 써볼까 한다. 나는 여전히 듣기 싫은 말은 딱 두 가지 있는데 항상 쌍으로 다니며 틈만 나면 나를 괴롭히는 양아치같은 문장들이다.
더 먹어! 서울서는 이리 좋은 거 먹지도 못하잖아.
살은 왜 자꾸 쪄! 먹었으면 이제 운동을 해야지!
먹으라고 했으면 살찐다고 구박을 하지 말던가, 살이 찐 거 같으면 먹으라고 하질 말던가.
먹을 땐 먹고 살은 찌지 말라는 건 나보고 "마법"을 쓰라는 소린가. 말馬도 추석 즈음이면 살이 오른다. 하루 종일 먹는 거라곤 풀밖에 없는 주제에 뛰는 건 엄청나게 좋아하는 말이 그 지경인데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하는 거라곤 숨쉬기와 타자 빨리 치기 밖에 없는 내가 살이 안 찐다면 불치병에 걸린 거겠지.
건강을 생각해야지! 그러다 병나!
하지만 살이 찌는 것은 내가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이 먹는대도 살이 안 찐다면 그야말로 병이 있거나 뱃속에 기생충이 있겠지. 물론 비만은 때때로 병의 원인이 되는 건 맞다. 나는 과체중 상태로 러닝머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족저근막염'에 걸린 적이 있으니까. 확실히 과체중은 좋을 게 없다. 하지만 족저근막염은 과체중이라서 생겼다기보다 내 근육량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운동을 했기 때문이 맞다. 내가 날씬했더라도 그런식으로(=무식하게) 계속 러닝머신을 달렸다면 언제고 족저근막염을 생겼을 테니까.(운동은 많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게'하자)
아무튼, 나는 지금 10년간 꾸준히 이런 얘길 들어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60킬로였던 몸이 80킬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딱 보기 좋았던 아들이 셔츠 단추를 팽팽하게 당기는 뱃살의 소유자가 되었으니 부모 마음이 좋진 않았겠지만, 살찐 사람한테 살쪘다고 말하는 게 다이어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명절이면 잠깐이라도 운동을 시키려는 마음에 아들을 산으로 끌고 올라간들, 쉬려고 내려와 안 좋은 추억만 쌓이는 셈이지. 평소에 하지 않는 강도 높은 운동을 며칠하고 나면 요요가 찾아온다. 말 안 듣는 애들 며칠 해병대 체험을 시킨다고 애들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좀 적게 먹고, 운동도 조금 덜 할게요.
나는 원해서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직업을 택했으니 예전처럼 먹을 수는 없다. 당연히 예전만큼 운동에 투자할 수도 없지만, 대신 먹는 양을 줄이고 조금씩이지만 매일 운동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게 아마도 최고이겠지만, 그보단 적게 먹고, 적게 운동을 하는것이 내겐 최선이다. 오랜만에 내려온 자식의 겉모습이 조금 맘에 들지 않더라도 명절에 건강을 이유를 폭식을 권장하거나, 같은 이유로 살 빼라는 강요를 할 필요는 없다. 명절이 가족들끼리 서로를 보듬아주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