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 Heath의 통쾌한 신간 Upstream
2021년의 첫 문턱을 넘는 시간은 기묘하리만큼 고요했다. 북미에서 손꼽히는 가장 긴 락다운이라는 컴컴한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토론토였다. 새해를 축하하는 모든 폭죽놀이와 행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에 새해 첫 0시는 서운하리만큼 평범하고 시시했다.
2021년 말, 뉴스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는 새로이 발견된 코로나의 변이 ‘오미크론'과 이것이 얼마나 높은 감염성을 보이는 지에 대한 소식들이 열일 강조해서 보도되었다. 쉽게 넘겨볼 일은 아니긴 했다. 2020년 12월 31일, 온타리오(토론토가 속한 주)에서는 총 3천328명의 확진자가 나온 반면, 1년후 2021년 12월 31일 이 숫자는 무려 1만6천713명으로 확진자수가 어마어마하게 뛰어버렸기 때문이다. 더 큰 확진자수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오미크론의 기세가 등등했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새해 폭죽놀이를 제재하진 않았다. 오랜 락다운으로 지친 사람들의 원성도 있었기에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2021년의 마지막 끝자락과 2022년의 첫 시작, 컴컴하고 시리던 겨울밤, 검은 캔버스위는 금새 화려한 폭죽과 펑펑 터지는 굉음으로 촘촘히 채워졌다. 길거리에서도 동네 공원에서도 폭죽은 연속해서 터져나왔다. 마치 잃어버린 작년을 보상하려는 듯, 폭죽잔치는 유독 참 길게, 한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1년중 내가 거실 소파에 잠자리를 펴는 며칠이 있다. 땡스기빙, 캐나다데이, 그리고 새해 첫날과 같이 폭죽을 터뜨리는 날이다. 오늘 기준, 현재 만 11살, 그리고 9살된 나의 강아지들은 매년 듣는 이 폭죽소리에 지치지도 않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열심히 짖어대기에 그들을 꽉 안고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미리부터 거실에 자리를 펴는 편이 낫다. 2021년의 첫날은 침대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지만 2022년의 첫날은 그 이전의 다른 해들과 마찬가지로양 옆구리에 강아지 한마리씩을 끼운 채 뜨끈뜨끈하게 맞이했다.
어영부영 잠이 들어서 일어나보니 7시. 발 아래에서 강아지들은 아직 자고 있고, 아직 밖이 컴컴해 움직이기 싫어 멍청하게 천장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어제 많이 추웠는데 새벽 1시까지 허허벌판에서 폭죽을 터뜨린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했을까. 내가 만약 그 사이에 있었다면 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근처에 있는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전도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전도서의 첫 두장은 특히나 참 힘이 빠지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라고 일컬어지는 솔로몬은 당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쓴 이 책에서 그는 반복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한다. 그는 오랫동안 진정한 기쁨을 찾기 위해 많은 방법들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한 예로 자신의 큰 왕실과 정원에 으뜸가는 물건들을 들여놓아도 보았지만 그것들이 주는 기쁨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가 큰 수고를 들여 일궈놓은 소중한 재산이 후대에 엉뚱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다고 그는 탄식한다. 이러한 한탄 아닌 한탄이 지속되다 2장 후반부에 되어서야 드디어 그는 그가 찾은 참된 기쁨, 쉬이 사그러들지 않는 기쁨에 대해 소개한다:
“So I decided there is nothing better than to enjoy food and drink
and to find satisfaction in work. Then I realized that these pleasures
are from the hand of God. (Ecc. 2:24 NLT)”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나
나는 이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전도서 2:24, 현대어성경)”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왕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권고한다. 또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의 밖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안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이 귀한 즐거움이라고도 조언한다.
솔로몬의 이 조언은 쾌락주의나 허무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다. ‘기쁨'이란 특정한 상황에서나 비로소 발현되는 성질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뜻한다. 그렇기에 기쁨은 성취하는 것이 아닌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릴적 소풍과 운동회에서 했던 보물찾기처럼 내 작은 일상속과 마음속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듬어주면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내 발 지척에 누워 뒤척이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았다. 11살과 9살, 개의 나이로 치면 노년 아무리 못해도 중년인데 나한테는 언제까지고 강아지인 아이들. 나이가 제법 들었는데도 청력은 변함없이 짱짱해서 폭죽이 터지는 날이면 부지런히 짖어대니 사실은 기쁜 일이다. 주인을 지키려고 저렇게 짖는 거라니 (아니더라도 그냥 그렇다고 믿으련다) 그것도 기특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귀가 흐려지고 더이상 짖지 않는 날이 오겠지. 그럼 그때는 지나버린 시간 만큼 같이한 기나긴 날들이 참 많이 고마울 거다.
진부하지만 일기장 백지위에 2022년의 새해 다짐들을 적어내려갔다. 지면의 가장 위에 잘 보이도록 꾹꾹 힘주어 적은 것은 “내 스스로에게 친절하기". 코로나로 인해 내 생활에 생긴 크고 작은 변화들을 목격하면서 배운게 있다면 느리게 가는 것이 정말 느리게 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모든 리모콘의 플레이 버튼 옆에 항상 붙어있는 일시정지 버튼처럼 때로는 내더 빨리, 더 잘, 더 확실하고 안전하게 내 갈 길을 가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는 확실히 필요하다. 주먹구구식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다 보면 시간은 훌쩍 흘러 버렸는데 목적지에 가까이 가기는 커녕,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여러권 펴낸 굵직한 작가 댄 히스(Dan Heath)는 최근 출판한 책 ‘업스트림(Upstream)’을 통해 강의 하류(Downstream)가 아닌 상류(Upstream)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간, 에너지 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이며 근본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설파한다. 그가 설명하는 이 시스템에서 물줄기의 하류에 해당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 매우 흔하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 따라오는 거의 모든 해결 방법이 그러하다. 이러한 방법은 성공/실패여부의 척도를 가늠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점수를 매기기에 매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물줄기의 상류에서 이뤄지는 업스트림의 일처리 방식은 문제발생 원인과 루트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크고 복잡한 덩어리를 작고 간단하게 세분화시키고 이를 하나씩 해결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방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다운스트림의 방법보다 측정하기도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책의 서두에서 히스는 간단한 한 예시를 들어 이 두가지 개념을 쉽게 정리한다:
당신은 친구와 강가의 하류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다. 비명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강에 아이가 떠내려오고 있다. 당신과 친구는 망설이지 않고 강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낸다. 그런데 또 다른 아이가 떠내려온다. 또 구조했지만 강에는 점점 두 사람이 구하기 벅찰 정도로 더 많은 아이가 물에서 허우적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로 당신과 친구가 지쳐가고 있는 그 순간, 당신 친구가 별안간 물 밖으로 나가버린다. 마치 이 상황에서 도망가는 것만 같아서 당신은 친구에게 묻는다 ‘구조하다 말고 어디 가?’ 그 때 친구는 대답 한다.
‘상류로(upstream) 가서 누가 이렇게 아이들을 물속에 던져넣는지 찾아야지. 그리고 잡아야지!’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떠내려오는 아이들이 내 앞에 당도한 문제라면 그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라 할 수 있다. 강물에 빠져 떠내려오는 아이들을 어떻게하면 빨리, 한꺼번에 더 많이 구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구명조끼, 구명정 등을 준비해놓는 것은 분명 효과있는 문제해결 방법일 수 있겠으나 결국 다운스트림에 해당하는 문제해결 방법이라는 한계가 있다. 다운스트림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할 경우, 벌어진 문제의 횟수, 들인 시간과 재정, 그리고 성공률과 같은 눈에 보이는 수치들을 쉽게 산출해내는데 매우 용이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만큼 해냈다'라고 보여주기도 좋다. 그러나 결국 정말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하는 것은 강의 상류로 올라가 아이들을 강에 던지는 사람을 처치하는 업스트림 방법이다. 다운스트림보다 느리고 덜직관적이라 마치 문제를 뺑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비교할 수 없이 현명하고 효율적인 처사다.
거칠게 말하자면, 내가 하는 모든 일, 그리고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들 역시 업스트림 - 다운스트림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작년, 나는 ‘몸에 에너지가 없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제법 자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 자체가 작아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고 나이듦의 모습이다. 마치 지칠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 같았던 지금보다 더 어리던 시절에는 워낙에 에너지가 차고 넘쳤으니 강의 하류에서 끊임없이 아이들을 구해야 했더래도 괜찮았을 것 같기도 한데, 시간은 빨라지고 에너지는 적어진 지금은 강물에 뛰어들기 전, 멈춰서서 한번쯤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급하게 뛰어나가기 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들중에 가장 현명한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 체력이 조금 빨리 떨어지게 된 것이 나를 멈춰주게 해 되려 고맙고 좋은 일인 것 같다.
‘내 자신에게 친절하자'라는 문구 아래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다운스트림 해결 방법, 업스트림 해결 방법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그중의 일부만 옮겨보자면:
문제: 이른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것
다운스트림: 알람맞추기
업스트림1: 숙면을 취하고 원하는 시간에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자는 시간이 일정하게 확보한다. 잠옷과 잠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해놓는다
업스트림2: 자는 시간이 일정하게 하기 위해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은 정해진 시간에 끝낸다. 핸드폰도 비행모드로 바꾼다.
업스트림3: 일의 피치가 막 올랐을 때 시간 제한으로 중간에 애매하거나 찜찜하게 끝내는 일이 없도록 창의력과 깊은 사고를 요하는 일은 오전에 배치한다. 오후에는 비교적 단순하며 끝이 정해져있는 일들을 한다.
문제: 식곤증과 소화불량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
다운스트림: 졸음을 깨기 위해 카페인 함량이 높은 커피나 홍차 섭취
업스트림1: 탄수화물이 주가 되는 식사나 간식들이 먹기나 준비하기에 용이하지만 식곤증이 제일 심하다.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한다.
업스트림2: 냉장고와 팬트리를 정리하고 탄수화물이 주가 되는 식품군들은 구별해 표시해둔다. 장보기 목록을 작성한다.
업스트림3: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으로 된 식품군들은 조리하는데 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리는 경우가 많으니 1주일에 한두번, 시간을 정해 미리 조리해서 준비해둔다. 더불어 1주일식단을 같이 짜면 용이할 듯. 식단을 짤 때 소화가 잘되는 음식들 위주로 꾸민다.
문제: 강아지 산책을 나갈 때 시간이 아쉽다.
다운스트림: 음악감상
업스트림1: 오디오북, 스포티파이 듣기
업스트림2: 산책을 나갈 때마다 뭘 들어야 할지 골라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미리 플레이 리스트를 정한다. 플레이 리스트는 1주일 단위로 정할 것. 데이터 문제로 오디오파일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미리 다운로드 해둔다.
업스트림3: 오디오북으로 하는 독서는 눈으로 하는 독서보다 휘발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아무런 주제나 듣지 말고 그때에 읽고있는 다른 책들과 통하는 주제의 것을 선정한다.
히스는 책에서 사람들의 업스트림 방식의 문제 해결을 막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 불감증과 터널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발전될 기회 자체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또한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극히 한 부분만 바라보는 터널링은 우리가 목표 달성을 위해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꾸준하게 진화하며 전략적이고 영민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와 사고력, 근성을 갖는데 치명적이다.
곰곰히 따져보니 똑똑한 업스트리머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가 필수적일 것 같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내가 지금 알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가장 베스트도 아닐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차분히 내가 처한 상황과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이 디폴트값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내가 더 나은 사람이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어/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면이 강한데, 이같은 행동은 반복될 경우 결국 내가 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제법 많이 아프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것을 스스로에게 새해의 숙제로 내주었다. 필요하다면 어느때고 망설임없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보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명한 업스트림 방법을 찾고 추구하는 것이 내 스스로를 아껴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좋은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
2022년, 2가 세개나 들어있어 왠지 귀엽고 신비스럽게까지 보인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 그 좋은 일들을 놓치지 않고 잘 담아내기 위해서, 나는 부지런히 강의 상류로 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