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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 Sep 14. 2022

엄마는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룸메이트

'엄마-딸'보다 '사람-사람'으로 바라보기. 나는 나를 지키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에 속풀이하듯 써내려갔던 글이 내 브런치에서 가장 인기글이 되었다.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도 종종 사람들이 와서 찾아 읽는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와 딸과의 관계에서 어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흔하고 많구나.


https://brunch.co.kr/@anthseid/8


저 글을 쓴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한국으로 돌아가서 보내실 계획을 하고 계신 엄마는, 답사 및 시행착오차 올해 초 한국에 반년 살기 계획으로 나가셨다. 나와는 큰 상의없이 덜커덕 비행기티켓을 사버리신 엄마때문에 나는 정신없이 내가 살던 콘도(한국으로 치면 아파트)에 세를 놓고 엄마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엄마는 한국으로 신나게 나가셨다.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시다가 일정에 맞춰 지난 6월 캐나다로 돌아오셨고 현재 나는 여전히 엄마와 한지붕 아래에서 같이 산다. 


저 글을 썼던 2021년 11월과 지금은 어떻게 다르냐고, 나아진것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 여전히 엄마는 같이 살기 절대 쉽지 않은 룸메이트이라고 확실하게 답하겠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지난 1년간 아프고 다친 내 마음을 많이 헤집고 보듬고 살펴보며 터득한 노하우정도랄까. 사실 노하우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다. 그저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에서 내가 딸이니 엄마에게 맞춰드리고 효심을 다해야 한다는 감정적 치장을 거둬내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름표를 붙인 게 다인데 이 단순한 행동에서 온 효과가 굉장하기 때문이다.










딸은 영원한 엄마 아래의 존재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책,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이란 책을 앉은 자리에서 정신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턱끝까지 물이 차오르는 것 같은 불행감과 서러움, 아픔에 어떻게라도 살려고 아둥바둥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일본 정신과 의사로써 오랜 시간동안 엄마의 딸의 관계를 살펴보고 진찰하고 상담해 온 저자가 쓴 이 짧은 책이 내게는 생명을 살리는 동아줄처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엄마와 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근본원인을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라고 축약한다. 엄마는 자신의 딸이 한 독립된 감정과 사고를 가지는 개인이며 그렇기에 그 개인이 가지는 개성을 존중해주어야 하는데 이는 딸을 자신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며 거시적으로는 동등한 위치선상에 서있는 주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성이 다른 아들에게는 이러한 독립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딸에게는 쉽지 않다. 같은 성을 가진 딸은 내 아래에 있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믿는, 그래서 평생 절대적으로 내 아래에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식인 딸은 성인이 됨에 따라 엄마가 자신을 성인대 성인으로 수평으로 바라봐주길 바라지만 엄마는 딸이 절대적으로 자신의 아래에 머물러 있는 수직적인 관계를 강요한다. 이러한 차이에서 갈등은 일어난다는 것.


그렇기에 남자와 여자를 달리 생각하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딸과 아들을 대하는 자세와 관점에서 차별을 하는 일이 빈번하며 특히 노인이 될 수록 강해지는 고집은 문제를 더 심화시킬 뿐인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세살 아래 남동생과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성향이며 성격이 매우 달랐다. 고집이 쎄고 잘 삐치고 감정적으로 예민한 면이 어렸을 때부터 두드려졌던 동생과 달리 나는 어렸을 때 무난하게 엄마 아빠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게 주어진 '든든한 맏이'라는 이름표는 부모님께 좋은 딸이 된다는 스스로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종종 부모님이 내게 감정적인 폭력을 손쉽게 휘두를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때 동생은 원하는 옷을 입지 않으면 땡깡을 부렸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들고갈 책가방도 정확하게 엄마한테 노란색과 파란색이 들어간 가방을 사달라고 요구를 했단다. 그러나 내게는 엄마는 그런 물음조차 묻지 않았다. 엄마가 입혀준 대로 입었고 주는 대로 들었다. 물론 입고싶다고 요구했던 옷들은 있었지만 확실히 빈도수는 낮았다.


중학교 입학 후 떡볶이 코트가 유행했다. 난 엄마한테 저 코트를 사달라고 했다. 몇번이나 정확하게 얘기했다. 엄마, 나 저런 종류의 코트가 너무 입고싶어요.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이제까지는 엄마가 사주는대로 입다가 갑자기 왜 이제와서 네가 입고 싶다는 걸 요구하냐고. 엄마, 사실 난 엄마가 초등학교때 내게 입혔던 쫄바지가 (엄마눈엔 이뻐 보였지만) 나는 그냥 그랬어요, 근데 저 코트는 정말 입고싶어요. 엄마는 더더욱 힘을 주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주는대로 입었으면서 왜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러면서 엄마는 아빠가 선물로 받아온 검은색 오버사이즈 잠바를 내게 줬다. 코트보다 이게 훨씬 더 따뜻할꺼라고. 그 잠바는 엄마 말처럼 따뜻하기는 했지만 교실 내 난로가 고장났던 날, 다른 친구들이 빌려입기 조차 꺼려했을 만큼 못생겼었다. 엄마가 매일마다 싸준 도시락은 맛있었지만 내가 요구한 마음에 대해 돌아온 엄마의 반응은 그 잠바처럼 모양새가 영 거칠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는 내게만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문득 늘어난 살림살이를 정리해야겠다, 싶으면 내 옷장을 연다. 꼭 내가 없을 때. 그러면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별로인 것 같은 옷과 신발들을 처분을 한다. 내가 왜 버렸냐고 하면 어차피 내가 사준거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왜 뭐라하냐 역정을 낸다. 내가 직장을 가지고 번 돈으로 산 물건도 상관없다. 엄마가 날 키웠고 교육을 시켰고 그렇기에 내가 번 돈으로 산 물건들도 엄마 맘대로 할 수 있다 했다. 남동생한테는 굉장히 다르다. 지금은 결혼해서 독립한 남동생이 본가에 두고 간, 먼지가 하얗게 쌓여버린 10년도 넘은 잡지 더미들조차 처리하려고 안하신다. "그거 다 걔가 산건데 냅둬야지. 걔꺼야. 건드리면 안돼." 다행스럽게(?) 엄마가 내 물건을 마음대로 버리는 일은 몇년에 한 번 정도만 일어나는 일이다. 그때마다 싸워서 (비록 엄마의 인정과 사과는 못받아내었지만) 과거보다는 내 물건이 나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굉장히 많이 가신 상태이긴 하다. 












우리 엄마는 평범한 엄마라서. 그래서 그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에 관련한 궁금증에 읽게 된 Willpower에서 난 엄마와 딸과의 관계에서 갈등의 실마리를 또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Roy F. Baumeister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데 그는 연구를 통해 우리의 정신력, 의지력은 핸드폰 배터리처럼 분명하게 정해진 양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체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툭-하고 나오는 말들이나 행동들은 (습관이 좋은 예시다) 나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아 쉽고 용이하지만 그것을 한번 더 생각하고 좋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행동은 훨씬 더 큰 정신적, 체력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 책의 내용과 위의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의 내용을 연결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엄마에게 있어 딸들은 나의 아래에 있는 존재이다. 수직적 위치에서 고점을 선점한 엄마는 자신보다 아래 있는 딸에게 큰 에너지를 써가며 배려를 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과 다른 성을 가졌기에 신비하게 느껴지는 남편과 아들은 한번 더 생각하고 배려해 주고 존중해 줄 가치가 있지만 딸은 내가 다 안다고 믿기에 그럴 필요성이 매우 적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엄마들은 딸들에게 잔인하기 쉽다. 쉽게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나니 어쩌면 너무한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잔인하게 엄마를 재고 자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죄책감까지 들었다. 그러다가도 엄마가 내게 하는 행동들을 가만히 종이에 적어보자니 이러한 해석이 틀렸다고는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배려심있고 지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엄마가 유독 쉽게 화를 내고 감정적 공감을 해주기가 어려운 존재가 바로 가장 만만한 나, 당신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나를 특별하게 학대하거나 성차별을 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엄마가 나를 무척 사랑한다는 것에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엄마의 심장안에 들어있다. 나와 남동생은 동일한 교육의 기회를 받았다.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다닌 나는 캐나다에서 대학교를 다닌 남동생보다 더 많은 학비를 쓴 건 부정할 수 없는 감사한 사실이고. 


나와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엄마와 딸의 갈등은 우리 엄마가 특별히 못되어서라기 보단 딸과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결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딸인 나는 엄마가 그러한 것들을 고쳐주길 바라지만 엄마는 본인의 모순들을 인지는 하고는 계실 지언정 그것을 고칠 의지는 없다는 것에서 또한 갈등의 씨앗이 된다. 나는 종종 내 숨통을 틀어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당신에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충분히 버틸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고칠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비틀어(?) 말하자면, 나는 엄마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부러할 만한, 서로를 성인대 성인으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성숙하고 깊고 더욱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싶지만 엄마는 딸과의 그런 관계적 변화가 힘겹고 반갑지 않은, 그렇기에 예전과 똑같은 수직적인 시선에서 위에서 아래로 나를 바라보며 쉽게만 대하고 싶은 평범한 엄마로 남길 원하기에 생겨나는 갈등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라는 호칭보다는 이젠 K여사라는 이름을 불러드리리오



결국 나는 "그럼 이제 앞으로 나는 어떻게하지?" 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 아니다'라고 한다. 이 말의 속뜻은 문제를 가진 당사자가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의식하고 그 문제를 고치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데 타인이 억지로 끌어내려고 애쓰는 변화는 결국엔 단기간일 뿐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의 뜻을 30대 중반이 되어보니 더더욱 잘 알겠다. 힘이 넘쳐나던 20대에는 누군가가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내가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 사람을 고쳐주고 싶던 경향이 강했는데 그때보다 에너지가 확 줄어든 지금은, "그렇게 살라 해"라면서 지나가게 된다. 분명 힘이 부치는 것도 있지만 애써 힘을 들여봤자 결과가 썩 좋지 않음을 경험으로도 알기 때문이다.


이 말을 나와 엄마 사이에도 놓을 필요가 있다. 엄마가 본인이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데 내가 괜히 애달복달하며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엔 한계가 있고 장기적이기 못하다. 


어느순간 엄마를 엄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 가진 60대의 여성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 이모들 말씀에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지만 질투와 고집이 무척 쎘다는 K여사. 딸에 대한 사랑과 욕심은 많지만 칭찬과 감정적 공감은 박한 편인 K여사. 그래서 고맙다, 미안하다 말을 잘 못(안)하는 K여사. 자존심이 무척 쎈 K여사. 불과 한시간전, 본인이 망친 쿠키에 대한 스트레스를 간밤에 잠을 못자 피곤해하는 나에게 날선 말을 우다다 던져놓고서는 방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간 K여사.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는 것 처럼 멀찍이 서서 엄마에게 당신의 원래 이름표를 붙여드렸다. 


화강암은 아무리 다듬어진다한들 화강암이다. 석회암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원래 타고난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성에 따라 모양은 달라질 수 있어도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엄마가 유독 나한테 짧은 퓨즈로 화를 내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잠시의 시간이 불쑥 찾아오면 나는 그 시간의 불편함을 못참고 엄마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고 살펴보니 이건 내 마음이 큰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존심이 세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경향이 강한 내가, 내가 잘못한 상황이 아닌데에도 '자녀'라는 이유로 엄마한테 저자세로 다가가는 것은 오랜 시간 내게 큰 상처를 남기고 있었더라. 엄마는 어쩌면 본인의 날선 부분을 늘 허허실실, 물컹하게 받아줄 수 있는 딸을 기대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 본질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 


나는 내 마음의 수문장이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다. 나는 내가 안전하고 행복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1순위로 두어야 한다. 그것이 누구이던, 비록 나를 낳아준 엄마와의 관계에서라도 말이다.







내년 말에는 한국으로 아예 들어가실 계획을 잡고 있는 엄마와는 지금 이 시간이 엄마와 같은 지붕아래 사는 마지막 시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서 그래야만 한다). 엄마가 감정적으로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에는, 왜 엄마는 이렇게 마음대로 나를 본인의 집으로 덜컥 들어오라고 해서 나를 힘들게 만드는지, 어쩔땐 왜 나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지 화가 불끈 불끈 났다가도 '엄마'라는 관계적 호칭을 빼고 당신의 이름 K여사로 이름표를 붙이면 우리 둘 사이에 거리감이 확 생기는 느낌이다. 내가 엄마를 고칠 순 없다. 고치려고 노력해서도 안된다.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나일 뿐이고 또 지켜야하는 것은 나 하나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와 엄마사이에 놓인 다리가 때때로 불안한 것은 절대 내 탓이 아니다. 나중에 그 다리가 지금보다 더 튼튼해지면 좋겠지만 욕심은 내지 않아야한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연장선으로 쉬는 날이면 엄마를 모시고 굳이 어딘가 좋은 곳을 모시고 가야한다는 의무감은 버리기로 했다. 다음달에 있는 캐나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어디든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봤던 에어비앤비 기록을 지웠다. 그것은 현재 나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노동의 연장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좋을 때만, 편할 때만, 할 수 있을때만 하는거다. 내 스스로가 만든 알량한 선의 기준에 내 스스로를 학대시키는 일은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 이만하면 됐다. 


앞으로 남은 약 1년반이라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내야하는 시간이 까마득해 보이다가도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면 또 아주 나쁜 것 같지많은 않다. 


지식은 어느 사물을 특징을 아는 것이고 지혜는 그 사물을 어떻게 적절하게 배치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랬다. 가족의 관계에서, 엄마와 딸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지혜가 필요하다. 앞으로 1년 반동안의 시간을 잘 만들어나가면 나는 더욱 성숙한, 지혜로운 사람이 틀림없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 스스로에게 커다란 화이팅을 외친다.



(+ 최근 엄마가 내 브런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이또한 적정한 거리를 두는 것의 연장선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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